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9달러. 반세기 전 1961년 우리나라의 1인당 국민소득이다. 세계 125개국 중 101번째, 빈털터리 나라였다. 박정희 정권은 '수출 아니면 죽음이다. 팔 수 있는 건 다 팔라'며 수출입국을 강조했다. 영화 '국제시장'의 시대적 배경이 된 1960년대 우리의 모습이다. 닥치는 대로 내다 팔고 돈벌이를 위해 이역만리에 사람들을 보냈다.
1960년대 후반 초등학교 교실 흑판에는 어김없이 '100억불, 1천불'이라는 큼지막한 숫자가 나붙었다. 어깨에 힘이 들어간 반장도, 학급 허드렛일을 맡은 주번도 이 숫자에는 얼씬도 못했다. 국가 시책이자 담임선생님의 엄명 때문이다. 1980년 수출 100억달러, 1인당 국민소득 1천달러를 달성하면 모두 잘살게 된다는 세뇌용 숫자였다.
우리가 100억달러를 부르짖던 때 일본은 기록적인 무역흑자로 경제 신화를 썼다. 양국 경제 격차는 수십 배가 넘었고 흑자 규모는 어른과 어린아이 차이만큼 컸다. 1980년에서 85년까지 일본의 흑자는 팝콘 튀듯 늘었다. 70년대 오일쇼크로 크고 튼튼한 '미제'가 외면받자 엔화 약세에 힘입은 일본 무역은 날개를 달았다. 작고 기름 덜 먹는 소니 전자제품과 도요타 자동차가 선봉장이었다.
하지만 환율전쟁에서 밀린 일본은 이후 '잃어버린 10년'에 빠져들었다. 격차를 좁히던 한국은 2013년 마침내 무역 흑자 규모에서 처음 일본을 뛰어넘었다. 수출에서 벌어들인 돈주머니만큼은 더 두툼했다. 일본이 사상 최대 적자를 보는 동안 우리는 2년 연속 400억달러가 훨씬 넘는 흑자를 올렸고 올해는 520억달러를 내다보고 있다. 그런데 일본이 그렇듯 지금 한국은 '부유한 국가, 가난한 국민'이다. 국민소득 3만달러 시대를 입에 올리지만 실감은커녕 '떨어지는 칼을 잡는' 처지다. 경기 침체로 가계소득이 늘지 않아 소비는 바닥을 기고 기업은 투자를 꺼리는 현상이 지속되고 있다. 기업이 500조원이라는 돈을 쌓아두는 동안 청년 태반이 백수로 전락했다.
'국제시장'에서 아버지는 "내가 없으면 네가 가장"이라는 말과 함께 자기 외투를 아들 덕수에게 입혀준다. 낡은 외투는 전쟁의 고된 역사와 가난의 상징이다. 지금의 아버지들도 아들에게 외투를 물려주어야 한다. 그러나 가족을 책임지라며 "이제는 네가 가장"이라는 말을 선뜻 꺼낼 수 없다. 우리 앞에 '국제시장'과 같은 팍팍한 현실이 가로막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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