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준희의 교육 느낌표] 568돌 한글날에 생각하다

입력 2014-10-07 07:30:21

나라의 말이 중국과 달라 문자와 서로 통하지 아니하므로 이런 까닭으로 어리석은 백성이 말하고자 하는 바가 있어도 마침내 제 뜻을 쉽게 펼치지 못하는 사람이 많으니라. 내가 이를 불쌍하게 생각하여 새로 스물여덟 자를 만들었으니 사람마다 쉽게 익혀 편안하게 하고자 할 따름이니라.(세종대왕의 '훈민정음 서문' 전문)

며칠이 지나가면 568돌 한글날입니다. 한글은 세계에서 약 7천900만 명이 사용하는 언어라고 합니다. 한글이 얼마나 편리하고 우수한가는 이미 많이 알려져 있습니다. 세계의 저명한 학자들이나 작가들도 그 우수성을 칭찬했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단순한 글자이자 가장 훌륭한 글자(펄 벅), 모든 언어가 꿈꾸는 최고의 문자(존 맨), 그 무엇보다 비교할 수 없는 문자의 사치이자 세계에서 가장 진보한 언어(게리 레드야드), 인류가 이룬 가장 위대한 이지(理智)의 성취 가운데 하나(제프리 샘슨), 세계의 알파벳(로버트 램지), 전통 철학과 과학 이론이 결합한 세계 최고의 문자(베르너 사세), 세계에서 가장 발달한 음소문자이자 로마문자보다 차원 높은 자질을 갖춘 문자(우메다 히로유키), 한국인의 창조성과 천재성에 대한 위대한 기념비(제러드 다이아몬드)' 등이 그것입니다. 실제로 한글은 말소리와 글자가 일치하고 모양이 단순해 기계화와 자동화에 가장 적합한 글자로도 인정받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현재의 대한민국은 영비어천가, 로마자 공화국의 나라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거리는 정체불명의 로마자가 지배하고 있습니다. 인터넷으로 인해 한글의 순수성도 무너지고 있습니다. 한글날을 기념하여 열리는 행사도 아주 단순한 행사들뿐입니다. 안전행정부에서 발표한 행사들을 보면 일반적인 경축식 이외에는 우리말 겨루기 대회, 한글 관련 강연, 한글사랑 서예전 등이 대부분입니다.

지금 필요한 것은 현재 나타나고 있는 부정적인 언어 현상을 인식하고, 나도 모르게 실행하고 있는 한글파괴, 무의식적으로 따르고 있는 외국어 남용과 관련된 언어생활에 대한 심각한 반성입니다. 어느 민족보다도 우수한 문자를 지니고 있으면서도 이러한 현상이 나타난다는 사실이 부끄러울 따름입니다. 오히려 우리는 초심으로 돌아갈 필요가 있지 않을까요? 훈민정음 서문에서 강조한 문자 창제의 정신, 즉 우리말이 중국의 말과 다름을 인식한 자주정신, 어리석은 백성들을 위해 창제했다는 애민정신, 사람마다 쉽게 사용하기를 바랐던 실용정신 등을 되새겨야 한다는 것입니다.

대구시교육청은 10월 9일 대구여자고등학교 강당에서 초'중'고교생, 대학생, 일반인 등 500여 명을 모아 '한글날 기념 토론 어울마당'을 엽니다. 한글날을 맞이하여 외면적으로 화려한 경축식보다는 문제의 본질을 들여다보고 대안을 모색하여 한글이 지닌 의미를 되새기는 행사입니다.

한글이 지닌 의미를 서로 공유하는 '여는 마당'으로 행사를 시작합니다. 이어 위베르 니쌍의 '개미'라는 소설을 바탕으로 해 '초록 개미와 파란 개미는 인간의 말을 사용해서는 안 된다'는 논제를 추출, 언어가 지닌 진정한 가치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을 가집니다. 오후에는 강당에서 원탁토론이 이루어집니다. 먼저 세대별 공감을 위해 '그대에게 할 말이 있습니다'라는 제목으로 서로 다른 세대들의 이야기를 듣습니다. 이어서 '한글날에 생각하는 말의 힘'이라는 의제로 아름다운 언어생활에 대한 원탁토론을 계속합니다. 마지막으로는 비속어, 은어, 줄임말 등으로 나타나는 언어파괴현상을 반성하고 그 결과를 엽서로 만들어보는 시간을 가집니다.

말은 힘을 지니고 있습니다. 우리 고유의 문화를 지키는 것과 세계화가 대립적인 의미를 지니지 않습니다. 우리 고유의 문화를 지키는 것이 곧 세계화의 시작이자 끝입니다. 거기에 한글날의 의미가 있습니다.

한준희 대구시교육청 장학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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