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업 전 "원서는 썼니?" 답답…취업 후 "일은 어땠니?" 뿌듯

입력 2014-09-06 08:26:57

백수 탈출 당당한 추석 맞이

대기업의 영업직 수습사원으로 근무 중인 정진환 씨가 5일 사무실에서 고객을 만나 상담을 하고 있다. 홍준표 기자
대기업의 영업직 수습사원으로 근무 중인 정진환 씨가 5일 사무실에서 고객을 만나 상담을 하고 있다. 홍준표 기자

명절이 되면 한없이 작아지는 이들이 있다. 이른바 '백수'로 불리는 취업준비생들이다. 모처럼 친척들이 한자리에 모인 자리에서 취업준비생들은 스스로 주눅이 들기 마련이다.

하지만, 쉽지 않다는 '백수탈출'에 성공하면 가족이나 친척들 앞에서 누구보다 자신감이 충만하다. 추석연휴를 앞둔 5일 백수탈출에 성공해 당당히 명절을 맞이하는 20대를 만났다.

불과 몇 개월 전만 해도 정진환(28) 씨는 '장기 백수'라는 꼬리표를 달고 있었다. 지난 7월 국내의 한 대기업에 입사할 때까지 정 씨는 1년 6개월간 마음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대기업이나 중견기업 등 50곳 이상 원서를 냈지만, 서류전형에만 떨어진 곳이 30곳이 넘는다.

유럽으로 해외인턴십도 다녀오고 나름대로 '스펙'을 쌓았다고 생각했지만, 번번이 서류전형에서 떨어지자 심한 자괴감도 들었다. 서류 전형에 떨어진 날이면 '서류 기한 놓치지 않고 잘 내고 있느냐?'라는 부모의 질문에 짜증부터 났다. 더욱이 지도교수로부터 진로 방향을 다른 쪽으로 고민해보라는 조언까지 들을 때는 한동안 아무 일도 손에 잡히지 않았다.

명절이면 압박감은 더 크게 다가왔다. 오랜만에 만나는 친지라도 있으면 '직장은 어디 다니느냐?'라는 질문을 듣는 것 자체가 고역이었다. 정 씨는 "지난해 설에는 작은아버지 여섯 분으로부터 '곧 취업할 터이니 너무 걱정하지 마라'는 말을 들었다. 그런 말 자체가 부담스러워 가시방석에 앉은 기분이었다"고 토로했다. 이 때문에 올 설 연휴에는 공부 핑계를 대고 학교 도서관으로 향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번 추석은 다르다. 취업에 성공하면서 가족, 친지들 앞에서 장손으로 당당하게 설 수 있기 때문이다. 취업 후 정 씨는 지금껏 자신의 학비를 보태느라 힘들었을 부모님에게 보답하고 싶었다. 지난달 중순 받은 첫 월급을 고스란히 부모님에게 준 것이다. 정 씨는 "서울에서 공부하는 동생이 부모님에게 죄스러워 손을 벌리지 못해 월세가 밀렸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지난달 말에 받은 연수비로 동생의 밀린 월세를 해결해줬다"고 흐뭇해했다. 4일에는 부모에게 추석 장 보는데 보태라고 회사에서 나온 상품권도 드렸다. 추석 전날인 7일에는 경산에 있는 조부모댁에 들러 하룻밤 자고 추석 오후까지 친지들과 시간을 보낼 생각이다.

정 씨는 "취업 전에는 아버지가 '요즘 원서는 어디에 쓰고 있느냐'고 걱정스레 물었지만, 요즘은 '일이 어땠냐' '힘들진 않으냐'는 질문을 한다. 그럴 때마다 스스로 뿌듯함을 느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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