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금 똑바로 쓰면 국민도 제대로 낼 것…우리가 낸 돈 스스로 지켜야죠
지난해 연말 담뱃값 인상 공포와 함께 '싱글세'라는 황당한 이야기가 들려왔다. 연말정산은 해마다 혜택이 줄더니 올해는 '13월의 세금폭탄'이 되어 돌아왔다. 유리지갑이라는 직장인 지갑은 이보다 더 투명해지기도 어려울 것 같다. 그럼에도, 이 굴레를 벗어날 길은 없다. 일찍이 벤저민 프랭클린은 인간이 피할 수 없는 두 가지로 죽음과 세금을 꼽았다. 이런 무서운 말을 하지 않더라도 우리 모두 세금을 피할 수 없다는 걸 잘 알고 있다. 우리 머릿속에 세금에 대한 패러다임 전환이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내는 이가 있다. 피할 수 없다면 즐기라는 말이 있듯이. 5일, '납세자와 세금'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데 힘 쏟는 권일환(58) 세금바로쓰기 납세자운동 대구경북지부회장을 만났다.
◆우리가 낸 세금을 바로 쓰라
권 회장은 세무직 공무원으로 근무하다 1997년 세무사 시험에 합격해 세무사의 길을 걷고 있다. 그는 2009년 3월 3일 '납세자의 날'에는 기획재정부장관으로부터 표창을 받기도 했을 만큼 이른바 '잘 나가는' 세무사 중 한 명이었다. 그러던 그가 2013년 초 한 통의 메일을 받고 새로운 명함을 만들기로 마음먹었다. 당시 서울에서 세금바로쓰기 납세자운동 단체 결성 준비 중이던 한 인사로부터 동참을 요구하는 메일을 받았기 때문이다.
"평생을 세무공무원과 세무사로 살면서 '정부가 세금을 똑바로 쓴다면 국민도 세금을 기꺼이 낼 것'이란 생각을 하고 있었어요. 그래서인지 그 이메일이 반갑더군요. 국민이 '우리가 낸 세금을 바로 쓰라'는 말을 당당하게 할 수 있는 문화를 만드는 데 힘을 보태어 달라고 하니 없는 힘도 날 정도였습니다."
그에게 납세자 운동은 1907년 국채보상운동이나 1997년 금 모으기 운동과 같다. 이 일이 나라를 살리고 국민을 살리는 일이라는 믿음이 있어서다. 권 회장은 과거 우리나라보다 경제적으로 앞서 있던 나라들이 선진국으로 가는 길목에서 무너진 게 세금 때문이라 여긴다. 예를 들어 글로벌 금융위기 때 그리스 경제가 주저앉은 게 세금을 못 걷은 탓이 아니라 정부가 세금을 똑바로 쓰지 않았기 때문에 세수 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돈줄이 말랐다는 것.
권 회장은 "일본도 세금낭비 탓에 지방재정 문제가 심각하다"며 "우리나라 지방자치단체도 선심성 사업이나 효율성 낮은 국제대회 추진만 하지 않더라도 복지에 투자할 여력이 생길 것이다"고 말했다.
◆성실한 납세자도 보훈대상
권일환 회장은 제17대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의 '국민성공정책 제안센터'에 '납세자존중제도'를 제안했다. 이 제도는 미국이 납세실적에 따라 노후에 연금을 달리 준다는 데서 착안한 것이다. 그가 제안한 제도는 총 4만1천700건의 제안 중 우수정책으로 채택돼 이목을 끌었다. 하지만 이 제도는 이명박정부가 납세자존중제도를 도입하지 않으면서 아직은 남의 나라 이야기로 남아있다.
"얼마 전 연금개혁 조찬회에 참석했다가 나온 이야기예요. 그 자리에 계신 분 중 장관을 하셨던 분은 매월 연금 700만원을 받고 있었는데 사회 운동을 하신 분은 국민연금 60만원을 받고 있었습니다. 국민연금에도 가입하지 않은 분은 한 푼의 연금도 받지 못하고 있었어요. 연금액 차이가 왜 날까요? 국가에 이바지한 정도의 차이라면 공직자뿐만 아니라 납세자도 국가에 크게 기여한 게 아닐까요? 국가재정을 담당했으니까요. 그래서 저는 오랫동안 성실히 납세를 했지만 경제적 어려움을 맞아 노숙자가 된 사람과 그렇지 않은 노숙자 사이에 합리적 차별이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그렇다면 존중받아야 할 납세자를 어떻게 구별해야 할지에 대한 의문이 생긴다. 이 의문에 대해 권 회장은 "국세청에는 납세실적에 따른 점수가 누적되어 있으니 이를 바탕으로 노후에 기초연금 차등 지급이나 간병인 제도 유'무상지원 등의 제도를 운용한다면 성실 납세자에게 자긍심도 심어줄 수 있을 것"이라고 답했다.
◆세원은 넓게, 세율은 낮게
평생 세금과 씨름한 권 회장은 세금에 대한 자신의 철학이 확고했다. 세원은 넓게 세율은 낮게 하고, 세금은 모든 국민이 내는 '국민개세주의'(國民皆稅主義)가 확립되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그는 많이 벌든 적게 벌든 그에 비례해서 모든 국민이 골고루 내는 것이 좋다고 주장한다. 또 "세금은 나부터가 아니라 나보다 소득이 많은 사람부터라는 인식이 바뀌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나부터 세금을 낼 때 고소득자에게 세금을 더 내라는 주장에 힘이 실린다는 것. 이를 위해 소득세 면세범위를 줄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권 회장은 "소득세는 조세체계의 근간으로 유럽 등 선진국은 소득이 많든 적든 그에 비례해서 모두가 소득세를 부담합니다. 반면에 우리나라는 소득세율이 40%대로 높지만 소득세 비중은 적은데, 이는 소득세 면세자가 많기 때문이에요"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우리나라의 근로소득 면세자 비율은 2013년 기준으로 전체 납세자의 31%(512만여 명)로 다른 나라보다 훨씬 높다. 비교 연도가 다소 차이 나지만 2012년 기준 일본(15.8%)과 캐나다(22.6%), 독일(19.8%), 호주(23.1%) 등 주요 선진국의 면세자 비율은 20% 내외다. 자영업자나 임대소득자 등 근로소득 외에 다른 소득을 올리는 사람들도 5명 중 1명은 세금을 내지 않고 있다. 또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2013년 기준 한국은 전체 세수에서 개인 소득세가 차지하는 비중은 15.4%로 OECD 평균(25.3%)보다 9.9%포인트 낮았고, 27개국 중 22위로 하위권이었다. 이 때문에 그는 소득세 제도를 정비해 세원을 넓히기만 해도 세수 재원을 늘릴 수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를 위해 우선 소득세 면세자 구조를 변경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인터뷰를 마무리하며 권 회장은 "앞으로는 지방 의정 모니터링 등을 추진할 예정이다. 로마병정처럼 한걸음씩 내디뎌 지방재정이 건전하게 운용될 수 있도록 조언과 감시기능을 해나가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홍준표 기자 agape1107@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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