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지 기행 아시아를 가다] 카렌족 마을 순례(3)

입력 2014-11-27 07:56:33

간단한 약'주사 갖춘 병원…된장 닮은 '투어 나우'는 햇볕에 발효

◆오지 마을 저녁 무렵

언덕을 오르거나 산모롱이를 돌면 마을이 하나 나온다. 이번 마을은 '빠껫 따이'(남쪽)이다. 동구 밖에는 소를 몰고 오는 사내, 깔리양 천가방을 메고 농기구를 든 아낙, 볏단을 오토바이에 실은 청년, 부인을 오토바이에 태우고 오르막길을 올라온 사내에게 "싸와디 캅"(안녕하세요) 하고 인사를 건네자 선량하게 웃으며 멈춘다. 어른이 되어도 저렇게 순박하게 웃을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하니 잔잔한 감동이 밀려온다. 산골마을에 어울리지 않게 큰 건물이 있어 물어보니 "하스피틀"(병원) 하면서 낯설게 발음한다. 세 겹 네 겹 주렁주렁 달린 살찐 바나나를 잘라 오는데, 지천으로 널려 있는 바나나는 허기가 지면 누구나 따 먹으면 된다. 하루 일을 끝낸 마을 사람들이 속속 돌아온다. 할머니와 돌아오는 손녀는 종일 얼마나 까끌막에서 뒹굴었을까, 옷에 흙이 범벅이다. 사내 하나는 집 앞에 앉아 대바구니를 수리하고 있다. 어스름한 저녁 빛에 실눈을 뜨고 틈새를 가늠하느라 여념이 없다. 어둑한 구멍가게 안에는 이 산중과 어울리지 않게 잘생긴 처녀 총각이 있다. 인근 도시인 치앙마이와 람빵에 있는 랏차팟 대학을 졸업했다고 한다. 대들보라도 세우려는 것일까, 사내 하나는 힘에 부치는지 나무를 줄에 매달아 끌고 온다.

병원 안은 시설이 아주 열악하다. 쿤 맬라노이 마을에서 가게를 운영하며 간단한 약과 주사 정도를 주며 영어를 제법 하던 사내가 여기서 근무한다. 어디선가 사냥을 하는지 가끔 총소리가 들려온다. 모두들 총을 가지고 있으니 외진 산길이라도 지나갈 때 이방인은 섬뜩하다.

종일 조용하던 마을, 사립문 앞에는 사람들이 하나둘 모여 하루 동안 밀린 이야기를 나누고, 수돗가에는 검게 그을린 돼지를 손질하고 있는 청년들, 처녀들도 거리낌 없이 내장을 손질한다. 불 위에 무언가를 뜨겁게 익혀 먹는데 '투어(콩) 나우(안좋은 냄새)'라고 한다. 우리의 된장과 비슷하게 생겼는데, 콩으로 만들어 바나나 잎에 싸 통에 넣고 뚜껑을 닫는다. 그 후 뜨거운 햇볕 아래 4일 정도 발효시켜 냉장고에 넣어두고 먹는데 참 맛있다.

◆크리스마스 꽃길을 따라

한적한 오지 마을, 사철 산은 푸르고 청명한 하늘 위에 구름은 갖가지 모양을 만든다. 수풀 모양, 날개 모양, 하누만(라마야나 신화 속에 나오는 하위신인 원숭이)의 형상을 닮은 구름, 그 모습들을 보며 천천히 마을길을 소요한다. 바람결 따라 선명한 붉은 몸을 흔드는 크리스마스 꽃, 그러고 보니 성탄절도 얼마 남지 않았다. 배가 허전해지면 마을에 있는 작은 꾸이띠야오(쌀국수) 집에 가서 찐계란과 함께 한 그릇 먹거나, 이도 저도 아니면 오토바이를 타고 산길을 따라간다. 그러다 낯선 길이 나오면 호기심이 발동하여 프로스트의 '가지 않은 길'에 나오는 '두 갈래길'처럼 그 길로 접어들고 곧 진흙밭에 바퀴가 헛돌기 일쑤다. 비탈을 오르내리며 깔람삐(양배추)를 수확하는 사람, 가파른 등성이를 오르내리며 카오폿(옥수수)를 꺾어 뒤쪽 허리춤에 있는 가마니에 담거나 카오(쌀)를 베는 사람, 가끔 나도 깔람삐를 베고 시름없이 웃는 그들에게서 한두 개 얻어오기도 한다.

사내 하나가 종일 벼를 털고 오는지 옷에 검불이 자욱하다. 평생 글자라고는 한 번 써보지 못하고 일에만 매몰된 듯한 사내, 이방인과 눈도 맞추지 않고 오바또(우리나라 면사무소 해당) 정자에서 밥을 먹는다. 며칠 전 벼를 베어낸 논에서는 버팔로들이 그 등걸을 먹는지 무리를 지어 경계의 눈길을 보내며 되새김질을 한다. 동네 아낙 셋은 망태를 메고 밭에라도 가는 듯하더니, 아예 길가에 주저앉아 이야기 바다에 빠졌다. 망태는 옆에 던져두고 가끔 휴대폰을 내어 본다. 아득한 옛날 속 농경사회를 살면서 첨단의 문명 기기인 휴대폰을 매일 사용하는 사람들….

◆탈곡하는 쑤찬

음료수와 커피, 약간의 과자를 사들고 쑤찬의 논으로 간다. 나이 먹어 치앙마이에서 대학까지 나온 그는 오바또에서 4년 계약직으로 일한다. 마을 방송을 도맡아 하며 마을의 대소사도 그가 챙기는 듯하다. 4년마다 오바또 장(長)을 뽑는데 그것에 따라 직업이 좌지우지되는 모양이다. 그와 부인은 독실한 가톨릭 신자로 성당에서도 사회를 보며 중추적인 역할을 한다. 2층으로 된 그의 나무집은 1층에 돼지를 키우며 조그만 형광등 하나 걸려 있는 어두컴컴한 부엌 안에서 장작불로 모든 음식을 조리한다. 반찬 한두 가지에 밥을 새카만 부엌 바닥에 놓고 간소하게 먹는다. 엄마 고양이와 두 마리의 새끼 고양이가 그 옆에 붙어 같이 먹자고 성화를 부린다. 안방으로 사용하는 곳에는 작은 TV가 있어 마을 꼬맹이들이 와서 본다.

머리에는 기계충이 돋고/ 얼굴에는 영양부족으로

하얗게 마른버짐이 내려앉던/ 6, 70년대 한국의 아이들,

누런 코가 턱 아래까지 내려오다/ 훅, 하는 소리에

다시 급하게 따라 올라가던 나라/ 소매에는 항상 하얀 코가

두껍게 눌러붙어 있어도/ 그냥 그렇게 살아가던 시절,

비포장 신작로를 따라/ 어쩌다 낡은 버스가 지나가고,

아카시아 꽃이 눈부시게 날리던 고향//

턱을 괴고 동구 밖을 내다보다/ 누렁개와 놀다

높은 소나무 위에 올라가/ 장에 간 어머니가 돌아오시는지

손차양을 하고/ 실눈을 뜨다

아이의 한낮은 빨랫줄 위의/ 잠자리 날개처럼 가볍다//

산모롱이 먼지가 날리며/ 버스가 돌아오고

아이는 급하게 내려가/ 신작로에 서던

그러다 기사님 몰래 버스 뒤에 올라타던/ 6, 70년 한국//

엄마는 언제 오실까/ 아이는 종일 기다리고 있다

-마름 버짐/ 윤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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