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립유치원 통학비 줄이고 사립 지원한 꿍꿍이는?

입력 2015-01-21 07:04:16

도교육청 유치원 지원 이중잣대

올해 경북지역 공립유치원 통학차량 운영비가 대폭 삭감돼 학부모들이 크게 반발하고 있다. 20일 오후 경산시내 한 공립유치원 정문에서 수업을 마친 아이들이 집으로 돌아가는 통학버스에 탑승하고 있다. 정운철 기자 woon@msnet.co.kr
올해 경북지역 공립유치원 통학차량 운영비가 대폭 삭감돼 학부모들이 크게 반발하고 있다. 20일 오후 경산시내 한 공립유치원 정문에서 수업을 마친 아이들이 집으로 돌아가는 통학버스에 탑승하고 있다. 정운철 기자 woon@msnet.co.kr

형편이 넉넉지 않은 학부모들에게 사립유치원은 '부담되는 곳'이다. 아무리 적게 잡아도 월평균 20만원 가까운 돈을 내야 하는데 빠듯한 살림을 살아야 하는 부모들에게 이 돈은 결코 만만한 금액이 아니다. 이 때문에 많은 부모들이 사실상 무료로 다닐 수 있는 공립유치원에 아이를 보내고 싶어한다. 집에서 멀더라도 공립유치원에 보내려는 부모들은 긴 줄을 서고, 이곳저곳을 쫓아다니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는다.

결국 경북도교육청의 차량운영 지원비 삭감은 "공립유치원에 아이를 보내지 말라"는 얘기와 같다. 저렴한 비용으로 유아교육을 할 수 있는 기회를 교육청이 나서서 뺏어가고 있는 것이다.

경산의 한 30대 엄마는 "저출산 대책이니 하면서 정부가 매일같이 '아이 낳자'고 떠들어대지만 중앙정부든, 지방정부든 아이 키우는 일에 도무지 관심이 없다"고 발끈했다.

◆발 묶이는 유치원 어린이들

경산의 한 초교 병설유치원. 이곳 원장은 "3월 개원이 코앞인데 아이들을 실어나를 차량을 구할 수 없다"고 하소연했다. 원장은 "2개 병설유치원이 통학버스 1대를 계약, 공동 운영해 왔으나 전세버스 업체가 '올해 배정된 돈으로는 남는 것이 없어 도저히 계약을 할 수 없다'고 통보해왔다. 이러다 정말 계약을 못 하는 것이 아닐까 걱정이다. 교육청이 돈을 더 늘려주지 않으면 정말 3월부터 차가 못 다닌다"고 했다. "원아모집 당시 차량운행을 하겠다고 알리고 원생들을 받았는데 차량운행을 하지 못할 경우, 결국 유치원이 사기 모집을 한 셈"이라고 원장은 걱정했다.

도내 모든 공립유치원은 '비상대책'을 세우고 있지만 어린이들의 피해가 불가피하다는 것이 유치원 측의 공통된 목소리다.

안동꿈터유치원은 지난해 9천600만원이었던 차량 운행비가 올해 5천760만원으로 삭감되자 운행 대수를 2대에서 1대로 줄이는 방안을 고려 중이다.

포항의 한 병설유치원 관계자는 "지난해 3천500만원의 지원금으로 단독 운행을 했는데, 올해는 돈이 대폭 줄어들면서 우리 유치원과 가까운 2개 유치원 차량 운영비를 모두 합쳤다. 이렇게 해서 3천500만원을 겨우 맞췄다. 이 돈으로 차량을 공동계약해 운행할 예정"이라고 했다.

하지만 통학차량 공동 운영은 통원 시간이 엄청나게 길어지는 결과를 낳을 것으로 보인다. 3개 병설유치원이 차량을 공동 운영할 경우, 단독 운행 때 30분 정도 걸리던 것이 여러 곳을 돌아가야해 결국 통원 시간이 1시간 정도 더 걸린다는 것이다.

이 유치원 관계자는 "장거리 운행을 하다 보면 시간에 맞추지 못해 과속 운전을 해야 하는 경우가 생긴다. 어린이들의 안전을 심각하게 위협하는 것은 물론, 어린 아이들이 몇 시간을 차에서 보내야 한다"고 했다.

차량을 정상적으로 구할 수 없자 아예 차량운행비를 반납하려는 유치원도 있다. 안동의 한 초교 병설유치원은 올해 배정된 차량운영비 2천700만원으로는 도저히 통학차량을 계약할 수 없다며 예산을 반납하겠다고 교육청에 통보했다.

올해 차량운행비로 2천700만원을 배정받은 안동초 병설유치원과 복주초 병설유치원은 부족한 비용을 학부모 부담으로 돌리려는 계획을 검토 중이다.

