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대 말 경주에서 학창시절을 보낸 사람이라면 보문관광단지에 대한 추억이 한두 개쯤 있을 것이다. 그 당시 경주에 새로운 관광지가 들어설 것이라는 기대감도 있었지만, 학생들이 공사에 동원되는 어처구니없는 일도 있었다.
당시 경주에서 학교를 다녔던 필자도 공사에 동원돼 개발의 한 주역(?)이 됐다. 중학교 겨울방학 때였다. 우리가 맡은 일은 불도저 밑의 큰 돌을 빼내 길옆으로 옮기는 것이었다. 불도저 밑에 큰 돌이 끼면 삽날이 망가지기 때문에 학생들에게 돌을 치우게 한 것이다.
보문단지 진입로인 지금의 숲머리쯤이었을 것이다. 까까머리 중학생이 교복을 입고 언 손을 호호 불어가며 한나절 간 돌을 치웠던 기억이 난다. 요즘 같으면 난리가 날 일이지만 그때는 큰 허물도 아니었다. 관광지라면 불국사 숙박촌이 고작이었을 시절에 큰 호텔이 들어서고, 각종 상가가 입주하고, 호수에는 백조호가 유영을 하는 등 여태까지 상상을 하지 못하던 풍경이 등장한 것이다.
그러나 고사리 손까지 보태가며 만들어진 보문단지가 30여 년이 지나도록 그 모습 그대로 크게 달라진 게 없다. 호텔이 좀 더 들어서고 놀이시설아 한두 개 늘었을 뿐, 상가는 그대로이고 백조호도 그대로 떠 있다. 오히려 상가와 호텔은 낡았고 백조호는 낡아서 뜨지도 못한다.
변화가 능사는 아니지만 오랜 기간 방치된 보문 상가는 슬럼화되고 있다. 새로운 트렌드라고는 눈을 씻고 봐도 찾을 수가 없다.
최근 보문단지 내 보문상가 매각 방안이 또다시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는 소식이다. 경북관광공사의 민간매각 방침을 경주시와 시의회가 제동을 건 것이다.
상가는 보문단지 초기부터 존재해 역사적 가치가 충분하다는 주장이어서 민간주도의 리모델링은 안된다는 것이다. 또 관리기관인 경북관광공사가 활성화 의지도 보여주지 않은 채 무조건 매각에만 매달리는 것은 잘못됐다며 결국 '없던 일'이 됐다.
그러나 관광공사 측은 마케팅 측면이나 관광트렌드에 부합하기 위해서도 민자 유치가 필요하다는 주장을 내놓고 있다. 중국 장가계와 프랑스 지중해의 휴양지 랑독루시옹이 민자 유치를 통한 리모델링을 거쳐 성공을 거둔 사례는 본받을 만하다.
경주시가 보문상가의 개발을 위해 7월과 8월, 2차례 전문가 간담회를 가졌지만 뚜렷한 해답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순조롭던 민자 유치에 걸림돌이 됐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보문단지는 내년에 세계 물포럼의 주요행사장이 되면서 각종 국제 규모의 행사가 줄을 잇고 있다. 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쥐만 잘 잡으면 된다. 민간이 주도하든 공기관이 주도하든 보문단지를 더 이상 방치해서는 미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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