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달해의 엔터 인사이트] 쏟아지는 붕어빵 프로그램들

입력 2015-01-16 07:20:09

뭐가 달라? 똑같잖아!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이 없다지만 엔터테인먼트 업계에는 이상하리만치 유사한 콘텐츠가 많아 눈길을 끈다. 가요계에서 유사한 음악을 내놓고 표절 공방을 펼치는가 하면, 영화 및 방송계에서도 유사한 내용의 콘텐츠가 나와 원조논란이 벌어진다. 표절 운운할 만한 내용이 아니더라도 소재나 캐릭터 등이 비슷해 여러 가지 이슈를 생산하는 경우도 있다. '누가 먼저냐' 또는 '누가 따라했냐'를 따지는 것도 중요하지만 결국은 완성도를 높여 대중을 홀린 쪽이 승리하게 된다. 최근 대중문화계, 그중 방송계에서 찾아볼 수 있는 유사소재 콘텐츠들을 살펴봤다.

쭓'아빠! 어디가?'vs'슈퍼맨이 돌아왔다'

최근 2년에 걸쳐 예능계를 휩쓴 트렌드는 '육아'였다. 2013년 MBC '일밤-아빠! 어디가?'의 인기가 몰고 온 열풍이 2014년까지 계속 됐고, 2013년 말 KBS2가 '해피선데이-슈퍼맨이 돌아왔다'를 내보내면서 맞불작전을 펼쳤다. 육아예능에 대한 뜨거운 대중의 반응을 감안해 SBS까지 지난해 1월 '오! 마이 베이비'를 편성해 시청자 유입을 시도했다. 결과는 후발주자인 '슈퍼맨이 돌아왔다'의 승리로 마무리되는 분위기. '슈퍼맨이 돌아왔다'가 송일국과 세 아들 대한, 민국, 만세의 뜨거운 인기에 힘입어 20%대(닐슨코리아 전국 기준)에 육박하는 시청률로 호응을 얻은 데 반해 '아빠! 어디가?'는 멤버 교체 후 시들한 반응을 얻으며 5% 미만까지 성적이 떨어졌다. 급기야 MBC는 동시간에 '나는 가수다' 시즌2를 내세우며 '아빠! 어디가?'의 종영을 알렸다. 두 개 인기 콘텐츠의 성공에 기대 만든 '오! 마이 베이비'는 '특색없는 따라하기'라는 혹평 속에 4%대의 저조한 시청률로 고전 중이다. '카피 프로그램'이라는 오명을 벗지 못하고 있다. 육아 프로그램의 높은 인기 속에 KBS1은 지난해 5월부터 '엄마의 탄생'이란 또 한 편의 육아예능을 선보였다.

육아예능의 시작은 사실 아이들과 부모가 한자리에 모여 대화를 나누고 게임을 펼쳤던 SBS '붕어빵'부터라고 볼 수 있다. 스타와 자녀들이 자아내는 건강한 웃음을 생기있게 전달해 호응을 얻었다. '아빠! 어디가?'와 '슈퍼맨이 돌아왔다' 등 리얼 버라이어티 형식의 육아예능이 인기를 얻으면서 프라임타임에서 밀려났지만 '글로벌 붕어빵'으로 타이틀을 바꿔 일요일 오전에 전파를 타고 있다. JTBC '유자식 상팔자' 역시 '붕어빵'의 콘셉트를 차용한 스튜디오형 '육아예능'이다.

쭓검사 vs 검사, 기자 vs 기자 유사소재

지상파 드라마 중에도 소재나 캐릭터가 겹치는 예가 있다. 검사나 기자 등 전문직 캐릭터의 이야기를 펼쳐내는 드라마가, 또 다중인격을 가진 남자 주인공을 내세운 작품이 각각 편성돼 맞대결을 펼치고 있다.

먼저, 검사를 내세운 드라마는 MBC '오만과 편견'(연출 김진민, 극본 이현주)과 SBS '펀치'(연출 이명우, 극본 박경수)다. 두 작품 모두 검찰을 배경으로 검사들을 주요 캐릭터로 등장시키고 있다. '오만과 편견'의 경우에는 은행 채용비리와 뺑소니 사건 등 흔히 뉴스를 통해 접했던 사건들을 다루면서 그 이면에 도사리는 '거대악'과의 한판 승부를 현실감있게 그렸다. '펀치'는 검찰 내에서 벌어지는 권력다툼을 묘사하며 재미를 준다. 매력적이고 개성있는 캐릭터들을 내세워 갈등구조에 주목하면서 한층 더 드라마틱한 전개를 보여준다. 앞서 월화극 시장을 장악한 드라마는 '오만과 편견'. 지난해 10월부터 첫 방송돼 동시간대 시청률 1위 자리를 지켰다. 이어 12월부터 '펀치'가 방송되면서 치열한 자리다툼을 펼쳤다. 13일 마지막회에서 다시 1위 자리를 탈환하며 유종의 미를 거뒀다.

