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가을, 눈이 시리도록 푸른 하늘 아래 누렇게 밤송이가 익어간다.
밤이 익기 시작하는 초가을부터 밤이 익기를 기다렸다. 개구쟁이들은 밤나무에 돌을 던지거나 나무의 우듬지를 발로 차서 떨어진 밤송이를 검정 고무신 사이에 끼워 까먹었다. 때로는 나무꼬챙이로 깠었는데 밤송이의 가시에 찔리면 깜짝 놀랄 정도로 아팠다. 알밤은 채 덜 익어서 겉껍질 속의 보늬(밤이나 도토리의 속껍질)를 까기도 까다롭고 떫은맛도 많았지만 워낙 먹을거리가 귀하던 때라 우리는 달다고 먹었다.
익으면 껍질이 반들반들한 알밤, 어릴 때 구워 먹거나 쪄먹으면 그렇게도 맛나던 알밤, 밤나무는 왜 밤알을 떨어뜨릴까. 밤나무에게는 수백 개의 밤톨이 하나같이 고운 자식이었다.
밤나무는 인간들만큼 자식들을 사랑하지 않는 걸까. 아닐 것이다. 새끼 사랑은 나무나 짐승이나 사람이나 모두 같을 것이다.
그런데 가을 저물녘 밤알을 재첩조개가 모래를 내뱉듯 떨쳐버리는 건 힘이 다해서이다.
여름 가뭄 때문에, 뿌리 주위 흙의 영양이 다해서 더 이상 자식을 거느릴 힘이 쇠잔한 탓이다.
몇십 년 전, 우리 부모님 세대에는 슬하에 보통 대여섯 명, 또는 열 명 가까이 되는 자식들을 낳았다. 굶주리든가 먹든가 상관없이 키웠다. 쌀밥은 1년에 명절이나 기제사 때 서너 번 구경하는 것이 고작이었고 꽁보리밥이나 국수, 감자, 옥수수를 강된장이나 고추장, 김치로 끼니를 때웠다.
올해는 과일 값과 밤 값이 많이 떨어졌다. 과일은 풍년이 든 탓이고 밤은 일본으로 수출하던 것이 막혀버린 탓이다. 가격이 내리니 사먹는 소비자는 좋지만 생산자들의 한숨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 마음이 아프다.
어린 시절 가을날 동이 트기도 전인 새벽이면 동생과 함께 밤을 주우러 다녔었다. 시냇물 속에 잠자고 있는 자갈처럼 동글동글 매끈하던 알밤을 주워 아궁이 잉걸불에 넣고 구우면 얼마나 맛있던지.
알밤이 떨어질 시기이다. 집 근처에 야산이 있어 일요일이면 밤을 만나러 간다. 그러나 워낙 많은 등산객 탓에 알밤을 줍기란 하늘의 별 따기다. 다시 고향 밤나무 아래에 가서 알밤을 줍고 싶다. 새벽잠 없는 주인 할아버지의 헛기침 소리에 놀라 살쾡이 만난 닭처럼 걸음아 날 달려라 도망갈지라도.
할아버지는 아버지 친구여서 우리가 알밤 몇 알 주워 먹어도 혼내지 않을 것이다. 세상의 모든 과실은 둥글다. 왜 세모도 네모도 아니고 둥글까. 모두 살아남기 위한, 생존을 향한 필사적인 노력이다. 둥글어야 땅에 떨어지며 멀리 떼굴떼굴 굴러가고 뿔뿔이 헤어져서 새 새끼를 낳고 종족을 번식시키기 때문이다.
세상은 이렇게도 살아가는 것이 눈물겹도록 힘들기 때문에 아름다운 것일까.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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