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7년 진골목 부녀자 결성…우리나라 여성 운동의 효시
1908년 3월 8일 1만5천여 명의 방직공장 여성노동자들이 미국 룻저스광장(Rutgers Square)에 모여 10시간 노동제 쟁취, 안전한 작업환경과 성, 인종, 재산, 교육수준 등과 관계없이 모든 이들에게 투표권을 주어야 한다고 요구한 역사적 투쟁이 있었다. 당시 미국의 여성 노동자들은 먼지 자욱한 현장에서 하루 12~14시간씩 일해야 했으나, 선거권과 노동조합 결성의 자유가 주어지지 않았다. 굶지 않기 위해 일하면서도 인간 이하의 삶을 강요받았다. 전 의류노동자들의 시위는 결국 1910년 '의류노동자연합'이라는 조직을 탄생시켰고, 3월 8일을 '세계 여성의 날'로 선정해 1911년부터 세계 곳곳에서 여성의 날 기념행사를 펼쳐오고 있다.
그렇다면 대구에는 여성들의 권리 찾기 운동으로 어떤 것이 있었을까. 우리나라 여성운동의 효시로 꼽히는 것은 '패물폐지부인회 국채보상운동'이다. 패물폐지부인회는 일제의 경제 찬탈에 저항하기 위해 1907년 대구 진골목 일대에 살던 부녀자들이 결성한 단체다. 이 단체가 기폭제가 돼 전국 곳곳의 여성들이 국채보상운동에 참여했다. 국채보상운동이 이전의 다른 사회운동과 다른 점은 여성들이 남성들의 활동에 종속되지 않고 독자적인 운동으로 발전시켜나간 점이다.
남일동의 패물폐지부인회는 여성계의 첫 번째 단체이자 또한 첫 번째 '패물의연(義捐)' 단체였다. 여기에 자극되어 전국 곳곳에서 유사한 운동이 펼쳐졌다. 패물폐지운동의 취지문을 살펴보면, "나라 위하는 마음과 백성된 도리에야 어찌 남녀가 다르리오. 듣자오니 국채를 갚으려고 이천만 동포들이 석 달간 연초를 아니 먹고 대전(代錢)을 구취한다 하오니, 족히 사람으로 흥감케 할지요 진정에 아름다움이라. 그러하오나 부인은 물론 한다니 대저 여자는 백성이 아니며 화육중일물(化育中一物)이 아니리오"라고 말한다. 남성과 여성이 다르지 않다는 평등사상을 담고 있다.
국채보상취지서 내용이 남성 중심적 참여 방법만을 제시한 것에 대해 지적하면서 여성들은 각자가 소지한 패물폐지로 참여할 것을 호소하고 있다. 이것은 여성이 독자적 조직을 통해 국채보상운동에 참여한 첫 운동이다.
남일동 패물폐지부인회에 발기인을 살펴보면, '정운갑 모 서씨, 서병규 처 정씨, 정운하 처 김씨, 서학균 처 정씨, 서석균 처 최씨, 서덕균 처 리씨, 김수원 처 배씨'라고 나와있다. 그리고 이들이 국채보상운동에 쾌척한 패물 '은장도, 은지환, 은연화' 등이 자세하게 나온다. 여자가 귀중히 여기는 패물로 나라의 위급함을 구하겠다는 뜻이 그대로 전해진다.
누군가의 어머니, 누군가의 아내로 살아왔지만 나라를 구하고자 하는 마음이 누구보다 뜨거웠을 그 부인들을 다시 한 번 떠올려보게 된다.
<대구여성가족재단 책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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