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1월 다보스 포럼에 참석한 슈뢰더 독일 총리는 '고령화'가 독일의 최대 과제라고 말했다. 복지선진국 독일의 사회보장제도가 고령화로 인해 크게 위협받고 있다는 뜻이다. 독일은 가장 빨리 고령사회로 진입한 선진국으로 이미 1972년에 고령사회가 됐다. 2008년 65세 이상 노인인구가 전체 인구의 20%를 넘어 초고령사회로 진입했다.
패전 후 '모두를 위한 번영'을 기치로 고도성장기를 걸어온 독일 국민은 아프거나 실직했을 때, 나이 들었을 때를 별로 걱정하지 않고 살았다. 나라가 모든 것을 보장해주던 시대에 태어난 덕이다. 하지만 노인 인구가 급속히 늘면서 이제는 노후를 걱정하는 시대가 됐다. 개인이 연금과 의료보험을 더 부담해야 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1957년 아데나워 총리 시절 독일은 경제활동을 하는 세대가 은퇴한 연금생활자의 연금을 부담하는 방식(pay-as-you-go)으로 연금법을 바꿨다. 과거 세대는 현 세대가, 현 세대는 미래 세대가 책임지도록 세대 간 계약에 기초한 것이다. 그런데 저출산'고령사회가 되면서 문제가 커지자 기민당'사민당 가릴 것 없이 연금법을 손봤다. 1999년, 2001년, 2004년 세 차례나 개혁했다. 연금 정책의 패러다임도 '일정한 급여수준 보장'이 아닌 '부담 가능한 수준'으로 바뀌었다.
독일식 모델은 그동안 우리 정치권의 화두였다. 여야가 앞다퉈 독일을 배우자며 부산을 떨었지만 고령사회 진입이 코 앞인데도 달라진 게 없다. 구호만 요란하고 공무원 연금개혁에서 보듯 '내 주머니는 손대지 마라'는 '님피'(Not In My Pocket) 현상만 드세다.
통계청이 어제 발표한 장래인구 추계를 보면 한국도 2017년에 65세 이상 노인이 전체 인구의 14%를 넘는 고령사회로 진입한다. 문제는 노인 10명 중 4명 이상이 가난하다는 점이다. 노인 빈곤율이 45.1%로 OECD 평균 17.1%를 크게 웃돌고 6%의 스웨덴과는 비교하기조차 민망할 정도다.
장수 리스크 지수라는 게 있다. 예상치 못한 은퇴 후 기간을 예상한 은퇴 기간으로 나눈 값인데 한 증권사 연구소에 따르면 한국인의 장수 리스크 지수는 0.87이다. 이는 예상보다 87%나 더 긴 은퇴 기간을 보내야 한다는 의미다. 0.35 수준인 미국과 일본, 영국과는 비교불가다. 아무런 보장도 준비도 없는 노인에게 빈 주머니보다 끔찍한 것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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