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춘추] 잊지 못할 그 샘물

입력 2014-10-13 07:17:19

▲장혜승
▲장혜승

우리나라 사계절은 지구 운동장을 쉬지 않고 달리는 네 명의 릴레이 주자 같다. 지금 막 바통을 이어받고 달리는 마지막 주자는 잎들 하나하나에 입맞춤하고 삭막한 세상으로 달려가고 있다. 인정 많은 저 태양도 차갑게 식을 것이고, 순리에 순종한 잎들도 이런저런 모습으로 떨어져 바람에 쫓기다 사라져 버릴 것이다. 그리고 다음 주자로 인해 죽은 듯한 나무에서 새로운 잎들이 돋아 나와 또다시 초록의 세상이 될 것이다. 그래서 나무들은 지구의 희망인 것이다. 똑같은 잎이지만 어디 어느 나무에 태어나고 자랐느냐에 따라 단풍 색깔조차 다르다. 곱게 물드는 잎들도 있고 안쓰럽게 말라비틀어지는 잎들도 있다. 우리 인생사와 똑같다. 누가 튼실한 나무에서 곱게 물들고 싶지 않을까만 그것은 저의 소원과 노력만으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때가 되면 떨어져야 하고 떨어져서는 모두 흙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마음의 갈증으로 가슴이 타들어가는 이런 가을날, 내게는 잊지 못할 샘물 맛의 추억이 있다. 초록은 젊음이다. 젊음은 그 위풍당당을 아낌없이 보여주는 만큼 심한 갈증을 요구했다. 혓바닥이 오그라들 것 같을 때 깊은 우물에서 길어 올린 한 바가지의 시원한 샘물, 그것은 곧 생명수였다. 나는 중고등학교를 십리가 넘는 시골길을 걸어서 다녔다. 지금은 아스팔트 좍! 깔린 멋진 길이지만 그때는 낡은 완행버스와 털털이트럭이 흙먼지를 뒤집어씌우고 자갈돌을 튕기며 간혹 지나가는 구불구불 깡마른 길이었다. 의성 땅 '선돌'을 지나 '안계'로 가다 보면 큰길가 왼편에 작은 열녀각이 있고 그 곁에 겨우 버팅기고 있는 외딴 초가 한 채가 우리들의 쉼터였는데 우리는 그 외딴집 할머니를 열녀각할머니라 불렀다. 해마다 잎 날 때부터 그 잎 단풍 질 때까지 우리들 하교 때를 꼭 맞춰 열녀각할머니는 '원꼴'이라는 제법 떨어진 동네 깊은 우물에서 길어온 물동이에 조롱박 바가지를 띄워 놓아두셨다. 갓 길어온 샘물이 얼마나 차가웠던지 물동이에 성에가 흘러내렸다. 달디단 그 샘물로 허기와 갈증을 채운 우리는 걸레질 잘된 마루에서 한참을 재잘대다 집으로 가곤 했다. 참 가난했던 시절, 우리도 가난했지만 할머니는 너무 가난해서 끼니도 제대로 못 드신 것 같았지만 누구 하나 끼닛거리 한 됫박 갖다 드릴 생각도 하지 못했다. 참 부끄러운 기억이다. 도덕경에서는 '가장 훌륭한 것은 물처럼 되는 것'이라 했고 '물은 도(道)의 최고 상징'이라 했다. 외딴집도 할머니도 없어진 이때서야 염치없이 시건이 들다니, 저마다의 색깔로 마지막을 장식하는 풍성한 이 가을날, 내가 철부지 초록이었을 때 소중한 인간의 도를 가장 낮은 몸으로 가르치신 열녀각할머니가 사무치게 그립다.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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