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경 대화 검열 '불씨'
검찰과 경찰의 카카오톡 감청 요청 사실이 알려지면서 '사이버 망명자'가 급증하고 있다.
사생활이 고스란히 노출될 수밖에 없다는 불안감에 카카오톡 이용자나 국내의 유사 SNS 사용자들은 보안이 좀 더 철저한 외국 메신저로 갈아타고 있다. 사생활을 아무렇지도 않게 여기는 기업과 국가 기관에 대한 불신의 골이 그만큼 깊어지고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감청 사태가 발생한 지난달 중순 이후 카카오톡 탈퇴자는 이달 11일까지 20만 명을 넘어섰다.
◆보안성 좋은 외국계 메신저로 이동
인터넷 분석사이트 랭키닷컴에 따르면 이달 5~11일(일주일) 카카오톡 이용자(구글 플레이스토어 기준)는 약 2천917만9천 명으로 전주(2천923만5천 명)보다 5만6천 명 줄었다. 지난달 14일부터 4주 동안 탈퇴자는 모두 20만 명에 이른다.
이들 상당수는 사이버 검열에서 좀 더 자유로운 외국계 메신저로 이동한 것으로 보인다. 보안이 뛰어나 지난해 하반기부터 국내 증권가에서 조금씩 쓰이기 시작한 독일산 메신저 '텔레그램'(telegram)은 사이버 망명객들의 유입으로 지난달 18일부터 한 달간 이용자가 140만 명으로 늘어났다. 텔레그램은 이달 초 애플 앱스토어에서 무료 애플리케이션(이하 앱) 1위 자리에 오른 후 18일까지 1위를 지켰다. 구글 플레이스토어에서도 텔레그램 공식 앱은 지금까지 인기 무료 앱 부문 1위(국내 다운로드 107만 건 이상)를 차지하고 있다. 텔레그램이 한국어를 지원하지 않던 시점에 국내 개발자가 등록한 한국어판도 무료 메신저 부문 2위(국내 다운로드 30만 건 이상)에 오를 만큼 이 메신저는 국내 SNS 이용자들에게 주목받고 있다. 반면 오랫동안 내려받기 부문서 1, 2위에 올랐던 카카오톡은 20일 현재 인기 무료 앱 차트에서 애플 16위, 구글 7위로 밀려났다.
◆검열 논란이 사이버 망명 불 댕겨
메신저 이용자들의 사이버 망명은 지난달 16일 박근혜 대통령이 국무회의에서 "대통령 모독이 도를 넘었다"며 사법기관에 대응책을 요구하면서부터 시작됐다. 이에 검찰이 "메신저상의 인격 모독 등에 대해 엄격히 대응하겠다"고 했다.
국내 SNS 메신저 이용자들은 정부와 수사기관이 이제는 개인의 사생활까지 들여다보게 됐다며 해외 메신저로 이동하는 등 대안 찾기에 나섰다. 국내 메신저에 대한 불신은 이후 다음카카오와 검찰이 과거에도 이용자 대화 내용을 주고받았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거세졌다.
이달 8일 다음카카오 측은 "경찰과 검찰 등 수사기관이 수사 대상자의 대화 내용을 모두 147건에 걸쳐 요청했고, 우리는 이에 대부분 응해 매번 3~7일분 대화 기록을 제공했다"고 밝혔다. 검찰이 "대화 내용 전체를 요구한 것이 아니라 앞으로의 대화를 실시간 감청할 수 있게 해달라고 요구했을 뿐이다"고 해명했지만 사이버 검열의 우려는 잠재울 수 없었다.
각종 포털 사이트와 커뮤니티에서는 "개인 간 대화 내용을 검열하는 검찰과, 권력에 순응해 이용자 자료를 몽땅 넘긴 카카오톡 모두를 못 믿겠다"는 글이 쇄도했고, 사이버 망명이 본격화됐다.
이달 13일 파장이 커지자 다음카카오 측이 "대화 내용을 암호화하고 검찰의 감청 영장에도 불응하겠다"며 진화에 나섰지만, 정치권과 누리꾼들은 "반체제적 대응이다"며 여전히 못 믿겠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증권사 직원 유모(27) 씨는 "7월 초 스마트폰에 텔레그램을 처음 설치했다. 가입 초기부터 지난달까지는 친구 목록에 10명뿐이었는데 이달 초 100명 정도로 늘었다"며 "카카오톡으로 애인과 애정표현을 하거나 회사 동료들과 단체로 업무상 대화를 하는데, 이를 타인이 모두 열람할 수 있다면 끔찍한 일이다"고 했다.
공무원 최모(30) 씨도 "공공 업무를 보는 처지에서 개인 생활이나 정치관까지 사찰당할까 두렵다. 정부와 민간업체는 메신저 이용자의 사생활을 보장할 수 있게끔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키워드> 텔레그램
2013년 8월 러시아인 니콜라이 두로프(Nikolai Durov)'파벨 두로프(Pavel Durov) 형제가 개발한 메신저 서비스. 텔레그램 본사조차도 열람할 수 없는 비밀 대화방 서비스를 제공하는데다 자동으로 대화 내용을 삭제하는 등 보안성이 뛰어난 것으로 알려졌다. 카카오톡이 외부 업체와 연계해 게임과 쇼핑, 기프티콘 등의 부가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과 달리 텔레그램은 오직 대화 기능만 제공하고 있어 개인정보 유출 가능성이 낮다.
사진-13일 오전 서울 용산구 다음카카오 한남오피스 앞에서 '카카오톡과 공권력의 사이버사찰에 항의하는 시민모임' 회원들이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댓글 많은 뉴스
문재인 "정치탄압"…뇌물죄 수사검사 공수처에 고발
홍준표, 정계은퇴 후 탈당까지…"정치 안한다, 내 역할 없어"
[매일문예광장] (詩) 그가 출장에서 돌아오는 날 / 박숙이
대법, 이재명 '선거법 위반' 파기환송…"골프발언, 허위사실공표"
세 번째 대권 도전마저…홍준표 정계 은퇴 선언, 향후 행보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