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의 효율성은 시장의 모든 참여자들이 자기 욕망을 충족시킨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저마다 재화나 서비스를 사거나 파는 데서 이익을 얻을 수 있어야만 시장이 효율적으로 기능하게 된다는 말이다. 만일 시장에 참여한 어느 한 쪽이 불이익을 당한다면 그 시장은 비효율적이다.' 자크 아탈리의 '프라떼르니떼'(박애'형제애의 뜻이다. 국내에는 '합리적인 미치광이'로 번역 출간됐다)에 나오는 구절이다.
대한민국 소비자는 요즘 분통이 터진다. 내 돈 지불하고 물건 사고 서비스받는데 자기 욕망의 충족은커녕 매번 속고 있다는 기분이 들어서다. 혹 내가 '호갱'(호구 고객)이거나 '봉'이 아닐까 의심하느라 피곤하다. 맞다. 대한민국 소비자는 모두 호갱 아니면 봉, 둘 중 하나다. 호칭만 다를 뿐 얼굴은 같다. 소비자가 얼마나 만만해보였으면 비음까지 섞어 '호갱님~'이라고 부를까. 상전 제 배 부르면 종 배고픈 줄 모른다고 공급자는 고객의 욕망이나 주머니 사정은 고사하고 호칭까지 제멋대로다.
소비자 속 터지게 하는 게 하나 둘이 아니다. 옷이나 화장품, 커피 값 등 터무니없는 게 너무 많다. 질소 과자는 어떻고. 유모차는 왜 그리 비싼지 젊은 부모의 입에서 욕이 절로 나올 정도다. 스마트폰 값과 통신요금은 왠지 바가지 쓰는 기분이고, 외제차 수리비는 숫제 억소리가 절로 난다. 아무리 둘러봐도 '착한' 것은 하나도 없다. 모두가 상식을 뛰어넘는다. 왜 우리만 유독 비싸게 사야 하는지 도무지 알 길이 없다. 그래서 소비자끼리 뭉쳐 공동구매로 맞선다. 좀 더 부지런하면 해외 직구(직접구매)로 눈을 돌린다. 이를 '분노의 직구'라고 표현한다. 지난해 해외 직구 규모가 1조 원을 넘어섰단다.
시장은 아주 교활하다. 그래서 소비자는 공급자의 속임수를 경계하지 않으면 안 된다. 소비의 윤리를 생각하는 '착한 소비'에서 '용감한 소비', '전략적 소비'로 넘어가고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젊은 층에서 이런 패러다임의 변화가 두드러진다. 하지만 좀체 변하지 않는 게 있다. 특히 우리의 시장에서는 그렇다. 공급자는 '갑'이고 소비자는 '을'보다 더 낮은 '봉'이라는 사실이다.
이런 현상을 전문가들은 '정보 불균형'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소비자는 가격에 대해 사실상 결정권이 거의 없다. 고작 간접 비교를 통해 단편 정보만 손에 쥘 뿐 부르는 게 값인 시장의 논리만 기세등등하다. 기업과 업자가 원가 정보를 독점하기 때문이다. 시민단체와 정치권이 아무리 원가 공개를 윽박질러도 요지부동이다. 어떻게 장사해 먹으라고 원가 공개를 강요하느냐며 막무가내다. 끝까지 원가를 감추는 이유는 폭리를 취하더라도 빠져나갈 구멍이 있기 때문이다. 원가는 며느리도 몰라야 하는 성역이다.
시장경제는 소비를 촉진하기 위해 사람들을 따로따로 떼어놓는다. 소비자에게서 형제애나 동병상련의 감정을 갖지 못하게 해야 공급자가 이익을 보게 된다. 아탈리는 이를 '시장에서의 고독'이라고 표현했다. 시장은 또 받는 사람들 간의 질투와 시샘을 부추긴다. 그래야 이익을 더 남길 수 있다. 현대의 시장경제가 서로 만족하는 상황, 서로 상대의 성공을 필요로 하는 '넌 제로섬 게임'(non-zero-sum game)의 시대로 조금씩 바뀌는데도 우리의 공급자는 여전히 묵은 시장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만약 시장이 더 넓다면 어떻게 될까. 소비자 선택의 폭은 훨씬 넓어지고 다양해진다. 공급자 위주의 폐쇄적인 유통 구조와 독점이 낳는 가격 차별도 피할 수 있다. 시장에서 가격 인하 효과는 물가 안정으로 연결되고 새로운 시장 구조를 만들 수 있다.
호갱의 반대어는 '진상' 아니면 '오갸쿠사마'(お客樣)다. 물론 누구처럼 고객을 극존칭으로 대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호갱이 진상으로 진화하지 않게 하는 것은 공급자의 몫이자 선택이다. 시장은 이제 더 이상 무른 땅에 말뚝박기가 아니다. 적당히 속여넘기거나 귀찮아서 입막음할 수 있는 공급자의 독무대가 아니다. 기업들은 속담처럼 '백일 장마에도 하루만 더 왔으면' 하겠지만 이제는 그럴 일은 없다. 콩 볶아 먹다가 가마솥 터뜨릴 때가 반드시 오는 법이다. 요즘 '단통법'이 난리도 아니다. 그런 시시한 단통이 아니라 진짜 소비자의 고통과 고독을 끝장내는 '단통'(斷痛)이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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