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화와 현실을 잇는 금오산] <4> 금오산의 화룡점정, 성안습지

입력 2014-12-05 08:00:00

근육질 화산암산 정상에 습지…빗물 모였다 흘러 동·식물 생명수

금오산 정상 아래 해발 800m 지점에 위치한 성안습지. 이 높은 곳에 습지가 있다는 것이 신비롭다. 1970년 초까지 습지를 중심으로 10여 가구가 마을을 이루며 살았으며, 산짐승과 식물들에게는 생명수이다
금오산 정상 아래 해발 800m 지점에 위치한 성안습지. 이 높은 곳에 습지가 있다는 것이 신비롭다. 1970년 초까지 습지를 중심으로 10여 가구가 마을을 이루며 살았으며, 산짐승과 식물들에게는 생명수이다
성안습지 바로 아래 이끼 긴 금오산 계곡. 성안습지의 영향으로 억겁의 세월이 흘렀지만 습지에서 흘러내리는 물은 끊이지 않는다. 이채근 기자 mincho@msnet.co.kr
성안습지 바로 아래 이끼 긴 금오산 계곡. 성안습지의 영향으로 억겁의 세월이 흘렀지만 습지에서 흘러내리는 물은 끊이지 않는다. 이채근 기자 mincho@msnet.co.kr

두 제자가 오랫동안 한 스승 아래에서 그림을 배웠다. 두 사람 모두 학식이 높은데다 재주가 뛰어나 장차 한 세상을 크게 열리라는 칭송이 잦았다. 그들이 배움을 구하는 나이 든 스승은 산과 강과 바다를 그리는 사람이었다. 공부를 시작한 지 수만 년의 세월이 흘렀고, 두 제자는 각자의 산과 강, 호수를 그렸다. 그들이 그린 크고 작은 산은 그대로 오랜 세월 우뚝 솟아 변함없는 산이 되기도 했고, 어떤 강은 허연 강바닥을 드러내고 사라져버리기도 했다.

◆차가운 절제를 갖춘 산, 금오산

스승은 두 제자에게 금오산을 그리라고 말했다. 과제는 '힘차고 강해서 결코 허물어지지 않을 산'이었다. 수만 년이 다시 흐른 뒤 마침내 두 제자는 각자가 그린 그림을 스승 앞에 내놓았다.

한 제자가 내놓은 그림은 깎아지른 절벽과 울퉁불퉁한 바위로 이루어진 그야말로 '근육질'의 산이었다. 제자는 말했다. "제가 그린 산은 바위와 깎아지른 절벽으로 이루어진 단단한 산입니다. 세월이 아무리 흘러도 결코 허물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스승은 고개를 저었다. 스승은 두 번째 제자의 그림을 선택했다. 깎아지른 절벽과 함께 한쪽에는 편편한 습지를 가진 산이었다. 스승은 두 번째 그림을 선택한 까닭을 말했다. "화룡점정"(畵龍點睛).

용을 그릴 때는 일필휘지로 힘차게 그려야 한다. 그래야 하늘로 날아오를 수 있는 힘이 있다. 그러나 마지막 '눈'(目)을 찍을 때는 '절제'해야 한다는 말이었다.

맹렬한 열정 없이는 일을 시작할 수 없으나, 진저리날 만큼 차가운 절제가 없다면 일을 끝낼 수 없다는 말이었다. 깎아지른 바위로 우뚝 솟은 산은 높고 강하나 물을 머금지 못해 생명이 깃들 수 없고, 이는 결국 산이 아니라 사막에 불과할 뿐이었다.

◆금오산의 양동이, 성안습지

금오산은 화강편마암을 뚫고 중생대 백악기의 화산암류가 뚫고 들어가서 형성된 산이다. 화산암류는 기복이 심한 산세(山勢)를 나타내는데, 흔히 해발 700m 높이 부근에서 급경사와 절벽, 깊은 골짜기와 같은 지세를 보인다. 금오산은 성안습지를 중심으로 동서 방향으로 가파른 절벽과 급한 경사를 이루는 짧은 골짜기로 형성돼 있다. 최고봉인 현월봉(976m)을 비롯해서 약사봉(958m), 보봉(933m) 등이 솟아 있고 서쪽에는 서봉(851m)이 우뚝 솟아있다.

산세가 이러니 물을 머금을 힘이 없다. 물이 없으니 생명이 깃들 수 없고 황량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실제로 금오산은 강우기를 제외하고는 물이 많지 않다.

그럼에도 금오산의 크고 작은 계곡에 물길이 끊어지지 않는 것은 성안습지에 형성된 고위 평탄면이 빗물을 받는 커다란 양동이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넓고 평탄한 습지에 내린 빗물이 북쪽 계곡을 따라 흘러 산 중턱에 위치한 대혜폭포를 울리며 떨어져 굽이굽이 계곡을 돌아 금오지에 고인다. 금오산이 수많은 생명을 품는 힘은 성안습지에서 비롯된 것이다.

해발 800m 지점에 위치한 성안습지는 1971년 화전민촌 철거 전까지 10여 호 정도가 살았고, 조선시대인 1600년대에는 40여 호가 살았다고 기록되어 있다.

◆희귀 동식물의 보고(寶庫), 성안습지

예로부터 성안마을은 9정(井)7택(澤)이라고 하여, 우물과 못이 많았다. 특히 성안습지에는 금오정을 비롯해 상단습지, 중간습지, 하단습지 등 물이 많다. 1971년 성안마을에 살던 사람들이 떠나고 40여 년. 성안습지는 식물과 동물의 안식처로 돌아갔다. 그 덕분에 성안습지에는 물가에서 자생하는 갈대 군락지와 더불어 물이나 물가에 사는 동식물들이 많다. 도롱뇽, 참개구리, 두꺼비, 누룩뱀을 비롯해 오염되지 않은 맑은 물에만 사는 가재도 서식하고 있다.

또 높고 깊은 산 습지에 자라는 곤달비(국화과), 높은 산의 숲 그늘에서 자라는 금강초롱(초롱꽃과), 산지의 숲 속 그늘진 곳에 자라는 산작약(미나리아재비과)를 비롯해 솔나리(백합과), 배초향(꿀풀과), 뻐꾹나리(백합과), 금꿩의다리(미나리아재비과), 단풍취(국화과), 노루귀(미나리아재비과) 등이 자생하고 있다. 한국 특산식물인 지리대사초, 죽대, 호랑버들, 매화말발도리, 금강제비꽃, 가는 참나물 등은 다른 곳에서는 보기 드문 식물이다.

특히 금오산에 서식하는 솔나리(백합과)는 환경부에서 희귀종으로 지정하고 보호(지정번호 식-11)하는 식물이다. 솔나리는 햇빛이 어느 정도 들고 바람이 잘 통하며, 다른 풀이 잘 자라지 않는 높은 산등성이나 해발 800m 이상의 풀밭이나 바위틈에서 주로 자란다. 금오산이 아닌 다른 곳에서 좀처럼 구경하기 어려운 까닭이다.

식물뿐만 아니라 금오산에 서식하는 멧돼지, 너구리, 고라니, 하늘다람쥐, 황조롱이, 뻐꾸기 등 동물들도 성안습지에 기대어 산다. 그야말로 '성안습지'는 울퉁불퉁한 근육질 금오산의 화룡점정인 셈이다.

조두진 기자 earful@msnet.co.kr

최신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