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 세계지리 문제 오류 구제 받을 수 있을까

입력 2014-10-17 10:56:52

국공립대 시효지나 승소까지 험난, 지역대 "대법판결 지켜보겠다"

2014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세계지리 8번 문제에 오류가 있다는 항소심 판결이 내려졌다. 지난 1994년 수능 도입 이후 법원이 문제 오류를 인정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이에 따라 문제 오류로 불이익을 당한 수험생이 구제받을 수 있을지, 신뢰도에 금이 간 교육부와 수능 출제기관(한국교육과정평가원'이하 평가원)이 어떻게 대응할지 등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수험생 구제받을 수 있나

대구시'경북도교육청에 따르면 지난해 수능시험에서 세계지리를 선택한 수험생은 3만7천684명이었고, 채점 결과 8번 문제의 정답률은 49.98%였다.

앞으로 대법원 판결에서 문제 오류가 확정되면 세계지리 응시자의 절반가량이 각종 소송을 진행할 가능성이 생긴 셈이다. 우선 대학을 상대로 한 불합격 소송을 예상할 수 있는데 수험생들이 승소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국'공립대의 경우 행정처분일로부터 90일 안에 소송을 해야 하는데 제소 기간이 지나 각하 처분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 사립대를 상대로 한 소송도 힘들기는 마찬가지. 세계지리 출제오류로 인한 등급 하락으로 수능 최저학력기준에 미달해 탈락한 경우 민사소송을 통한 구제를 고려해 볼 수 있지만, 최저학력기준 이외에도 논술, 면접 등 합격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이 많기 때문에 자신의 불합격 사유를 입증해내기 쉽지 않다.

이 때문에 결국 수험생들이 기대할 수 있는 것은 교육부 및 평가원에 대한 민사상 손해배상과 정신적 위자료 청구 정도에 그칠 것이라는 말이 나오고 있다.

◆대학은 어떻게 대응하나

대구경북 대학들은 이번 항소심 결과에 대해 난감해하고 있다. 대학 측이 평가원에 요청해 지난 수능에서 불합격한 대학별 세계지리 응시자를 파악할 수는 있지만 일단 기다리겠다는 입장이다. 대법원 판결이 남은 상태에서 섣불리 행동할 수 없다는 것이다.

계명대 강문식 입학처장은 "개별 대학이 합격, 불합격에 대한 방침을 정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며 "대법원 판결 이후 교육부 최종 지침이 나올 때까지 두고 볼 수밖에 없다"고 했다.

지역 대학가는 대법원이 문제 오류를 확정할 경우 일대 혼란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고 있다. 대법원 판결이 내려질 때까지 통상 4개월 이상 걸리는데. 이 경우 이미 2016학년도 대입 준비 시기에 접어들어 시간이 너무 많이 흐른 상황이 돼버리기 때문이다. 지역대 입학처 관계자들은 "명백하게 합격이 인정될 경우 수험생이 구제받을 수 있는 길도 있지 않겠느냐"면서도 "2년 전 입시 결과를 뒤집는 과정에서 학사 일정이 꼬일 대로 꼬일 것"이라고 우려했다.

◆빨리 결정할 수 없었나

이번 판결 이전까지 출제 오류가 인정된 세 차례 모두 수능시험이 끝난 뒤 얼마 되지 않아 판단이 내려졌다. 하지만 이번 사안은 입시가 마무리된 지 1년 가까이 지나 출제 오류가 인정된 것이어서 해결의 실마리를 찾기가 더욱 힘들게 됐다.

사태가 이처럼 꼬인 것은 예전과 달리 평가원이 출제 오류 사실을 인정하지 않아 이 사안이 법정까지 갔기 때문이다. 지난해 수능시험 직후 일부 수험생이 평가원에 이의를 제기하고, 교사 중에서도 평가원의 오류를 지적한 이들이 있었으나 평가원의 태도는 요지부동이었다.

결국 수험생 일부가 지난해 11월 29일 "세계지리 8번 문항의 정답을 2번으로 결정하고 이를 토대로 매긴 수능 등급을 취소해달라"는 소송을 서울행정법원에 냈고, 같은 해 12월 16일 출제 오류로 볼 수 없다는 판단이 내려졌으나 이번에 1심 판결이 뒤집힌 것이다.

2심 판결로 출제 오류가 있었다고 최종적으로 결론이 난 것도 아니다. 평가원이 대법원에 상고한다면 내년 상반기나 돼야 판결이 내려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출제 오류에 대한 판단도 그때까지 미뤄질 수밖에 없게 되는 셈이다.

◆이런 사태, 막을 수는 없을까

이번 일이 불거지기 전 수능시험에서 세 차례 출제 오류가 공식 인정된 적이 있다. 평가원은 2004학년도, 2008학년도와 2010학년도에 각각 한 문제씩 복수 정답을 인정한 바 있다. 이 때문에 교육 현장에선 출제 오류 논란이 언제든지 재현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교육 전문가들은 이 같은 사태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출제와 이의 검토 과정을 손질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송원학원 차상로 진학실장은 "교과서 제작 기간을 고려할 때 교과서는 현실을 한발 늦게 반영할 수밖에 없어 최신 자료와 차이가 날 수 있다"며 "수능시험 출제 기준을 '당해 연도의 자료'까지라고 못박지 않으면 이 같은 사태가 다시 벌어질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대건고 이대희 교사는 시험 문제에 대해 이의가 제기된 경우 이를 검토할 별도의 조직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 교사는 "수능시험 이후 평가원이 출제 의도를 의무적으로 공개하도록 하고 이의 제기 기간에 학생 입장에서 이 문제를 판단할 수 있도록 현장 교사가 중심이 된 팀을 새로 구성해야 한다"며 "이번 사안처럼 법원의 판결에 기댈 수밖에 없는 경우 그에 따른 피해 수험생의 구제 절차도 정부가 앞장서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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