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창] 파격 문화의 창조적 동력

입력 2014-10-24 11:02:21

프랑스 동남쪽에 자리 잡은 알자스는 우리가 어릴 적 읽었던 알퐁스 도데의 '마지막 수업'의 배경이 된 곳이다. 독일과 프랑스의 국경에 우뚝 서서 투쟁과 갈등, 살육의 아픈 역사를 고스란히 끌어안고 있는 대표적인 도시가 슈트라스부르크다. 두 나라가 여러 차례 교대로 점령하는 바람에 한 지붕 아래서 적과 동침하는 가정도 적지 않다. 1차 대전 때 독일군으로 전사한 할아버지가 있는가 하면, 2차 대전 때는 프랑스군으로 독일과 싸운 아버지도 있다. 그런데 이 적과의 동침을 통해 그들은 새로운 문화를 탄생시켰다.

라는 방송이 그런 경우다. '예술'이라는 뜻의 방송사 이름대로 그들은 두 나라의 역사와 문화 예술을 연결해 영화, 연극, 음악뿐만 아니라 수준 높은 다큐멘터리까지 전문적으로 공동으로 제작하여 방송하고 있다. 두 나라의 시청자, 두 문화적 배경을 가지고 사는 사람들을 고루 만족시키기 위해 프로그램도 폭넓게 채택한다.

EU 국가들이 다 그렇기는 하지만 국경은 일찌감치 허물어지고 없다. 이제는 서로 다른 문화의 피를 섞어 더욱 강한 복합 문화를 만들어 내고 있는 것이다. 두 문화를 단순히 1대 1로 균형 맞추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인 복합화 작업에 성공하고 있다. 독일인 구텐베르크를 기념한 광장이 있는가 하면, 나폴레옹의 이집트 침공 때 크게 공을 세운 프랑스 장군 클레베르의 이름을 딴 광장이 도시 한복판에 나란히 존재하는 것부터가 상징적이다.

이런 풍경은 영국에서도 벌어지고 있다. 런던의 서남부에 위치한 고급 주택 지역인 윈저 성 부근에는 스완 극장이 자리하고 있다. 영국을 대표하는 로열 셰익스피어 극단이 이곳에서 '로미오와 줄리엣'을 공연한다. 전 세계에서 수만 번도 더 공연되었을 연극이지만 관객들은 숨을 죽이고 무대를 응시한다. 이 연극의 주인공은 놀랍게도 검은 피부색을 가졌다. 로미오가 흑인이고, 줄리엣은 백인이다. 흑인 특유의 발성과 몸짓이 백인들의 그것들과 대조를 이루면서 인종과 문화권의 충돌 문제를 극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화해와 공존의 메시지를 강력하게 전달해주고 있는 실험적 예술인 것이다.

문화의 파격적인 변화는 일상의 음식 문화에서도 유감없이 나타나고 있다. 미국에서도 부촌으로 손꼽히는 로스앤젤레스 베벌리 힐스에는 오바친(Oba Chine)이라는 식당이 있다. 여기서는 '콜드 코리안 누들 샐러드'(Cold Korean Salad)를 판매한다. 음식값은 우리 돈으로 겨우 5천 원 수준이다. 당면을 바닥에 깔고 표고버섯, 당근, 빨간 양배추, 오이 등을 넣는 것이 고작이다. 당근과 팽이버섯은 살짝 데쳤고 나머지는 날것이다. 연한 초고추장이 소스로 곁들여진다. 국내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족보 없는 음식이다. 오리지널과는 거리가 먼, 여러 나라의 음식을 뒤섞어 새로운 것을 창조한 리믹스 음식이다. 기존의 음식 개념을 완전히 뒤집었다고 할 수 있을 만큼 새로운 문화 혼혈의 번식력을 말해 주는 장면들이다.

이런 문화적인 파격성에 대한 우리의 태도는 대략 두 가지다. 첫 번째는 그것을 3류 시민의 저항 문화로 몰아붙이는 것이다. 전통적인 산업 사회의 문화와 단절된, 대단히 개체화된 탈 형식적인 문화로 이해한다. 두 번째는 그것을 모방 문화로 비하해 버리는 것이다. 새로운 창조성이나 새로운 문화의 발생 자체를 부인한다. 단순히 기존 문화로부터 파생된 아류로 취급하고 새로운 문화의 독자적인 개별성은 불가능하다고 보는 것이다. 문화가 개별성을 갖는다는 것은 허구로 취급하고 일회적 유행으로 끝날 것으로 본다.

이런 자세는 빌 게이츠의 문화적 일탈이 어떻게 정보화 시대의 문을 열었는지를 제대로 설명하지 못한다. 마이클 잭슨이나 서태지와 아이들이 만들어 낸 세기말적인 문화적 비행이 대중문화의 지평을 열었다는 사실에 대해서도 무감각하다. 그런 태도는 새로운 문화의 가능성을 사라지게 한다. 결국 문명적인 정체(停滯)가 그 사회로 돌아가게 된다. 파격을 통해 창조성을 확보하지 못하면 국제 경쟁력에서 밀려난다. 경쟁력은 남이 생산해낸 수많은 정보를 좀 더 많이 소비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더 많은 정보를 생산해 내는 데 있다.

김중순/계명대학교 교수·한국문화정보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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