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필귀정] 국회가 문 열면 제일 먼저 해야 할 일

입력 2014-09-25 11:11:36

예상대로다. '부정청탁 금지 및 공직자의 이해충돌 방지법(김영란법)'의 처리 말이다. 세월호란 국가적 재난 앞에서 국회가 떠밀리듯 처리하겠다고 큰소리쳤지만 그럴 리 없다고 예상했는데 그 생각이 맞아떨어졌다.

이유는 간단하다. 애당초 국회의원들이 좋아할 만한 법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부정청탁 금지 및 공직자의 이해충돌 방지법'이 뭔가. '공직자가 100만 원 이상의 금품이나 향응을 받으면 대가성이 없더라도 형사처벌한다'는 법이다. 처음 국민권익위원장을 지낸 김영란 씨가 제안했고 그녀의 이름을 따 김영란법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시행되면 공직 투명성을 높여 국가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 할 수 있을 것으로 국민들이 기대하는 법이다.

하지만 걸리는 것이 있었다. 공직자의 범위에 국회의원을 포함한 것이다. 이 법이 통과되면 국회의원들은 못할 짓이 많다. 국정감사를 앞두고 피감기관으로부터 의례적으로 받아오던 식사 대접, 술 대접도 못 받게 된다. 지역구 민원을 해결하기 위한 청탁이나 기업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것도 웬만해선 어렵다. 출판기념회를 빙자해 거액의 돈을 거두는 것도 곤란해진다. 이뿐인가. 국회의원을 비롯한 공직자들은 금품수수혐의를 받게 되면 처음에는 '한 푼도 받은 적이 없다'고 딱 잡아뗀다. 그러다 돈을 받은 증거가 드러나면 '청탁의 대가가 아니다'거나 '대가성이 없다'는 등의 이유를 대 빠져나가기 일쑤였다. 법원 역시 이들에게 면죄부를 주곤 했다. 김영란법을 통과시키면 이런 변명이나 판단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해진다. 국회의원들이 자신들의 발목을 잡을 이런 못된(?) 법을 통과시킬 까닭이 없다.

그동안 대통령이 나서 여러 차례 김영란법을 통과시켜 주기를 요구했다. 이미 국회에 상정돼 잠자고 있던 이 법을 세월호 사건을 계기로 다시 끄집어낸 것도 대통령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올 5월 세월호 참사의 한 원인으로 관피아 논란이 불거지자 특별 담화를 통해 "전'현직 관료들의 유착 고리를 끊는 것이 중요하다. 국회에 제출돼 있는 김영란법의 조속한 통과를 부탁드린다"며 서랍 속에 든 김영란법을 다시 꺼내달라고 요구했다. 하지만 이뿐, 국회는 겉으로 임시국회 통과 운운하며 호들갑을 떨었지만 속으로는 꿈쩍도 안 했다.

보다 못한 대통령이 다시 나서 "결국은 인명까지 앗아가는 상황에서 (국회가) 자꾸 부패가 어떻다저떻다 탓하기에 앞서 김영란법을 통과시키는 것이 해야 할 일"이라고 직설적으로 비판했다.

국회는 마지못해 잠자던 이 법을 꺼내 주물럭거렸다. 직접적 대상자는 186만 명, 가족까지 포함하면 최대 1천800만 명까지 확대했다. 그리고선 이제 와 '직업의 자유를 지나치게 침해한다'느니 '현대판 연좌제'니 하는 등의 이유를 들어 통과를 지연시키고 있다. 국회의원들이 이렇듯 법 통과를 미루는 것이 이에 해당할 국민을 위해서인가. 아니면 그 자신을 위해서인가. 국민은 다 안다.

국회는 공전 중이다. 국회의원들로선 여간 다행스러운 일이 아니다. 그렇지만 국회 공전의 뿌리엔 세월호 참사가 있고, 그 이면엔 관피아로 대표되는 부패의 사슬이 있다. 국익을 앞장세워야 할 국회의원이라면 이 사실을 외면해선 안 된다.

시진핑의 중국이 부럽다. 대대적인 부패 척결에 나서 저우융캉 당 상무위원 같은 호랑이 사냥에 성공하더니 이제 해외까지 사정 범위를 넓히고 있다. G2로 성장한 국가 영향력을 배경으로 해외로 도피한 부패관리를 내놓으라고 큰소리치고 있다. 지난 두 달 동안 이렇게 잡아들인 해외도피 부패관료와 경제범이 88명에 이른다. 중국은 여기에 '여우사냥 2014'란 작전명을 붙였다. 시진핑의 중국은 안으로는 '호랑이 사냥', 밖으로는 '여우사냥'을 통해 부패하지 않은 중국을 만들어가고 있다.

부패의 고리를 끊지 못하면 선진국 반열에 오를 수 없다. 중국은 되는데 우리나라는 안 될 이유가 없다. 우리는 선진국 반열에 오른 듯 착각하고 있지만 우리나라의 부패지수는 다른 말을 하고 있다. 지금 추세라면 중국과 역전될 날도 머지않았다. 김영란법은 이런 부패의 사슬을 끊고 선진국으로 거듭날 수 있는 시작이다.

국회 개원논의가 한창이다. 국회의원들은 국민이 잊어주기를 원하지만 국민은 잊을 수가 없다. 이쯤 되면 개원 후 김영란법부터 통과시켜야 하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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