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에게나 다른 나라의 문화나 정치를 이해하는 데 큰 장애물이 되는 것은 미러 이미징(mirror imaging)이라는 경향 때문이다. 다른 나라의 언어를 배우고 이데올로기를 분석하는 대신 자신의 사고방식을 그 나라 민족에 투영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외국어 습득을 다른 민족보다 더 꺼리는 우리 미국인들은 이런 실수를 특히 자주 범하는 것 같다.
특히 미국의 북한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이 경향이 두드러진다. 재미 교포를 포함한 전문가 대다수가 북한 자료를 직접 읽고 분석할 수 있는 정도의 한국어 실력을 갖추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북한 정권의 행동에 대한 그들의 분석은 '내가 북한 지도자라면 이럴 때는 과연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주는 미러 이미징으로 끝날 때가 많다.
이 경향이 미국 기자들과 전문가들로 하여금 김정은이 과감한 개혁안을 내놓을 것이라는 기대를 하게 만들었다. 김정은이 단지 스위스에서 몇 년 살았다는 사실 빼고는 이런 추측을 뒷받침할 만한 근거가 전혀 없었는데도 말이다. 미국인들이 자신의 논리와 가치관을 북한 정권에 투영한 것뿐이다.
2012년 내내 미국 언론은 이런 기대를 충족시키는 듯한 모든 북한 소식을 부풀려 보도했다. 김정은이 놀이공원의 잘못된 관리를 비판했다거나 디즈니 캐릭터가 등장하는 연극에 참석했다는 이유만으로 그를 북한판의 덩샤오핑으로 보는 전문가가 한두 명이 아니었다. 그러나 이런 희소식들은 이내 말라버렸다. 2012년 말에 북한이 장거리 미사일을 발사했고 2013년 봄에는 한국전쟁 휴전 백지화 선언도 했다.
이런 실망감을 달래기 위해서 그런지 미국의 북한학계는 '매와 비둘기'설로 다시 회피했다. 이는 북한 정권에도 미국 정권처럼 강경파도 있고 온건파도 있겠지라고 하는 미러 이미징에 불과하다. 이 설에 '비둘기'가 주류를 이룬다. 지도자도 이 진영에 속하거나 이쪽에 아주 가깝다. 문제는 군대에서 군림하는 매파가 외부를 향한 도발로 비둘기파의 계획들을 자꾸 방해한다는 것이다.
이 설은 북한의 모든 새로운 도발에 대해 온건한 대책을 요구하게 한다. 북한의 비둘기들을 강화시키려면 대화를 재개해야 한다는 주장이 미국 신문사의 사설란에 규칙적으로 기재된다. 천안함 피격 사건과 연평도 포격 사건 후에도 그랬다. 북한 정권이 바로 이런 사고방식을 조장하려고 한다는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황장엽이 몇 번 지적했듯이 조선중앙통신사는 핵 문제에 대한 북한 군대와 북한 외무성의 의견들이 크게 엇갈리고 있다는 인상을 외부에 전달하기 위해 허위 보도를 자주 한다.
미국이 무조건 협상을 재개해야 한다는 논리가 미국 외무부에는 매력적일 수밖에 없다. 외교관들의 가장 큰 꿈 중의 하나는 대북 핵 협상에 참가할 기회를 얻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 자리에 참석한 경험이 훌륭한 스펙이 되기 때문이다. 북한과의 협상에 참가했던 외교관들은 정계나 학계에서 크게 출세했다. 서울에서 북한 관련 국제 학술대회가 열리면 이들은 아직도 스타 대접을 받는다.
하지만 북한이 너무나 뻔한 계산으로 직접 퍼뜨리는 허위 보도 말고는 매와 비둘기설에는 아무런 근거가 없다. 다른 모든 정권과 마찬가지로 북한에서도 기관들 사이에 의견차이와 마찰이 존재하기는 한다. 하지만 적을 '초강경적으로' 다루어야 한다는 점에 대해서는 북한 정권 전체가 동의하는 바이다.
내가 보기에 한국의 북한학계에서는 매와 비둘기설이 별로 인기가 없는 것 같다. 김정은이 정책에 대한 기본적인 논쟁이나 분열을 방치하고 있다고 믿기에는 한국인들이 한반도의 권위주의 전통을 너무 잘 알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그러나 한국어를 한마디도 구사하지 못하는 미국인 전문가가 학술대회에서 매와 비둘기설을 자신 있게 표방하면 한국 연구자들은 예의 있게 들어주기만 하는 경우가 많다. 외국인 손님에게 너무 예의를 다하다 보니 반박하기가 쉽지 않은 모양이다. 하지만 한미동맹이 제대로 잘 돌아가도록 하려면 서로가 서로의 잘못된 생각과 정보를 지적해 주는 용기가 필요하다. 앞으로는 한국의 북한 전문가들이 미국인의 매와 비둘기설뿐만 아니라 다른 형식의 미러 이미징도 지적해 주고 수정하도록 했으면 한다.
브라이언 마이어스/동서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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