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등급' 다리 대형트럭 지나자 '출렁' 주민들 가슴은 '철렁'

입력 2015-01-27 05:00:00

경북도내 재난 위험 다리·아파트 돌아보니…

재난위험시설로 지정돼 안전등급 D등급 판정을 받은 예천군 용궁면 성저교. 교량 앞에 세워진
재난위험시설로 지정돼 안전등급 D등급 판정을 받은 예천군 용궁면 성저교. 교량 앞에 세워진 '통행 제한' 경고판 사이로 승용차 한 대가 조심스럽게 다리를 건너고 있다. 권오석 기자

경북 도내 위험 등급을 받은 다리 위를 오늘도 차량이 쌩쌩 달린다. 모르고 오는 운전자가 대다수고, 다리 옆에 '위험 교량'통행 제한'이라는 표시가 있어도 대수롭지 않게 지나친다. '설마 다리가 무너지겠어'란 생각에 기대며 다리를 건너가는 것이다.

심지어 위험 등급을 받아 폐쇄됐던 다리에 대해 통행금지를 슬그머니 풀고, 다시 통행 재개를 시킨 곳도 있다.

더 큰 문제는 앞으로 새 다리를 놓을 수 있을지 없을지 아무도 알 수 없다는 점이다.

◆설마 이 다리가 위험 등급?

경주시 현곡면과 안강읍을 잇는 옛 국지도 68호선 구지교. 이 다리 앞에 한 시간만 서 있어도 교통량이 많은 다리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버스'트럭 등 대형 차량의 왕래가 잦다.

구지교를 통해 안강 또는 경주 시내로 접근하는 차량은 하루 5천여 대에 이른다. 대다수가 대형 차량이다. 인근 자동차 부품공장을 왕래하는 차량과 연탄 공장 등을 왕래하는 화물차다.

그러나 이렇게 차량 통행이 많은 구지교의 안전등급이 D등급이란 사실을 아는 사람들은 손에 꼽을 정도다.

구지교는 차량이 지나갈 때마다 다리가 휘청일 만큼 위태롭다. 1984년 개통된 구지교는 10여 년 전 상판의 균열이 일어나고 다리 난간을 지탱하는 교각이 일부 깨져 안전에 심각한 문제가 있는 D등급 판정을 받았다.

사실상 대형 차량의 통행을 제한하는 조치지만 대형 차량의 통행은 이에 아랑곳없이 줄을 잇고 있는 실정이다.

이 다리를 이용해 출퇴근을 한다는 이동윤(53) 씨는 "매일 지나다니지만 다리의 위험성이 이렇게 심각한 줄 몰랐다"며 "최근 안전사고가 많이 일어나는데 관계 당국은 철저한 안전조치를 취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1981년 개통된 경주시 양북면 구길교도 D등급 판정을 받은 다리다. 200여 가구가 살고 있는 구길리 주민들의 주 통로인 구길교는 2004년 D등급 판정을 받았다. 판정 당시 다리를 폐쇄하고 하천을 통과하는 임시도로를 이용하도록 했지만 최근 슬그머니 원래대로 마을버스 등 대형 차들이 구길교를 통해 다니고 있다.

이 마을 주민들은 "한때 다리가 폐쇄되고 하천길로 다녔지만 교량 밑 하천물이 불어나서 하천길로 다니지 못하게 되자 예전처럼 다리를 통해 드나들고 있다"며 "다리가 없으면 농사일에 큰 지장이 있어 위험한 것은 알지만 그대로 다리를 통과하고 있다"고 말했다.

◆다른 길이 없으니 어쩔 수 없다

예천군 용궁면 향석 1리 인근 성저교. 최근 이 다리를 찾아가자 승용차 한 대가 길이 210m, 넓이 3m 규모의 낡은 다리를 조심스럽게 건너고 있었다. 한눈에 보기에도 설치된 지 수십 년은 된 듯한 이 다리는 지지대를 비롯한 곳곳에 금이 가 있었고 교량 상판의 시멘트 일부는 힘없이 떨어져 나가 곳곳이 움푹 파인 채 방치돼 있었다.

