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춘추] 구두, 쓸쓸함 혹은 설렘

입력 2015-03-18 05:00:00

사람들의 첫인상을 좌우하는 것은 여러 가지가 있다. 특히 머리 모양이나 안경처럼 주로 얼굴과 연관된 스타일이나 소품들이 크게 작용을 하겠지만, 세심하게 보면 넥타이나 작은 핀 같은 것도 무의식적으로 그 사람의 첫인상을 좌우하는 경우가 많다. 상대하는 사람에 대한 판단은 주로 3~5초 사이에 이루어진다고 하니, 그만큼 첫인상은 의도적이지 않게 한 사람의 평가기준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할 수 있겠다. 그래서 사람들은 특별한 사람, 중요한 사람을 만나는 경우 차림새에 특히나 신경을 더 쓰는가 보다.

내가 사람을 만날 때 유심히 보는 것 가운데 하나는 신발이다. 요즘은 특히 업무상 구두를 신은 이들을 많이 만나는데, 사람들마다 선택하는 구두의 스타일도 다르지만 그것보다는 구두를 통해 느껴지는 그 사람만의 독특한 느낌이 있기 때문이다. 딱딱한 재질의 구두를 좋아하는 이와 부드러운 소재의 재질을 좋아하는 이의 느낌이 다르고, 끝이 뾰족한 것과 둥근 형태의 구두가 가지는 그 사람의 느낌 또한 다르다. 물론 그 느낌이 상대의 인격이나 성격과 다 맞아떨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우선적인 참고 사항은 된다. 한 번 사면 쉽게 바꾸지 않는 것이 구두이기에 미묘하게도 구두에는 그 사람의 삶의 향기와 체취가 묻어 있고 그것이 은연중 풍겨 나오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노래나 영화, 회화나 문학 장르에서 구두가 주요한 소재로 많이 등장한다.

구두가 지닌 이미지는 곧 시간에 대한 이미지이고, 시간의 흐름 속에서 주인이 지닌 품성을 구두가 닮아가면서 구두의 인격화, 인간화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예술적 표현이 된다. 구두는 곧 내가 걸어온 길이고 생활이자, 역사이다. 구두 속에는 나의 조급했던 마음과 여유로웠던 마음, 종종걸음쳤던 오전의 바쁜 복도와 차 한 잔으로 느긋하게 보냈던 오후 한때의 휴게실, 못다 이룬 꿈으로 과도하게 열정적이었던 늦은 술자리의 아픈 기억까지도 고스란히 담겨 있다.

얼마 전 구두를 바꿨다. 결혼하며 장만한 구두였는데, 낡은 굽과 헌 가죽을 보며 어느 날 아침 아내가 "구두 바꿀 때가 되었네?"라고 하자 내가 느낀 당혹감은 어디에서 온 것일까? 일생 가운데 절반은 주요 행사 때를 제외하고는 고스란히 신발장에만 놓여 있었고, 나머지 절반은 신발장으로 들어갈 사이 없이 바빴던 구두. 이 구두의 사라짐이 과거와의 단절을 의미한다면, 내가 과도하게 해석하는 것일까? 한동안 낡은 구두를 신고 다닌 후에야 새로 산 구두로 바꿔 신을 마음이 생겼다. 오래되어 내 발에 맞춰진 구두에는 그만한 자유로움이 있지만, 새로 산 구두에는 꽉 조이는 긴장감이 녹아 있다. 그래, 이제 다시 나의 길을 만들어 가보는 거야! 출근길, 새 구두의 코를 보며 미래의 시간줄을 다시 조심스레 내 앞에 당겨놓는다.

이 성 호(문화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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