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동의 유럽 미술관 기행] ⑪사진이 포착한 순간들

입력 2014-12-20 07:01:50

백악관서 큐빅 맞추는 부시, 진짜일까 가짜일까

독일 프랑크푸르트 쉬른미술관에서 열린
독일 프랑크푸르트 쉬른미술관에서 열린 '파파라치'전. 출입문에 레드 카펫을 깐 뒤 양옆에 수많은 취재 카메라를 설치해 플래시와 셔터 소리가 요란하게 터지는 가운데로 관람객이 들어가도록 전시를 구성했다.
'파파라치'전에 출품된 앨리슨 잭슨의 작품.

사진이 포착한 순간들을 놓고, 기록적인 가치와 의미를 예술적으로 재해석하는 흥미로운 전시들이 열렸다. 하나는 전쟁의 비극성을 드러내는 전시로 현재 영국 런던 테이트모던에서 진행 중인 '전쟁, 시간, 사진'(Conflict, Time, Photography)전이고 다른 한 전시는 독일 프랑크푸르트 쉬른미술관에서 열린 '파파라치' 사진전(Paparazzi! Photographs, Stars and Artists)이다.

'파파라치'전은 지금까지 한 번도 다뤄지지 않았던 주제로 500여 점의 사진과 실물 자료들을 예술사회학의 관점으로 접근해 보여주었다. '파파라치'는 주로 연예인이나 사회 명사들의 은밀한 사생활을 포착한 사진을 얻기 위해 활동하는 사람들이다.

전시 취지는 전 지구적 현상이 된 파파라치를 탐구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미술관 측은 파파라치 사진의 테크닉과 미학에 대한 통찰을 제공하는 한편 사회적 명사와 사진작가 사이의 복합적 관계를 새롭게 조명할 것이라고 밝혔다. 미술관 측은 먼저 출입문에 레드 카펫을 길게 깐 뒤 양옆에 수많은 취재 카메라를 설치해 플래시와 셔터 소리가 요란하게 터지는 가운데로 관람객이 들어가도록 전시를 구성했다. 첫 번째 섹션에서는 파파라치 분야의 고전적 사진들이 소개되어 있다. 예를 들면 타블로이드 신문에 실려 널리 알려진 재키 케네디 오나시스나 과거 유명 배우들의 스냅 사진들이다.

파파라치 보도사진을 차용하거나 거기서 영감을 얻어 작품을 하는 많은 현대 화가들의 사례도 만날 수 있다. 리처드 해밀턴, 게르하르트 리히터, 앤디 워홀, 신디 셔먼 등은 지상에 실린 사진에서 영감을 받아 그런 사진을 모티프로 작업하는 작가들이다. 파파라치 사진에 예술적으로 접근한 그들의 실제 작품들을 함께 보여줌으로써 전시내용이 한층 풍부해졌다.

파파라치 사진만이 가진 독특한 특징을 양식으로 채택한 작가도 있다. 앨리슨 잭슨은 유명 인사들을 둘러싼 루머와 가십을 연출 사진으로 재현하는 작가다. 처음 그녀의 사진을 보면 깜짝 놀란다. 믿기지 않는 장면들이 마치 몰래 카메라에 잡힌 영상처럼 공개되기 때문이다. 백악관 집무실을 몰래 엿보다 우연히 포착한 장면 같은 사진(당시 부시 대통령이 루브릭 큐브를 맞추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는 사진)은 실소를 금치 못한다. 이 모습을 실리콘으로 실물 크기 인형으로 재현해 함께 전시했다. 이 밖에도 화장실에 앉아 있는 여왕, 고 다이애나 왕세자비가 관객을 향해 중지를 세워 보이는 사진 등 그녀의 짓궂은 작품들도 있었다. 이들 모두 작가의 상상에서 나온 허구들이지만 어쩌면 대중이 궁금해하고, 보고 싶어 하는 장면인지 모른다. 관람객의 관음증을 자극하는 억누르기 힘든 매력을 지닌 이런 사진들을 '파파라치 사진'처럼 만들어내는 것이 그녀의 개성이다.

테이트모던에서 진행 중인 '전쟁, 시간, 사진'전은 전시 내용보다 사건의 발발 시간을 기준으로 전개하는 전시 구성 방식이 더 큰 매력이었다. 맑고 건조한 들녘을 배경으로 지평선 위에 구름 한 조각 같은 포연이 피어오르는 평화로운(?) 장면의 사진으로 전시는 시작된다. 바로 아프가니스탄에서 전쟁의 개시를 알리는 불길한 조짐을 보여주는 사진이다. 뒤이어 배치한 본 전시의 첫 사진은 월남전 당시, 포격에 놀란 미 해병대 병사의 넋 나간 표정을 클로즈업한 것이다. 이어 원폭 투하 뒤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의 모습을 시간을 거슬러가며 전시하다 마지막은 인간이 저지르는 끔찍한 파괴의 결과를 예상한 사진으로 구성했다.

김영동 미술평론가

최신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