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부] 화형(火刑)

입력 2015-02-07 05:00:00

루소는 인류의 조상이 자연 상태의 지상낙원에서 평화롭고 자유로운 삶을 누렸을 것이라고 했다. 이른바 '고상한 야만인설(說)'이다. 그러나 고고학적 증거는 이를 부인한다. 그 중 하나로 한자 '해'(醢)를 들 수 있다. 해(醢)는 고기를 다져 절인 음식 즉 육장(肉醬)을 가리키지만 본래의 뜻은 그게 아니다. 갑골문(甲骨文)에 있는 이 글자의 원형은 산 사람을 큰 절구에 넣고 절굿공이로 으깨는 모습이다. 해(醢)는 혹형이었던 것이다. 공자의 제자 중 위나라에서 벼슬을 했던 자로(子路)가 정변에 휘말려 이런 참변을 당했다. 그나마 덜 몸서리쳐지는 것은 그가 죽은 다음에 그렇게 됐다는 것이다.

이러한 인간의 잔인성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혹형이 화형이다. 구약성서에도 나온다. 모세의 동생이자 이스라엘 첫 대제사장인 아론의 두 아들이 하느님께 제사를 드릴 때 잘못된 향을 사용하자 하느님이 태워죽였다. 이 같은 신의 직접적 징벌은 중세 이후 인간이 대행하게 된다. 바로 종교재판과 마녀사냥이다.

정치학자 R. J. 럼멜의 연구에 따르면 스페인 종교재판의 사망자 수는 35만 명에 이른다. 마녀사냥의 희생자는 독일과 프랑스에서만 200년 동안 6만~10만 명에 이른다. 이들은 대부분 화형을 당했다. 그 이유는 피를 흘리는 것을 금지한 교회법 때문이었다고 한다. 이단자에 대한 화형은 구교의 전유물이 아니었다. 신교도 그랬다. 칼뱅이 '삼위일체설'이 성서적 근거가 없음을 주장한 미카엘 세베르투스를 화형에 처한 것은 대표적인 예이다. 가톨릭과 대립한 영국 왕 헨리 8세도 재위 중 매년 평균 3.25명을 화형에 처했다.

20세기에도 화형은 여전했다. 중국이 지난해 7월 공개한 일본 관동군 전범자의 자술서에 따르면 헌병대 분대장을 지낸 가시와바 유이치(柏葉勇一)는 "전염병에 걸려 노동력을 상실한 인부들을 산채로 화로에 던져넣었다"고 고백했다. 살충제 치클론-B로 600만 명의 유대인을 살해한 나치는 희생자들이 죽은 다음에 태워버렸으니 그나마 일본군보다는 자비로웠다(?)고 할까….

IS(이슬람국가)가 요르단 조종사를 산채로 화형하고 그 장면을 공개한 동영상이 전 세계인을 분노케 하고 있다. 도덕적 타락이 갈 데까지 간 것을 보여주는 이 잔인함으로 IS는 종말로 향하는 문을 열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종말까지의 시간이 빨리 단축되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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