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목 이책!] 사물의 철학

입력 2015-03-14 05:00:00

함돈균 지음/ 세종서적 펴냄

기능적 쓰임새가 아니라 관계적 차원에서 사물의 의미를 조명한 책이다. 문학평론가인 저자는 시를 문학적으로 분석하고 철학적으로 해석하던 작업의 연장선에서 역사와 문화적 맥락으로 사물의 의미를 파악하고 있다.

저자는 '순간의 파라다이스'를 제공하는 사물이었지만 이제는 혐오스러운 사물로 추락한 '담배'에서 사물이 유통되는 사회의 억압과 인식론적 허위를 읽는다. 바이러스 흡입을 막기 위해 쓰는 '마스크'에서는 인간은 알 수 없는 것들과 치열하게 생존 전쟁을 펼쳐야 하는 연약한 생물종이라는 사실을 환기한다. 속살을 보여줄 듯 말 듯 시선을 끌어당기는 '시스루' 패션에서는 정신분석학에서 말하는 욕망이라는 심리 운동이 물리적으로 실제화된 것을 본다.

이 책의 강점은 사물에 대한 인식이 발전해가는 '사고 과정'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는 것이다. '우산'에서 저자가 제일 먼저 떠올린 것은 우산에 얽힌 개인적 체험이다. 그 생각은 꼬리를 물고 이어져 "최초로 우산을 만든 사람은 왜 우산을 만들었을까?"라는 질문과 궁리로 이어지고, 이는 마르크스의 '교환가치'와 현대적 세태의 본질로까지 생각이 확장된다. 그리고 이 사고 과정의 끝에서 저자는 "우산은 교환가치가 본질이 된 오늘의 세계에 조건 없는 증여로 기쁨을 선사하는 드문 사물"이라는 인식에 닿는다. 이와 같이 저자는 사물에서 촉발된 하나의 영감을 그냥 흘려버리지 않는다. 사물과 관련된 인문학적 지식까지 집요하게 파고들어 사물에서 또 다른 사물의 가치를 끄집어낸다. 도시에서 '자동문'은 흔한 사물이어서 대부분의 사람에게 특별한 인상을 주지 못한다. 하지만 아도르노의 철학적 맥락을 기초로 풀어간 저자의 사유를 좇아가다 보면 이런 편리한 문명의 이기가 현대인의 지각 능력을 어떻게 바꾸고 있는지를 알게 된다. 303쪽, 1만5천원.

이경달 기자 saran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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