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구 대비 성형수술률 1위 한국
얼굴 바뀐 지인 전혀 알아채지 못해
생명 현상인 노화에 대한 거부감은
세월을 거꾸로 가겠다는 비정상 앙탈
얼마 전 식당에서 일어난 실제 상황이다. 계산을 하고 문을 나서는데 웬 숙녀분이 내게 아는 체 인사한다. 주위를 둘러보니 분명 나에게 인사를 하는 게 맞다. 그러나 나는 그녀가 누구인지 전혀 알아채지 못했다. "교수님 저 ○○○예요" 하는 순간 나는 머리가 띵해져 왔다. 그녀는 내가 잘 아는 유명 대학의 교수. 문제는 그녀의 얼굴이 내가 알던 과거의 그녀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이른바 명문대를 졸업하고 미국 저명 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재원. 집안도 좋고 현직 교수에다 뭐 하나 부족함이 없는 그녀였다. 그런 그녀가 얼굴을 완전히 바꾼 것이다. 원판불변이라는 말은 이제 과거가 됐다. 나는 잠시 '멘붕'에 빠졌다.
이처럼 예쁜 얼굴에 매달리는 루키즘(lookism)은 사실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오죽하면 미모가 나라를 기울게 한다는 경국지색(傾國之色)이란 말까지 있겠는가? 유사 이래 인간사회를 관통해 온 사회적 현상이다. 그래서 고대 중국에서는 '침어 낙안 폐월 수화'(沈魚 落雁 閉月 羞花)란 말로 미인을 표현해 왔다. '침어'란 미모에 놀란 물고기가 강바닥에 가라앉고, '낙안'은 미인에 놀란 기러기가 날갯짓을 멈추고 하늘에서 떨어진다는 의미다. '폐월'은 미인을 만난 달이 부끄러워 구름 뒤로 몸을 숨기고, '수화'란 미인과 마주친 꽃이 외려 부끄러워 스스로 시든다는 의미다. 다소 과장적이기는 하나 미모에 대한 옛 중국인의 태도를 짐작할 수 있다. 이 같은 표현은 서시, 왕소군, 초선, 양귀비 등 이른바 중국 4대 미인을 각각 지칭하는 말로 사마천의 사기에 기록으로 등장한다. 특히 서시는 아플 때마다 눈살을 몹시 찡그렸는데(嚬蹙'빈축), 그 모습이 너무 아름다워 당시 사람들이 너도나도 눈살을 찌푸렸다고 하니 미인에 대한 옛 사람들의 간절한 염원을 엿볼 수 있겠다.
한국이 성형 몸살을 앓고 있다. 인구 대비 성형수술률 1위(1천 명당 13건)란 사실은 이제 새삼 놀라운 것도 아니다. 나라 밖에서도 성형을 위해 떼거리로 몰려온다. 친구가 성형으로 예뻐진 후 나보다 더 나은 조건과 위치에서 취업, 연애, 나아가 결혼까지 성공하는 걸 보면 불안감이 느껴진다는 게 여성들의 말이다. 압구정동을 지나는 버스를 타면 '이번 정류장에 내리시면 ○○성형외과가 있습니다'란 광고 목소리가 잇달아 들려온다. 성형을 받기 위해 출연자가 경쟁하는 TV 프로그램까지 방영된다. 바야흐로 '성형 전성시대'다.
그래서 일부에서는 한국사회에 불어닥친 성형 열풍을 신자유주의 탓이라고 분석하기도 한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밀어닥친 신자유주의 영향으로 스펙 쌓기와 함께 성형이 경쟁력 강화 전략의 하나로 떠올랐다는 것이다. 끊임없는 투자와 개발로 자신을 시장과 사회에서 환영받는 매력 있는 상품으로 만들어야 했다는 주장이다. 성형이 경쟁만능, 승자독식의 시대 탓이라는 것인데 이는 지나친 억측에 가깝다. 미에 대한 숭배는 근대 자본주의가 태동하기 훨씬 전부터 인간세상을 지배해 왔기 때문이다. 파스칼은 일찍이 '팡세'에서 "클레오파트라의 코가 조금 낮았더라면 역사가 달라졌을 것"이라며 미인의 위력에 대해 정리한 바 있지 않은가.
문제는 성형에 대한 우리의 시각이다. 삶의 중요한 양식들을 시간과 돈을 들여 인공적으로 만들어야 하는 현실은 불행하다. 그렇다고 해서 이 땅의 성형 붐을 단순히 돈만 밝히는 일부 의사들과 외모만 가꾸면 된다고 생각하는 일부 여성들의 합작쯤으로 여기는 건 맞지 않다. 불편하지만 현실을 일정 부분 받아들이려는 태도의 변화가 필요해 보인다. 정말 더 큰 문제는 노화에 대한 거부감이다. 늙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생명현상임에도 불구하고 노화에 대한 앙탈은 심각하다. 세월을 거꾸로 가겠다는 비정상은 우리 사회의 뒤틀린 난맥상을 고스란히 빼다 박았다. 비정상의 정상화, 이래저래 어려운가 보다.
김동률/서강대 MOT 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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