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부] 톨레랑스

입력 2015-01-10 06:04:46

긁어 부스럼을 만든다고 한다. 아무렇지도 않을 일을 건드려 괜한 걱정거리를 만들 때 쓰는 말이다. 7일 프랑스 파리에서 벌어진 시사풍자 주간지 '샤를리 에브도'에 대한 테러가 딱 그렇다.

프랑스 국적의 이슬람 극단주의자 3명이 '샤를리 에브도'의 편집국에 난입해 언론인과 경찰 12명을 총으로 쏴 숨지게 했다. 테러 전 실린 이슬람 극단주의 무장단체 ISIS의 지도자 알 바그다디를 풍자한 만화가 이들 테러리스트들을 자극한 것으로 보인다. 총을 난사하며 "알라신은 위대하다", "예언자의 복수가 행해졌다"고 외쳤다니 이런 분석이 터무니없지는 않다.

후폭풍이 만만치 않다. 테러 후 상황은 테러리스트들이 노렸던 대로 흘러가지 않고 있다. 예언자를 만평의 도구로 삼는 언론사나 언론인을 응징하면 알라신의 위대함이 돋보일 줄 알았더니 실상은 그들이 응징당하는 꼴이다.

사건 현장에서 불과 1㎞도 떨어지지 않은 공화국 광장엔 발 디딜 틈 없이 많은 사람들이 모여 "내가 '샤를리'"라고 외쳤다. '두렵지 않다'(Not afraid)란 팻말을 내걸고 밤새 광장을 지켰다. 광장엔 '샤를리 에브도'의 그간 만평이 등장하고 언론의 상징인 연필, 펜이 수북이 쌓였다.

미국, 영국, 이탈리아 등에서도 수십만 명의 추모 인파가 연일 모여 이번 테러를 규탄하고 있다. 전 세계가 '샤를리' 편이 되어 극단주의 이슬람뿐만 아니라 이슬람 자체에 등을 돌리고 있다. 이 와중에 정작 '알라의 위대함'을 외쳤던 이들은 도망자 신세다.

그들이 응징했다는 '샤를리 에브도'는 오히려 세계적인 관심을 끌고 있다. 평소 6만 부 정도로 알려진 발행부수를 오는 14일 발행될 다음 호에선 100만 부로 늘려 잡았다. 르몽드 등 프랑스 언론들도 돕겠다고 팔을 걷었다. 구글이 조성한 펀드에선 약 25만유로(한화 3억3천만원가량)를 지원한다는 계획이다.

프랑스엔 유럽 국가 중 가장 많은 500만 명의 무슬림이 산다. 프랑스가 그동안 톨레랑스(관용, 타인의 사상'행동에 대한 존중을 뜻하는 프랑스어) 정신에 따라 아무런 차별 없이 무슬림을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이번 테러로 프랑스의 톨레랑스 정신이 흔들리고 있다. 결국 테러를 통해 얻을 수 있는 것은 부스럼뿐이다. 테러리스트들은 이를 일찌감치 깨달았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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