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 속에서-초보 농군 귀촌일기] 숯골 동민들 부산 가다

입력 2014-10-30 07:10:32

부산을 오가는 하루 동안 우리는 같은 공간 안에서 같은 음식을 먹고, 같은 곳을 바라보았다. 처음 참가한 마을 야유회여서 출발할 때는 다소 어색한 기분도 있었지만, 다시 마을에 도착할 즈음엔 서로 민낯을 공개한 사이처럼 정이 한 겹 더 두터워진 느낌이었다.

들판에 있는 벼들이 일제히 고개를 숙이기 시작하면서 호박이나 가지, 고춧잎을 말리고, 깻단을 털어 기름을 짜는 손길이 바빠진 농촌의 가을이다. 이런 와중에 동민들 친목을 위해 부산으로 마을 야유회를 가게 되었으니 꼭 참석하라는 부녀회 총무의 연락을 받았다. 며칠 전부터 마을회관의 불빛은 밤늦게까지 켜져 있었다. 19가구밖에 되지 않는 작은 동네지만 행사를 책임지고 준비하는 사람들의 몸과 마음은 늘 바쁘고 고단하기 마련이다.

이른 아침부터 정자나무 아래서 들려오는 대형관광버스 시동 소리가 마을을 들썩이게 하였다. 시간 맞춰 나오라는 이장님의 안내방송도 이미 두 차례나 울려 퍼진 뒤였다. 차 안에서는 떡과 과일, 과자, 음료수, 통닭 같은 먹을거리가 나누어졌고, 노인회장님의 짧은 인사말을 시작으로 스물여섯 명 숯골 동민들의 가을여행이 시작되었다.

세 시간을 달려 도착한 부산에서 가장 먼저 찾은 곳은 영도다리였다. 매일 낮 12시부터 15분 동안 진행되는 도개(배가 다리에 걸리지 않고 운항할 수 있도록 상판을 들어주는 기능) 장면을 보기 위해서였다. 우리가 도착하자마자 요란한 사이렌 소리를 시작으로 다리 양편으로 교통이 통제되기 시작했다. 전체 길이 214m의 영도대교 중 중구 쪽의 첫 번째 교각, 길이 31.3m, 무게 590t의 철판 다리가 2분 만에 75도 각도로 세워지는 장면을 보기 위해 근처에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가수 현인의 '굳세어라, 금순아'가 울려 퍼지는 가운데 남포동 쪽 다리가 서서히 올라가기 시작하자 지켜보던 사람들의 탄성이 터져 나왔다. 사진을 찍기에 가장 좋은 장소라고 소개된 다리 아래에도 사람들이 모여 북적거렸다. 47년간의 침묵을 깨고 작년 연말에 재개통된 후 부산의 새 명물로 떠오른 영도대교는 15분 동안의 개폐행사가 끝나자 시치미를 뚝 뗀 채 누워 있었다. 우리는 그런 6차로 다리 위를 지나 근처 자갈치 시장으로 향했다.

자갈치 시장은 영화 '친구'의 촬영지였다고 한다. 오래된 시장답게 현대식 건물과 낡은 상점들이 뒤섞여 있었다. 미리 예약해둔 식당으로 가서 회와 장어구이로 점심을 먹고 시장구경을 했다. 막 들어온 배에서 잡아온 생선을 경매하는 모습이 신기해서 한참 동안 서서 지켜보았지만 그 내막을 알 길은 없었다. 다시 버스에 올라탄 우리들의 손에는 생선이나 건어물들이 들려 있었다.

흐린 날씨에 비가 한두 방울씩 내리기 시작했지만 바다에 왔으니 배를 타봐야 하지 않겠느냐는 의견에 따라서 우리는 태종대 선착장으로 갔다. 배가 뜨지 않으면 어쩌나 걱정을 했는데 파도가 그리 높지 않아서인지 여러 척의 유람선이 운항 중이었다. 평소 겁이 많은 나는 배를 타는 동안 점점 거세지는 파도 때문에 아찔했는데, 다른 사람들은 속이 확 트이는 기분이라며 좋아들 했다. 오륙도를 멀리서 한 바퀴 돌아오는 40분의 유람을 마치고 선착장에 도착하니 저녁 어스름이 내리고 있었다.

꼬박 12시간이 걸린 야유회는 마을 근처 식당에서 저녁을 먹고 나서야 끝이 났다. 관광버스가 정자나무 앞에 다시 선 뒤, 시끌벅적 인사말들이 오가는 동안 집집마다 개들이 짖었다. 각자의 집으로 들어가는 사람들의 뒷모습에는 달착지근해 보이는 같은 종류의 피곤이 묻어 있었다.

부산을 오가는 하루 동안 우리는 같은 공간 안에서 같은 음식을 먹고, 같은 곳을 바라보았다. 처음 참가한 마을 야유회여서 출발할 때는 다소 어색한 기분도 있었지만, 다시 마을에 도착할 즈음엔 서로 민낯을 공개한 사이처럼 정이 한 겹 더 두터워진 느낌이었다. 오늘의 즐거운 시간을 위해 평소보다 조금은 과장된 몸짓으로 웃음을 자아내게 한 동민들 모두의 따뜻한 마음들이 그 두께를 더해주었다. 올해 야유회는 끝이 났지만 정자나무 아래 대형관광버스가 서 있고, 마을이장님의 안내방송이 울려 퍼진 뒤라야 허둥거리며 달려나가는 우리들의 모습이 있는 풍경은 내년에도 그 후에도 계속 이어질 것이다.

배경애(귀촌 2년 차'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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