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이스탄불 선율에 젖은 신라의 달밤

입력 2014-09-17 07:42:05

수만 리 비단길을 거쳐 서라벌로 들어오는 서역 상인들이 보인다. 어느덧 화려한 중심가를 지나 신라왕궁을 향한다.

1천500년이 지난 후 이들의 후손이 이제는 문화를 가지고 그때의 그 '서라벌'을 찾았다. 국내 최초의 대규모 터키 문화축제인 '이스탄불 in 경주 2014'를 개최하기 위해 300여 명의 터키 문화예술인들이 경주를 찾은 것이다.

일행이 한국에 도착한 첫날, 필자는 당연히 그들이 그랬던 것처럼 공항까지 나가 반가운 얼굴들을 맞았다.

작년 이스탄불에서 개최됐었던 '이스탄불-경주세계문화엑스포' 폐막식에서 카디르 톱바쉬 이스탄불 시장님은 내년에 꼭 경상북도와 경주를 방문하겠다고 약속했었다. 그러나 필자는 국제적 문화교류 행사가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를 알기에 사실 반신반의했었다.

공항에 비행기가 내리고 기내에 올라 시장님과 손을 잡고 어깨를 감싸는 순간 필자도 모르게 콧잔등이 시큰해졌다. 유럽문화의 자존심 성소피아 성당 앞에서 한국의 전통문화로 480만 명의 세계인을 감동시켰던 기억과 멀리 떨어져 있던 벗을 재회하는 기쁨의 감정이 교차했으리라.

개막식이 열리던 날 저녁, 주행사장인 경주 황성공원은 이미 이스탄불로 변신해 있었다. 터키 최대의 전통시장을 재현한 그랜드 바자르에서는 케밥 시식이 한창이었고, 400년 동안 오스만 제국 술탄의 거처였던 톱카프 궁전이 개막식 무대 뒤에 옮겨와 있었다. 유라시아 광야를 바람처럼 질주하던 기마민족의 기상을 표현한 '풍고'(風鼓)가 울리면서 시작한 개막식은 동서문화의 진수를 하나둘 펼치며 신라의 달밤을 아름답게 수놓았다. 특히, 세계 최고로 꼽히는 중세 오스만 제국 군악대 메흐테르의 연주는 당시 유럽을 벌벌 떨게 했던 터키의 위용을 다시금 확인할 수 있었다.

이번 '이스탄불 in 경주 2014' 행사에는 터키 현지에 가서도 쉽게 접하기 어려운 공연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메흐테르 군악대를 비롯해 장르와 민족을 초월한 공연으로 유명한 켄트 오케스트라, 세계적인 클라리넷 거장 '세르칸 차으르'도 경주를 찾았다. 우리 측에서는 터키와 한국 사이 실크로드 국가들의 음악인들과 함께하는 '실크로드 소리길 공연'을 만들어 양측 문화교류의 의미를 더하는 한편 이영희 패션쇼, 김덕수 사물놀이 등 한국 문화계의 거장들도 대거 참여했다.

수만 리 떨어진 두 국가를 오가며 왜 이런 대규모 문화 행사를 하느냐고 반문하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21세기는 문화의 시대다. 치열한 국제사회에서 국가 경쟁력을 좌우하는 것은 문화와 같은 '소프트 파워'(soft power)다. 문화는 국가 이미지를 결정하고, 새로운 협력을 이끌어 내어 비즈니스로 연결시킨다.

작년 이스탄불-경주엑스포를 개최하면서 실크로드 통상사절단을 파견해 7천만달러의 수출계약을 달성했으며, 경상북도의 대(對)터키 수출액도 전년 대비 36%가량 증가했다. 또한, 지난 7월에는 한-터 자유무역협정(FTA) 중에서 서비스'투자 분야 협정이 타결됐다. 터키가 해외국가 중에서 최초로 우리나라에 서비스, 즉 문화 분야를 개방한 것이다. 여기에는 작년에 개최된 이스탄불-경주엑스포가 한몫했다는 것을 누구도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내년에는 실크로드 선상에 있는 국가들을 초청해 '실크로드 문화대축전'을 개최할 계획이다. 전 세계 인구의 3분의 2가 살고 있는 실크로드 국가들과의 문화적 교류를 바탕으로 21세기 신(新)실크로드를 개척하기 위함이다. 이는 박근혜정부가 주창하고 있는 유라시아 이니셔티브를 문화 분야에서 선도해 나간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을 것이다.

터키 메흐테르 군악대와 한국 전통 취타대가 함께 경주 시가지 퍼레이드를 펼치고 있다. 지금까지 행사를 관람하지 못한 독자들은 아직 늦지 않았다. 오는 22일까지 경주 황성공원에 가시면 터키 이스탄불에 흠뻑 빠질 수 있을 것이다.

오늘도 신라의 달밤은 이스탄불로 물들어가고 있다.

김관용/경상북도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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