SBS '피노키오'(연출 조수원, 극본 박혜련)와 KBS2 '힐러'(연출 이정섭, 극본 송지나)는 사회부 기자들을 전면에 내세운 드라마다. '힐러'가 월화극으로, '피노키오'가 수목극으로 편성돼 정면승부를 벌이고 있지는 않지만 동시간대에 방송되는 유사 소재 드라마로 화제가 됐다. '피노키오'는 '눈길끌기' 식의 편협한 보도를 일삼는 매체의 횡포와 이로 인해 고통받는 이들의 이야기를 통해 '진정한 언론'의 역할에 대한 물음을 던지고 있다. '피노키오'에서 묘사하고 있는 언론의 과다경쟁, 또 이에 따라 발생한 희생자들의 모습이 현 언론계의 문제점들을 비틀어 보여주고 있다는 평가다. '힐러' 역시 기자 캐릭터를 주인공으로 삼았다. 잘나가는 방송사의 스타 기자와 3류 온라인 매체 기자가 사건의 축을 이룬다.

쭓이번엔 다중인격 멜로!

이어지는 유사 소재 드라마는 다중인격을 다룬 작품이다. 이미 이달 7일부터 MBC '킬미, 힐미'(연출 김진만, 극본 진수완)가 전파를 타기 시작했고, 이어 21일부터 SBS '하이드 지킬, 나'(연출 조영광, 극본 김지운)가 같은 수목극으로 편성돼 동시간대 1위 다툼을 벌인다. MBC와 SBS가 다중인격 소재 드라마로 수목극 맞대결을 시작하게 된 셈이다. 두 작품 모두 여러 개의 인격을 가진 남자 주인공과 그를 사랑하게 된 여자 주인공의 이야기. 연출방식과 줄거리는 다르지만 소재와 캐릭터 설정이 유사해 '한 쪽이 대놓고 따라한 게 아니냐'는 의혹마저 불러일으킨다.

쭓유사소재 겹치는 이유는?

방송계에서 유사 소재 콘텐츠가 생산되는 이유, 또 하필이면 동시간대 선을 보이게 되는 이유는 뭘까. 일단, 해당 콘텐츠의 제작 관계자들의 대답은 동일하다. '우연의 일치'라는 설명이다. 영화계나 드라마 시장이나 워낙 비슷한 소재의 대본이 많아 충분히 겹칠 수 있다는 말. 실제로 드라마의 경우 거의 6개월에서 1년치 라인업을 미리 잡아두고 수정 및 보완을 하기 때문에 경쟁사를 견제하기 위해 갑자기 기획을 해 유사 콘텐츠를 내놓는다는 게 쉽지 않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무조건 '우연'이라는 대답을 '정답'이라고 생각할 수는 없다. 대개 하나의 대본이 업계에 돌기 시작하면 소문이 나기 마련. 가령 특정 소재의 드라마 대본에 대한 평가가 좋았는데 작가 영입에 실패했다고 가정할 때, 이 소재를 차용해 또 다른 대본을 만드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드라마 대본의 경우 작품이 완성돼 드라마화되기 전에 저작권을 확보하고 시작하는 예가 많지 않아 '표절' 논란이 불거질 이유도 없다. 비슷한 시기에 비슷한 기획을 하며 준비하다 경쟁사를 견제하기 위해 동시간대에 선을 보이는 전략을 구사할 가능성도 크다는 말이다.

실제로 예능계에서는 경쟁사의 시청자 유입을 막기 위해 인기 콘텐츠의 콘셉트를 차용하는 경우가 잦다. 긴 시간을 두고 기획하는 드라마와 달리 예능의 경우 타 프로그램의 콘셉트를 차용할 경우 빠른 시간에 유사 콘텐츠를 내놓을 수도 있어 '무분별한 베끼기'까지 난무하고 있다.

오디션 프로그램 열풍 역시 이와 같은 이유 때문이었다. 당시 Mnet의 '슈퍼스타K'가 히트 콘텐츠로 떠오르자 MBC가 '위대한 탄생'이란 프로그램을 급조해 내놨다가 혹평을 들었다. 콘셉트를 차용했다고 하더라도 개성을 부각시키고 그 프로그램만의 장점을 살려내면 '새로운 콘텐츠'로 자리잡을 수도 있다. KBS2 '불후의 명곡'도 초반에는 MBC '나는 가수다'의 아류작이란 말을 듣다가 완성도를 높여나가면서 '나는 가수다'보다 더 굳건하게 입지를 다졌다.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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