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민아의 세상을 비추는 스크린] 언브로큰…여전사 '졸리'일본을 발칵 '뒤집다'

입력 2015-01-09 07:33:36

日 포로수용소서 살아남은 미국 육상스타 '기적 같은 삶'

영화 '언브로큰'은 세계적으로 한창 논쟁 중이다. 영화의 실제 퀄리티는 별개로 한 채, 일단 영화가 영화 내적으로든 외적으로든 많은 사람들에게 회자하면 관심의 초점이 되고 그것이 영화 흥행과 직결되는 결과를 낳는다. '국제시장'이 이에 대한 대표적인 사례인데, '국제시장'이 처음 공개 후 어느 정도 흥행은 이어갈 것이라고 예측했지만 많은 이들이 천만 관객은 힘들 것이라고 진단했다. 하지만 영화를 둘러싼 정치적 논쟁이 영화에 대한 관심을 대대적으로 불러일으켰고, '국제시장'은 천만 관객의 고지를 곧 점령할 것이 거의 확실시 된다. '언브로큰'의 흥행 추이도 그래서 관심의 대상이 된다.

2차 세계대전 실화를 바탕으로 한 '언브로큰'은 일본 군인에 대한 묘사 문제로 일본에서 보이콧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다. 제국주의 일본은 우리와도 직결된 문제여서, 영화 속에 한국은 등장하지 않지만 일본 관객의 움직임과 대비하여 한국 관객의 선택이 자못 궁금해진다. 이 영화를 연출한 세계적인 빅스타 앤젤리나 졸리는 일본 입국이 금지되고 악마라고 비난받고 있을 정도다.

영화가 이렇듯 사회적 반향을 불러일으키니 영화는 입소문을 타고 흥행에는 확실히 도움이 된다. 지난 연말 미국 내에서 개봉 시 첫 주 흥행순위 1위를 기록했고, 2주차인 새해 주말 3위를 기록하며 흥행전선에 이상이 없음을 입증했다. 영화는 인간승리의 드라마이다. 하지만 심장을 두드리는 감동보다는 인물의 고생담을 리얼하게 보여줌으로써 전쟁의 참상을 생생하게 드러낸다는 점에서 흥행 요소는 조금 덜하다. 그래도 보고 싶게 만드는 것은 역시 소셜엔터테이너 '앤젤리나 졸리'라는 브랜드와 일본 관객이 보여주고 있는 유난스러운 행동에 대한 반감 때문일 것이다.

앤젤리나 졸리의 세 번째 연출작인 이 영화에 대한 신뢰감은 졸리보다는 각색을 맡은 코엔 형제와 '인터스텔라' 제작진으로부터 나오는 건 어쩔 수 없다. 코엔 형제는 미국 독립영화계가 자랑하는 시네아스트로, '파고'(1996)로 칸영화제 감독상을 수상했고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2008)로 아카데미 작품상을 수상했다. 사회적 영향력이 연기력을 능가하며 독립적인 여성의 롤모델이 된 대스타 앤젤리나 졸리가 여성 이슈를 다룬 영화가 아닌 남자들만 등장하는 전쟁영화를 연출한 것은 의외이지만 신선하다. 역사와 휴머니즘에 대한 관점, 스펙터클한 전투 신, 감동을 이끌어내는 연출력 등 감독으로서의 졸리의 다양한 능력을 보여줄 시험대가 되는 텍스트이기 때문이다.

영화는 세 부분으로 나뉜다. 첫 번째 파트는 아무런 열정 없이 마음대로 살아가던 10대 반항아 루이 잠페리니(잭 오코넬)가 운명처럼 육상을 시작하고, 19살에 최연소 올림픽 국가대표로 발탁되어 1936년 베를린 올림픽에 출전하는 이야기이다. 두 번째 파트는 루이가 2차 세계대전 당시 공군에 입대하여 수많은 전투에서 살아남지만 작전 수행 중 전투기 엔진 고장으로 태평양에 추락하여 망망대해에서 47일을 버텨낸 목숨을 건 승리를 다룬다. 세 번째 파트는 일본군에게 체포되어 포로수용소에 갇히며 갖은 고문을 이겨내고 생존해내는 이야기이다.

한 사람이 이 모든 드라마를 겪었다는 사실은 어쩌면 가혹한 신의 저주 같아 보이지만, 루이 잠페리니는 생환 이후 복수보다는 용서를 실천하며 살고자 노력했다. 그는 가해자를 용서하기 위해 1998년 81세의 고령에도 불구하고 일본 나가노 동계올림픽 성화 봉송 주자로 참여한다. 그는 당시 수용소에서 자신을 괴롭히던 와타나베에게 만남을 요청했지만 거절당한다. 루이는 자신의 고난을 그린 영화의 완성을 보지 못한 채 97년의 생을 마감했다.

스펙터클과 고난도 전투 신이 화려하게 전개되고 인간승리 드라마가 감동의 쓰나미처럼 몰려오는 영화는 아니다. 일본군인 와타나베의 교묘하고 악랄한 괴롭힘은 일제 식민지를 경험한 우리에게는 어쩌면 밋밋하게 보일 정도다. 아직은 설익은 졸리의 연출력의 한계가 보이지만, 난 이 영화에 열정적 지지를 보낸다. 영화는 감동과 희열로 요란하게 관객을 사로잡기보다는 당시의 고통에 대한 리얼한 묘사를 진정성 있게 전달한다. 그럼으로써 영화라는 매개체를 통해 잔인한 역사를 반추하며 여전히 반복되고 있는 현실의 잔혹함에 대해 생각하도록 해준다.

일본인들의 건강한 시민의식의 시험대가 될지도 모를 영화다. 와타나베 역의 배우가 한국계 아버지를 둔 인기 록 가수 미야비라는 점도 화제다. 일본 내에서 미움의 대상이 될 것이 뻔해 보이는 상황에서도 잔인한 가해자 일본 군인을 맡아 열연한 그의 용기를 응원하며, 일본 연예인인 그의 앞으로의 행보를 지켜볼 일이다.

<영화평론가>

◆시네아스트=영화 작가나 제작자를 뜻하는 프랑스어에서 유래한 용어. 일반적으로는 '영화인'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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