경북유아교육협의회 황영례 회장은 "공교육의 내실화를 강조하면서도 유치원 통학차량 운영비를 줄이는 것은 물론, 계절유치원 운영비 전액 삭감 등 공교육 붕괴를 정부가 부추기는 중"이라며 "국가안전처를 만드는 등 안전한 대한민국을 만들자면서 어린이들의 안전을 위협하는 예산 정책을 가져가고 있다. 도교육청은 경비 지원 정책을 반드시 수정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어린이들 안전에 관심 없는 교육청

29일부터 어린이 통학버스에 대한 법정 안전 규정이 크게 강화된다. 기존 유치원 버스보다 더 안전한 장치를 갖춰야 어린이들을 실어나를 수 있는 것이다. 교육청은 더욱 강화된 차량안전 규정을 고려, '안전 비용'을 더 편성해야했지만 주던 돈마저 싹둑 잘라버렸다.

개정된 도로교통법을 보면 어린이 통학버스 신고 의무화가 시행된다, 어린이 통학차량으로 신고하고자 하는 경우, 황색 도색, 어린이의 신체구조에 적합한 좌석 안전띠, 점멸등 설치, 승강구 높이 조정(보조발판 설치), 후방카메라 또는 감지센서 설치, 운전석 옆 정지표시판(일명 천사의 날개) 설치 등 어린이 통학버스로서 필요한 구조를 반드시 갖춰야 한다. 교통사고로 인한 피해를 전액 보상할 수 있는 보험에도 가입해야 한다.

전세버스 업계 관계자들은 "어린이 통학버스 신고 의무화에 따라 차량 구조 변경'도색 등 올해부터 차량 한 대당 300만원 정도의 추가 비용이 드는데 오히려 지원액은 줄어들었으니 도저히 통학차량을 운행할 수 없다"고 했다. 거의 모든 전세버스 업체가 입찰에 참여하지 않을 방침이라는 것이다.

또 다른 전세버스 업계 관계자는 "전세버스 업자들이야 다른 수요처를 찾아가면 된다"며 "올봄부터 원아와 부모들이 큰 희생을 치르게 됐다"고 안타까워했다.

◆교육청 대책 있나?

3월 '통원 대란'이 우려되는데도 경북도교육청은 뚜렷한 보완 대책을 내놓지 못한 채 "돈 없다" 타령만 계속하고 있다. 써야 할 곳은 많은데 돈은 한정돼 있어 유치원 통학차량 운영비를 줄여 배정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경북도내 시'군 교육지원청이 내놓은 보완 계획은 현실성이 떨어지는 '탁상 대책'뿐이다. 교육지원청들은 지난해보다 적게 배정된 지원금과 관련 ▷인근 유치원과 함께 통학차량 공동 운영 ▷학교운영비 중 다른 운영비로 쓸 것을 끌어온 뒤 임차계약하기 ▷수익자 부담원칙에 따라 차량을 이용하는 원아 부모들에게 일부 교통비 받기 등의 방안을 내놨다.

교육지원청 실무자들은 현실성 없는 대책임을 인정하고 있다. 경산교육지원청 한 관계자는 "인근 2, 3개 병설유치원이 차 1대를 공동 이용할 경우, 어린이들이 오랜 시간을 버스 안에서 보내야 한다. 이렇게 되면 안전사고가 날 가능성이 크다. 적은 돈이라도 줄여보려다 정작 사고가 나면 엄청나게 큰돈을 들여도 수습이 안 된다. 실무자들도 난감하다"고 털어놨다.

경북도교육청 학교지원과 관계자는 "한정된 재원으로 예산을 편성하다 보니 어쩔 수 없었다. 누리과정에 대한 지원 등으로 유치원 차량 운영비는 물론, 각종 교육사업비, 학교기본운영비 등 관련 예산이 큰 폭의 규모로 감액 편성됐다"면서 "시'군 교육지원청 등과 협의를 해 대책을 세울 방침이지만 돈이 없는 상황에서 근본적인 해결방법이 나올 수 없다. 중앙정부가 누리과정 예산을 부담하는 등의 특단의 대책이 나와야 문제가 해결된다"고 했다.

이에 대해 유치원 한 관계자는 "아이들 안전에 필수적인 예산마저 돈이 없다며 절반 가까이 깎은 도교육청이 무슨 이유로 사립유치원 차량 운행비까지 새로 지원하는지 도무지 알 수 없다. 교육청 관계자도 모르쇠로 일관하는데, 말 못 할 이유가 있는 것 아니겠느냐"고 했다.

경산 김진만 기자 factk@msnet.co.

안동 권오석 기자 krstone5@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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