사물인터넷 시대, 기계들이 알아서 일을 한다
'아차, 가스레인지 불을 안 끄고 나왔네!' 외출했다가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면 당혹스럽기 짝이 없다. 강미란(56) 씨는 이 때문에 모임 시간에 늦게 도착한 적도 있다. 얼마 전 부부 동반 모임을 가던 강 씨는 남편에게 다급한 목소리로 "가스레인지 불을 안 끄고 나왔어"라고 말했다. 강 씨의 남편은 급히 차를 돌려 집으로 향했다. 강 씨가 집에 들어서자 주방의 가스레인지는 혼자서 열심히 멸치 육수를 끓이는 중이었고, 강 씨는 불을 끄고도 재차 확인한 후에야 마음 놓고 밖으로 향했다. 강 씨는 나이가 들면서 자주 이런 행동을 하는 것에 불안감을 느낀다.
하지만 앞으로의 세상에서 강 씨는 자책하지 않아도 되고, 집에 돌아가 가스레인지 불 끄느라 모임에 늦게 도착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사물인터넷(Internet of Things, IoT) 시대가 점점 다가오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 주 '즐거운 주말'에서는 '2015년 주목할 신기술' 두 번째 이야기로 사물인터넷에 대해 알아본다.
홍준표 기자 agape1107@msnet.co.kr
◆사물인터넷 기술 어디까지 왔나?
지난 1월 6일부터 9일까지 나흘간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세계 최대 전자제품 박람회 'CES 2015'의 주연은 단연 사물인터넷이었다. 참가 업체들은 모터쇼를 방불케 할 만큼 무인자동차, 스마트 차량을 선보였지만, 그 기반 기술은 사물인터넷이었다. 사물인터넷은 인터넷을 통해 모든 사물을 연결해 사람과 사물, 사물과 사물 간 정보를 상호 소통하는 지능형 기술과 서비스 등을 말하는데, 공상과학 영화에서나 볼 수 있었던 일이 현실로 다가오자 세계는 열광했다.
현대인은 사물인터넷이 아니어도 이미 사물 간 통신(M2M)이 가능한 세상에 살고 있다. 고속도로 톨게이트에서 이미 보편화한 하이패스 시스템, 자동차 원격 시동 및 블루투스 통화 등 각종 무선 장치 등이 대표적이다. 사물에 센서를 부착하고 센서가 읽은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인터넷으로 주고받고 처리하는 기술이다. 또 대구에서는 남구청이 지난 2012년 6월 1일부터 공동주택에 음식물쓰레기 가구별 종량제 방식인 RFID 종량기기를 설치해 운영하고 있다. 가정마다 아파트 동, 호수 정보 등이 입력된 RFID 카드를 발급해 음식물 쓰레기 수거함에 카드를 갖다 대면 수거함이 열린다. 이렇게 하면 가정마다 혹은 동마다 음식물을 얼마만큼 배출하는지 알 수 있고 이에 따른 요금 부과 등 추후 관리도 가능하다.
지금까지 네트워크에 연결된 기기들이 정보를 주고받으려면 인간이 개입해야 했다. 하지만 사물인터넷 시대가 열리면 인터넷에 연결된 기기는 사람의 도움 없이 서로 알아서 정보를 주고받으며 대화를 나눌 수 있다. 블루투스나 근거리 무선통신(NFC), 네트워크가 이들의 자율적인 소통을 돕는 기술이 된다. 벌써 의료나 농업 분야 등에서는 사물 인터넷을 다양한 방법으로 활용하기 시작했다.
◆사물인터넷의 명(明)
시장조사기관인 가트너는 PC, 태블릿 PC, 스마트폰을 제외하고도 사물인터넷 기능을 탑재한 기기 수가 2020년에는 260억 대에 이를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이렇게 많은 기기에 사물인터넷 기능이 탑재된다면 우리 삶은 어떻게 바뀔까?
