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력 잃은 한국 경제 산업경쟁력 상실, 블랙홀 경계 '사건의 지평선'서 방황
대표적 문제의 공통점은 우려 아닌 현실, 발목 잡고 있는 짐부터 버려야 해결 가능
영화 '인터스텔라'에도 나오는 사건의 지평선(event horizon)이라는 물리학 용어가 있다. 이코노미스트로서 그 정확한 의미는 모르겠으나 블랙홀로 빨려 들어가는 경계이며 한 번 들어서게 되면 빛조차도 빠져나올 수 없는 것으로 이해된다.
경제에도 사건의 지평선이라는 것이 있다면 한국 경제가 바로 거기에 다가서고 있다. 바로 한국 경제가 어쩔 수 없는 힘에 의해 동력을 잃어가고 균열마저 보이기 때문이다.
동력을 잃어가는 문제는 산업경쟁력의 상실을 의미한다. 이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오래전부터 걱정해 왔던 것이다. 핵심은 중국의 맹렬하고도 빠른 추격이다. 산업현장의 목소리를 들어 보면 이렇게 빨리 쫓아올 줄 몰랐다고 한다. 또 뚜렷한 대응 방안도 없다고 한다.
원인을 따져보면 저부가'저기술 제품 정도는 중국에 내어 주어도 우리는 중국보다 월등히 높은 수준의 기술 및 품질 경쟁력을 가지고 있다는 생각에서 아무것도 안 했다.
우리 메모리반도체 산업이 세계 1등이라는 사실은 누구나 알지만 더 부가가치가 높은 비메모리 부문까지 포함할 경우 중국이 기술 수준과 시장점유율에서 한국을 넘어서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 이는 드물다. 우리 자동차 산업이 세계 '톱5' 내에 있다는 것은 알지만, 차세대 자동차인 전기자동차 부문에 대한 기술력은 우리가 중국을 따라잡지 못할 정도로 격차가 크다는 점도 생소할 것이다.
더 피부에 와 닿게 이야기한다면 철강, 화학, 조선 산업에서 이미 중국과의 경쟁에 패배하여 산업 내 우리 기업들이 구조조정을 해야 한다고 말하면 이해가 될지 모르겠다.
경제의 균열 문제는 과도한 부채를 말한다. 경제 연구기관들이 모여서 세미나를 하면 지금 한국의 가계 부채 문제를 '폭탄 돌리기'라고 말한다. 언젠가는 터진다는 말이다. 그 폭탄이 경제에 주는 파괴력을 줄이기 위해서는 조금이라도 터지는 시간을 앞당겨야 한다.
시간이 갈수록 폭탄의 크기가 기하급수적으로 커지기 때문이다. 이 폭탄은 외환위기 이후부터 시작되었다. 그런데 정치적인 이유로 모든 정권들이 임기 중에는 그냥 넘어가곤 하였다. 왜냐하면 가계 부채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디폴트나 부채탕감과 같은 과격한 정책 이외에는 없기 때문이며 이는 곧 선거에서 표를 잃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1천조원이 넘는 가계 부채는 지금도 끊임없이 늘어나고 있다. 부채의 또 다른 위협은 정부 부문에서 비롯된다. 금융위기 이후 경제 침체가 장기화되면서 세수입은 크게 늘어나지 못한 채, 복지 수요 충족을 위한 정부의 정책적 고려 때문에 재정건전성이 위협받고 있다. 정치는 민심의 반영이라고 한다면 특정한 누구의 책임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잘못이다. 성장의 논리로 경제적 불평등을 무마하기에는 한국 경제가 너무 발전해 있다.
복지 수요가 증가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상황이다. 그에 대한 정치권의 정책적 대응도 불가피하다. 그러나 나라의 곳간이 비어가는 현실을 생각한다면 시급성을 따져 어떤 부분에서는 'No'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안타깝게도 그러한 용기를 가진 정치인이나 정책담당자들은 없다. 오히려 좋은 것이 좋은 것이고, 내 돈 아니니 선심 쓰듯 새로운 복지정책을 마구 쏟아낸다.
한국 경제를 위협하는 대표적인 문제들의 공통점은 우려가 아니라 현실이라는 점이다. 그리고 점점 더 악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그 결과는 OECD 국가이면서 국민소득이 1만달러에 불과한 멕시코의 경우나 '잃어버린 30년'의 덫에 갇혀 허덕이는 이웃나라 일본을 보면 된다.
현실 문제로 미래를 걱정할 여유가 없고 의지는 꺾이며 희망은 어둠 속으로 사라지는 '블랙홀'이 되는 것이다. 한국 경제가 블랙홀의 경계 즉 사건의 지평선을 넘어서지 않기 위해서는 무엇인가 결단을 해야 한다. 경제의 발목을 잡고 있는 짐이 되는 부분에 대한 미련을 버려야 한다.
그 짐이 무엇인지는 다들 알고 있다. 행동으로 옮기는 것이 중요할 뿐이다. 영화 인터스텔라의 끝 부분에서 주인공은 우주선을 사건의 지평선으로부터 멀어지게 하기 위해 자신이 탄 모듈을 블랙홀로 버리면서 작용과 반작용의 뉴턴(Newton) 3법칙을 말한다.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무언가를 버려야 한다."
주원/현대경제연구원 수석연구위원
댓글 많은 뉴스
문재인 "정치탄압"…뇌물죄 수사검사 공수처에 고발
홍준표, 정계은퇴 후 탈당까지…"정치 안한다, 내 역할 없어"
세 번째 대권 도전마저…홍준표 정계 은퇴 선언, 향후 행보는?
대법, 이재명 '선거법 위반' 파기환송…"골프발언, 허위사실공표"
[매일문예광장] (詩) 그가 출장에서 돌아오는 날 / 박숙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