향석1리와 2리를 잇는 다리 양편에는 차량 추락 방지를 위한 난간조차 없었다. 일부 구간에 20㎝ 높이로 설치된 차량 탈선 방지턱마저도 훼손된 채 방치돼 있었다. 1981년 만들어진 이 다리는 2006년 재난위험시설로 지정돼 D등급 판정을 받았다.

예천군은 사고 예방을 위해 1t 이상 차량의 통행을 금지하고 있다. 주민 이강현(향석2리) 씨는 "다리를 이용하지 않으면 4㎞ 이상 산길을 돌아나가야 하는 불편을 겪어야 한다. 어쩔 수 없이 농기계를 몰고 붕괴 위험이 있는 다리를 건너고 있다. 아찔한 순간이 한두 번이 아니다"고 했다.

예천에만 D등급을 받은 다리가 성저교 등 7곳에 이른다. 일부는 고칠 계획이 있지만 하리면 율곡교와 용문면 상금교는 고칠 돈이 없어 그대로 방치될 상황이다.

◆위험한 아파트까지

포항 남구 두호동 천호한마음아파트. 건물이 육안으로 확인할 수 있을 정도로 기울어져 있다. 아파트 외벽은 바리케이드에 의지한 채 땅으로 향하는 위태로운 모습이지만, 아이들은 이를 놀잇감 삼아 오르내린다. 건물 외벽에 붙은 위험 경고문이 무색했다.

아파트 내부도 한쪽으로 기울어 주민들이 어지러움을 호소했다. 지하주차장 외벽은 주먹이 들어갈 정도로 균열이 심했고, 바닥 곳곳은 물로 가득 차 있다.

물을 빼기 위한 장비값으로 5만원을 지불해야 한다는 반장의 통보가 왔지만 주민들은 5만원을 부담하기도 쉽지 않다. 38가구가 사는 이 아파트 주민 대다수의 형편이 좋지 못하다. 집주인들은 월세를 놓고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가 버렸다.

일부는 아파트 하자를 속여 팔았다가 소송에 휘말려 있기도 하다. 주민들은 이 아파트가 고난과 눈물이 서린 '남의 집'이라고 했다.

한 주민은 "20년 넘게 집이 무너져 내려가는 데도 변한 게 없다. 공무원이 와서 한 일은 '위험 경고문' 몇 장 붙이고 돌아간 게 전부고, 언론도 떠들어대기만 할 뿐"이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주민들은 아파트가 당장이라도 쓰러질까 겁난다고 했다. 집 안 곳곳에 묶어놓고 틀어막은 지지대가 이곳 생명을 간신히 이어주는 동아줄처럼 느껴질 정도로, 안전상태는 심각하다.

난방'온수'상하수도 어느 것 하나 온전한 게 없지만 이곳이 아니면 갈 곳이 없기 때문에 주민들은 떠나지 못한다. 집단이주나 재개발도 여의치 않다. 이미 이곳 집주인들이 한몫 챙기고 떠났기 때문이다. 1999년 포스코가 사택을 짓기 위해 15억원을 이주 보상금으로 집주인들에게 줬기 때문에, 이후 들어온 사람들의 경우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다.

이 아파트는 1997년 안전등급 'D' 등급을 받은 상태다.

한동대 구자문 공간환경시스템공학부 교수는 "위험한 시설물 주변 혹은 내부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안전 확보는 돈과 직접적 관계가 있기 때문에 매우 어려운 문제다. 하지만 미국 등 해외 사례에서도 보듯, 건물이 위험하다고 판단되면 과감하게 해당 주민들을 안전한 곳으로 이주시켜야 한다. 안전은 사람 살리는 데 중점을 둬야지, 예산 문제만 놓고 고민하다 보면 되돌릴 수 없는 대형사고를 맞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경주 이채수 기자 cslee@msnet.co.kr

포항 박승혁 기자 psh@msnet.co.kr

예천 권오석 기자 stone5@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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