교통사고로 출근길 도로가 심하게 막힌다는 뉴스가 떴다. 소식을 접한 스마트폰이 알아서 알람을 평소보다 30분 더 일찍 울린다. 기다렸다는 듯이 전등에 불이 들어오면서 어둡던 방을 환히 밝힌다. 주방에 들어서면 미리 준비해둔 커피포트가 때맞춰 물을 끓인다. 기지개를 켜며 커피 한 잔을 손에 들고 스마트폰을 만지면 사용자의 관심사에 따라 미리 선정된 매일신문의 맞춤형 기사가 화면에 뜬다. 출근을 위해 집을 나서면 모든 전원이 꺼진다. 물론 가스도 안전하게 차단된다. 주차장에 도착해 차에 오르면 회사까지 차가 알아서 간다. 주변의 장애물이나 위험을 감지해 피하고 차량 흐름에 맞춰 속도를 조절하며 교통정보도 수시로 수집해 가장 덜 막히는 도로를 찾아준다. 만에 하나 사고가 나더라도 자동으로 경찰과 보험회사 등에 신고가 들어간다.
꿈만 같은 일이다. 사물인터넷이 인간의 삶을 보다 편리하고 풍요롭게 해줄 수 있는 것은 분명하다. 교통, 교육, 의료, 복지 등 공공영역에서 사물인터넷을 활용해 삶의 질을 개선하기 위한 연구도 계속 진행 중이다. 실제로 사물인터넷의 유망 분야는 의료 쪽이다. 건강하게 오래 살고 싶은 것은 모든 사람의 바람이다. 사물인터넷을 통한 건강관리는 이를 도울 수 있다. 몸속에 심은 센서를 통해 수술대에 오르지 않아도 몸속을 시시각각 관찰하여 필요에 따라 즉각 처치할 수 있다.
◆사물인터넷의 암(暗)
현재 사물인터넷은 초기 단계이다. 그러다 보니 보안 수준 역시 초기 단계이며, 많은 기기가 어떠한 보안 솔루션도 갖추지 못한 채 공격에 무방비로 노출돼 있는 상태이다. 그래서일까. 최근 세계적인 정보 보안업체 시만텍은 '2015년 주목해야 할 Top 10 보안시장 전망' 보고서에서 '올해부터 스마트 홈을 겨냥한 공격이 증가할 것'이라며 사물인터넷 위협을 경고했다. 글로벌 인터넷 보안업체 웹센스 역시 '2015년 8대 보안위협동향' 보고서를 통해 산업계에서 사물인터넷으로 인한 위협이 증가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가장 큰 우려는 해킹 등 보안사고 문제이다. 사물인터넷으로 모든 것이 연결된다는 의미는 뒤집어 말하면 모든 것을 들여다볼 수도 있다는 뜻이 된다. 사물과 사물, 사물과 인간이 소통하는 과정을 엿보고 엿듣기 위한 시도는 증가할 것이다. 가령 홈 자동화 시스템 해킹으로 어느 날 갑자기 냉장고가 꺼져 음식이 모두 상하고, 며칠간 휴가를 다녀온 사이 내내 냉방이 이뤄져 요금 폭탄을 맞을 수도 있다. 해커가 차량 시스템에 접근해 차가 제 발로 없어지는 황당한 일이 벌어질 수도 있다. 이는 가벼운 사례일 뿐 보안시스템과 같은 중요한 시스템이 해킹당하면 큰 인적'물적 피해를 볼 수 있다.
실생활에서 있을 수 있는 또 다른 어두운 그림자는 개인정보 문제이다. 기존 인터넷 환경이나 모바일 환경에서는 사용자가 컴퓨터에 저장했거나 인터넷 사이트에 제공한 정보만 공격자에게 탈취당하지만, 사물인터넷 시대는 사용자가 제공하지 않은 정보마저 빼앗기기 때문이다. 대개 홈 CCTV는 사용자들이 외부에서도 실시간으로 집안을 확인하고 싶어해 인터넷에 항상 연결돼 있다. 만약 해커가 이 CCTV 화면을 가로챈다면 집에 침입하지 않고도 얼마든지 실내 상황을 확인할 수 있다. 이 자체만으로도 불법이지만 이는 자칫 더 큰 범죄에 악용될 소지가 있다. 이렇듯 대부분 사물인터넷 기기는 지속적이고 실시간적인 정보수집을 한다. 이 때문에 매우 민감할 수 있는 이용자 행태 및 성향 정보가 기기에 누적되고, 이 정보가 해킹당하면 사실상 이용자의 생활방식 등을 손쉽게 알아낼 수 있다.
홍준표 기자 agape1107@msnet.co.kr
※글로우캡: 미국의 바이탈리티사가 개발한 글로우 캡(Glow Ca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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