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사랑] 아픈 다리로 홀로 뇌병변 딸 돌보는 윤영수 씨

입력 2015-02-04 05:00:00

몸 가누기도 버거운데 중증장애 딸 수발까지

윤영수 씨는 퉁퉁 부은 다리 위에 딸 슬기 씨를 눕혀서 밥을 먹인다. 슬기 씨는 내년이면 서른이지만 아직 기저귀를 차고 제대로 걷지도 못해 갓난아기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어릴 적 큰 교통사고를 겪은 이후 슬기 씨는 뇌병변 1급 장애를 갖게 됐다. 성일권 기자 sungig@msnet.co.kr
윤영수 씨는 퉁퉁 부은 다리 위에 딸 슬기 씨를 눕혀서 밥을 먹인다. 슬기 씨는 내년이면 서른이지만 아직 기저귀를 차고 제대로 걷지도 못해 갓난아기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어릴 적 큰 교통사고를 겪은 이후 슬기 씨는 뇌병변 1급 장애를 갖게 됐다. 성일권 기자 sungig@msnet.co.kr

윤영수(58) 씨는 매일같이 퉁퉁 부은 다리 위에 딸 슬기 씨를 눕혀서 밥을 먹인다. 슬기 씨는 내년이면 서른이지만 아직 기저귀를 차고, 제대로 걷지도 못해 갓난아기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어릴 적 큰 교통사고를 겪은 이후 슬기 씨는 뇌병변 1급 장애를 갖게 됐다.

영수 씨는 딸의 머리를 어루만지다 자신이 삐뚤삐뚤하게 잘라놓은 머리카락을 보곤 피식 웃었다. 하지만 영수 씨의 눈가엔 이내 눈물이 맺혔다. 딸의 머리를 예쁘게 잘라주던 아내가 더 이상 곁에 없기 때문이다.

"아픈 다리로 딸을 돌보는 것도 힘들지만 함께 있던 아내가 없다는 게 더 힘들죠. 요즘엔 나도 슬기도 몸 상태가 좋지 않아서 챙겨주던 그 사람이 더 생각나요."

◆교통사고로 머리를 다친 딸

아빠 영수 씨는 결혼 후 첫딸인 슬기가 태어나자 세상을 다 얻은 듯 기뻤다. 세 식구가 살 집 한 칸이 있었고, 건강하고 애교 많은 딸까지 있어 웃음이 끊일 날이 없었다. 하지만 음주운전자가 낸 교통사고로 영수 씨의 인생은 순식간에 절망에 빠졌다. 사고로 아내가 세상을 떠났고, 딸은 크게 다쳤다.

"그날 아내가 아버지 제사에 간다고 슬기를 데리고 친정집으로 가다가 변을 당했어요. 내가 같이 갔더라면 상황이 달라지지 않았을까 후회도 많이 했죠."

교통사고 이후 딸은 이전과 달라졌다. 방실방실 웃던 얼굴에선 표정이 사라졌고, 애교스럽게 부르던 '아빠'라는 말도 더 이상 하지 못했다. 걷는 것도 어눌해져 여기저기 부딪히기 일쑤였다. 딸은 뇌병변 1급이라는 중증장애 진단을 받았다. 장애진단을 받게 되면서 주변 사람들은 '딸을 좋은 시설에 맡기고 새 삶을 살아라'고 조언했다. 하지만 아빠는 딸을 포기할 수 없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아빠와 슬기에게는 새로운 가족이 생겼다. 아빠가 새로운 사람을 만나 결혼했고, 슬기에게는 다시 엄마가 생겼다. 새엄마는 슬기를 친딸처럼 돌봤다. 세 살 터울 여동생을 돌보느라 잠시 한눈을 판 사이 슬기가 사라졌을 때 엄마는 미친 사람처럼 아이를 찾아다녔다. 갈 만한 곳마다 찾아다니고 전단지를 만들어 뿌리다 한 고아원에 맡겨져 있던 슬기를 발견한 엄마는 서럽게 울었다.

"다들 당연히 친딸로 생각했을 정도로 슬기를 예뻐하고 자상하게 대했어요. 밑으로 태어난 여동생도 약간의 지적장애를 갖고 있었는데 그래도 더 아픈 슬기가 최우선이었어요."

◆가족을 살뜰히 돌보다 떠난 엄마

엄마와 여동생까지 생기고, 열 살 정도까지밖에 살 수 없을 거라던 슬기가 열 살을 넘기면서 아빠와 슬기에겐 다시 행복이 찾아왔다. 아빠가 하던 채소장사도 풍족하진 않았지만 알뜰살뜰한 엄마 덕분에 식구들이 따뜻하게 지낼 수 있었다. 사람 좋은 아빠가 친구의 보증을 섰다 가족들이 살던 집을 잃게 됐을 때도 엄마는 좌절하지 않고 식구들을 돌봤다.

"작은 월세방에서 아픈 슬기까지 돌보는 게 쉽지 않았을 텐데 집사람은 한 번도 싫은 내색을 안 했어요. 못난 저한테 시집와서 집사람만 고생했어요."

하지만 10여 년 전 또 한 번의 교통사고로 가족에겐 큰 시련이 닥쳤다. 오토바이를 타고 장사를 하러 가던 아빠가 차에 치여 크게 다친 것. 특히 다리에 심한 부상을 입은 아빠는 이때부터 다리 쓰는 게 쉽지 않아졌다. 아빠가 장사를 하기 어려워지자 엄마가 생업전선에 나섰다. 엄마가 미용실에서 허드렛일을 하며 돈을 벌어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게 됐다.

사고 이후 아빠의 다리는 피가 제대로 통하지 않아 날마다 퉁퉁 붓는 증상이 이어졌고, 조금씩 걷던 슬기의 상태도 겨우 앉아있기만 할 정도로 나빠졌다. 엄마가 일을 하러 가면 아빠와 함께 언니를 돌봐주던 여동생도 결혼해 떨어져 살면서 아빠는 아픈 몸을 끌고 홀로 슬기를 돌봐야 했다. 하지만 엄마가 있어서 아빠도 힘을 낼 수 있었다.

아빠와 슬기에게 너무도 큰 불행이 찾아온 건 2013년. 갑작스레 엄마가 직장암 진단을 받았다. 이때도 엄마는 의연했다. 항암치료와 수술을 받기로 했고 잘 견뎌냈다. 수술을 받고 첫 외출을 나와서 길게 자란 아빠와 슬기의 머리를 곱게 깎아주고 엄마는 병원으로 돌아갔다. 그게 엄마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병원에 간다는 사람이 곱게 화장을 하고 특별한 날에만 신는 구두를 꺼내 신고 예쁘게 해서 가더라구요, 뭘 그렇게 꾸미고 가느냐고 핀잔을 줬는데 그때 예감을 했던 건지…."

엄마가 세상을 떠나고 아빠와 슬기는 오롯이 둘만 남게 됐다. 아픈 몸으로 딸을 돌보는 것도, 수도세를 내지 못해 물이 끊길 정도의 생활고도 모두 힘들지만 다정했던 엄마를 잃은 상실감이 더 크다.

"얼마 전에 위궤양으로 고생을 한 데다 다리도 점점 심하게 붓고 있어요. 슬기도 최근에는 소화가 잘 안 되는지 토하고 밥을 잘 못 먹어 두 사람 다 병원에서 검사를 받아보라는데 돈도 걱정되고 돌봐줄 사람이 없어서 둘 다 병원에 갈 수도 없는 노릇이라 어떻게 하나 걱정하다 보면 집사람 생각이 더 나요."

김봄이 기자 bom@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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