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정부가 부정부패와 전면전을 벌인다고 한다. '국면 전환용'이니 '공안정국'이니 하면서 뒷말이 많지만 부정부패를 척결하겠다는데 누가 말리겠는가. 12일 이완구 국무총리가 대국민 담화를 발표한 다음 날 검찰이 포스코건설에 대한 압수수색을 벌였다. 정부와 검찰이 일찌감치 조율을 한 듯 수사 속도가 전광석화(電光石火) 같았다. 정준양 전 회장 등이 출국금지됐다고 하니 포스코건설뿐만 아니라 포스코 전체가 부정부패와의 전쟁에 본보기가 되는 양상이다.
필자는 포항에서 오래 근무하다 보니 포스코의 민낯을 어느 정도 알고 있다. 포스코는 재계서열 6위의 글로벌기업이지만, 다소 모순적인 기업풍토를 갖고 있다. 그리 실리적이거나 효율적이지도 않고, 어느 정도 인간미가 풍기는 기업이다. 서울 테헤란로에서 삼성맨과 포스코맨이 함께 있다고 하면 한눈에 알아볼 수 있다고 한다. 당연히 세련된 '댄디 스타일'은 삼성맨이고, 꾸미지 않는 '내추럴 스타일'이 포스코맨이다. 창업자인 박태준 전 회장의 분위기처럼 '컨트리스럽다'고 해야 할까. 그렇기에 기업 풍토가 오너기업과는 확연히 다르다. 하청업체를 쥐어짜고, 지역주민을 백안시하는 오너기업과는 아주 차별적인 '괜찮은' 기업이다. 그렇지만 주인이 없다 보니 정치바람에 잘 휩쓸리고 청탁과 편법이 잘 먹히는 약점이 있다.
회장 선임 과정에서 정치권이 개입하고, 회장이 바뀌면 정책까지 송두리째 바뀌는, 치명적인 허점도 갖고 있다. 그래서 정'재계에서 기업 규모에 어울리지 않은 대접을 받고, 회사 운영에 크고 작은 허점이 자주 돌출된다. 이런 허점투성이의 포스코를 검찰이 수사하는 것은 당연할지 모른다. 정치권과 결탁한 배임 경영과 해외 비자금을 수사하는 것은 검찰의 당연한 임무이다. 그러나 여러 정황을 감안하더라도 검찰 수사가 좀 찜찜하게 느껴진다.
포스코건설 건은 제쳐놓고, 정준양 전 회장과 관련된 의혹은 매일신문을 비롯해 여러 매체에서 일관되게 보도해온 것이다. MB계와 친했던 정 전 회장이 석연찮은 경영을 해왔기에 이번 수사에서 그냥 넘어갈 수 없을 것 같기도 하다. 그렇지만 수사 시점이 좀 묘한 것 같다. 정 전 회장과 관련된 사안은 3년 전 현 정권 출범 초에 검찰이 여러 차례 조사했던 것이다. 수많은 관련자들이 당시의 대검 중수부를 들락날락했던 것은 누구나 안다. 당시엔 수사가 미진했던지, 아니면 다른 이유 때문인지 은근슬쩍 넘어가더니 또다시 먼지 쌓인 기록을 끄집어 내려는 이유가 궁금해진다.
항간에서는 정 전 회장을 치고 나면 MB정권 실세들이 튀어나올 수밖에 없으니 '회고록 괘씸죄'에 걸린 MB를 겨냥하고 있다는 말도 나온다. 설마 검찰과 청와대가 그 정도 수준밖에 되지 않을까라고 생각하지만, 찜찜한 것은 사실이다. 수사 막바지에 정치적 뒷거래가 오가지 않을까 하는 공상도 해본다.
그리고 부패와의 전쟁 첫 타깃이 포스코라는 점도 찜찜하다. 포스코는 변변한 오너가 없는 국민기업이나 마찬가지다. 정'재계에 인맥이 깔려 있고 수백 명의 유명 법률가를 거느린 오너재벌과는 달리, 다소 '만만한' 느낌을 주는 기업이다. 검찰 입장에서 보면 포스코라는 기업은 비리가 많은데다 수사에 대한 저항 강도도 약하니 '앉아서 쉽게 코를 풀 수 있는 대상'일 수 있다.
검찰이 포스코보다 몇 배 악독한(?) 경영을 일삼는, 굴지의 오너기업을 첫 타깃으로 삼았다면 국민의 폭넓은 지지를 받을 수 있을지 모른다. '아이 손목 비틀기' 같은 쉬운 수사를 하면서 부정부패와의 전쟁을 개시했다고 하면 좀 저급한 발상이 아닐까. 죄를 지었으면 달게 받아야 하고 기업의 잘못은 도려내야 하지만, 자꾸만 이상하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무슨 이유 때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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