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미화 칼럼] 국제시장과 서문시장

입력 2015-01-12 05:23:13

전후 피란도시 대구와 부산, 영화 제작지원 부산에 기회

미래 준비해야 지도자 자격

연초 대구의 두 지도자가 공식석상에서 부산을 배경으로 한 영화 '국제시장'을 언급했다. 우동기 대구시교육감은 지난 7일 대구 인터불고호텔에서 열린 대구여성신년교례회에서 "국제시장에서는 아버지가 가정과 나라를 바꾸었다면, 서문시장에서는 어머니가 가정과 세상을 바꾸는 영화가 제작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영화 '국제시장'이 결핍을 모르는 요즘 학생들에게 근'현대사를 이해하고 가족애와 역경을 극복할 기회를 준다고 판단해서 무료관람을 실시하고 있는 대구교육계 수장다운 발언이었다. 나름 의미를 지닌다.

영화 '국제시장'을 언급한 또 한 사람은 권영진 대구시장이다. 권 시장은 신년 좌담회에서 대구가 너무 산업화시대와 특정 그룹에 포커싱 되어 있다면서 이를 바꾸겠다는 의지 천명과 함께 영화 '국제시장'을 언급했다. 영화를 보고 펑펑 울었다고 했다. 물론 메탄가스가 차오르면서 갱도가 무너져 매몰됐다가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건진 덕수와 달구, 피란길에 업었던 막순이를 잃어버렸다가 이산가족상봉을 통해 찾는 장면 등에서는 저절로 눈물이 나온다.

하지만 영화 '국제시장'의 흥행성공을 보고 있으면 한때 영화의 메카였던 대구의 잃어버린 기회에 대한 안타까움이 더 크게 오버랩된다. '국제시장'은 배경을 대구 서문시장으로 대체했어도 아무 문제가 없다. 이 영화의 소재인 흥남철수와 파독광부, 파월 장병이나 기술자들의 애환과 이산가족상봉 등은 온 국민이 다 같이 겪은 역사적 아픔이지만 피란민의 삶을 담아낼 도시는 전화(戰禍)를 입지 않은 대구와 부산 외에는 없다. 대구는 한때 한국영화의 메카였다.

'아리랑'으로 한국 영화사에 금자탑을 이룬 춘사 나운규와 쌍벽을 이룬 성파 이규환은 대구산(産) 최고의 영화감독이었다. 고향 대구를 끔찍이 사랑하여 가창 냉천 세트장을 배경으로 '춘향전'을 만들어 대성공시켰다. 여주인공 조애령은 일거에 톱스타가 되었다. 또 이규환 감독이 한국 영화사상 가장 시적인 제목의 저항영화 '임자 없는 나룻배'를 촬영한 곳은 화원유원지이다. 피란시절 민경식 감독이 '태양의 거리'를 만든 곳도 대구였고, '미망인'을 찍은 여류감독 박남옥도 지역 출신이다.

대구의 이런 문화적 자산들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유능한 영화광이었던 치과 의사 모 씨는 새로운 영화제작 기기까지 만들었지만 전직 대구시장의 마음을 얻는 데 실패했고, 공무원들의 간섭은 도를 넘었다. 대구국제사진비엔날레의 경우, 특정업체의 액자를 구매하라는 언질까지 주어 물의를 빚기도 했다.

부산은 다르다. 협치를 통해 부산국제영화제를 성공시켰다. 부산시는 예산만 지원하고, 프로그램은 민간 전문가들이 짰다. 초기 10년간 부산국제영화제를 이끈 김동호 대통령 직속 문화융성위원회 위원장은 "간섭하면 하지 않겠다"며 부산시의 외압을 차단했다. 부산영화제가 열리면 줄리아 로버츠 등 세계적인 영화인 친구들을 초청, 흥행을 도왔다. 그렇게 부산국제영화제는 세계 5대 영화제 반열에 들었고, 지난해 부산발(發) 영화는 '국제시장'을 포함해서 35편이나 제작되었다. 천만 관객을 모은 부산 영화만 해도 '국제시장' '해운대' '변호인' 등 3개나 되고, 요즘 부산은 '국제시장' 후광 효과로 북적이고 있다.

굴뚝 없는 첨단산업, 영화산업의 정착을 위해 부산시는 역량을 총동원하고 있다. 일정 분량 이상을 부산에서 촬영하면 제작비 절반을 지원해주고, 부산영상위원회와 한국영화제작가협회는 부산에 본사가 있거나 이전해오면 지원해주는 부산영화투자조합까지 운영하고 있다. 대구 서문시장보다 부산 국제시장이 나올 수밖에 없는 배경이다. 미래를 준비하는 것은 지도자의 역할이다. 권영진 대구시장은 '국제시장'을 보면서 그냥 울 것이 아니라 '대구의 실기'(失機)에 대해 가슴 치며 새로운 대안을 찾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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