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목 이책!] 춘곡 고희동

입력 2014-11-08 07:43:36

춘곡 고희동(우리나라 최초의 서양화가)/김란기 지음/에디터 펴냄

100년 전 일본 동경미술학교에 서양화를 배우러 유학 온 한국인 학생이 있었다. 구한말 유력한 역관 집안에서 태어나 한성법어학교에서 프랑스어를 배운 뒤 고종황제 아래서 근대화 업무에 참여한 궁내부 관리 고희동이었다. 을사늑약으로 나라가 일본의 보호국으로 전락하자 그는 그림의 세계로 인생행로를 바꾼다. 이즈음 고희동은 조선시대 마지막 궁중화가로 화단의 쌍벽을 이루던 심전 안중식과 소림 조석진으로부터 전통 화법을 배우게 된다. 하지만 당시 전통 서화의 관습적인 방식에 비판적인 시각을 가진다. 그는 24세 되던 1909년 새로운 그림인 서양화를 배우러 일본으로 건너간다.

서양화 공부를 마치고 귀국한 그는 1918년에 근대적인 미술 단체인 서화협회를 결성하고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광복이 되자 고희동은 조선미술건설본부의 중앙위원장으로서 친일 작가들을 화단에서 배제하는 중심인물로 떠올랐다. 그는 해방 후 정국에서 우익 미술계를 이끌어갔고, 그러한 공로로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뒤 제1회 서울시 문화상을 수상했다. 고희동은 그 이듬해 창립된 대한민국미술전람회(국전)의 운영에 있어서도 중추적 역할을 했다. 1953년 대한미술협회 회장으로 뽑혀 사실상 국전을 주도했다. 국전 심사위원장을 초대부터 제8회까지 여섯 차례 연임했으며 초대 예술원장도 지냈다. 그는 4'19 혁명으로 장면 정권이 들어서자 신민당에 입당한 뒤 참의원에 당선되어 5'16 전까지 정치 활동을 하다가 1965년 10월 22일 타계했다. 중앙대 명예교수인 이상돈 교수가 그의 외손자이다. 이 책도 고희동의 사랑을 듬뿍 받은 이 교수의 회고와 그가 소장한 자료가 주요 바탕이 됐다. 176쪽, 1만원.

이경달 기자 saran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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