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담학 박사 김미애 교수의 부부·가족 상담이야기] 추석 때 가기 싫은 시댁

입력 2014-09-04 07:27:07

◇고민=남편은 추석 때 시댁에만 가면 저와 아이들을 거들떠보지도 않습니다. 음식 먹을 때도 시댁식구들만 둘러앉아 먹고 제겐 권하지도 않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주방에서 하루 종일 서서 일하는데도 눈길 한 번 주지 않고, 어린아이처럼 텔레비전만 즐기며 감주 가져 와라, 금방 구운 전도 더 달라며 저를 종 부리듯 합니다. 그래도 시댁식구들은 당연한 듯 자기들끼리 웃고 떠들며 며느리는 아예 뒷전입니다. 친정이 멀고 가족관계도 불편한 저는 시댁에서만이라도 사랑받고 싶은데 늘 실망만 합니다. 특히, 시댁에만 가면 나 몰라라 하며 등 돌려 자기만 즐겁게 노는 남편이 정말 싫습니다. 추석 명절엔 시댁에 정말 가기 싫습니다. 이번 추석, 어떻게 넘겨야 할까요.

◇솔루션=가을이 오는 소리가 살포시 나는가 싶더니 어느덧 추석이 가까워졌네요. 아마도 명절 땐 고향 가는 길에 풍성한 들판을 보는 것만으로도 즐거운 일이라 여겨집니다만, 때론 아내 입장에서는 대부분 시댁과 함께 보내야 할 시간이기에 이모저모 느껴지는 스트레스가 있게 마련인 것 같습니다. 귀하의 경우도 남편이 평소엔 관심을 잘 가져주다가도 시댁에만 가면 나 몰라라 하며 원가족들과 어울려 즐기고 등 돌리듯 해서 아예 시댁에 가고 싶지 않다는 기분을 느낄 만큼 스트레스를 갖는 것 같습니다. 특히, 친정 가족들과는 멀리 떨어져 있고 더욱이 그들과 따뜻한 관계도 결핍되어 외로움을 느끼는 귀하의 경우는 남편의 무심한 태도에 더욱더 실망스럽고 힘 빠지는 심정이 되리라 생각됩니다. 그래서 명절 때 어린아이 같은 남편의 무책임한 태도를 그저 받아주기만 하는 시댁식구들까지 싫어져서 이제는 명절 때조차 가기 싫은 마음인 것 같습니다. 그 마음 밑에 있는 귀하의 심경을 헤아려 보면, 무심한 남편 모습을 결국은 아내를 사랑하지 않고 관심도 없으며 하찮은 사람으로 여긴다고 해석하는 것 같습니다. 그렇다 보니 추석만 되면 남편과 시댁으로부터 더욱더 소외되고 외로움만 한 번 더 확인하는 슬픔까지 느끼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이 문제는 조금만 더 깊이 생각해보면 그리 걱정할 일은 아니라 여겨집니다. 남편은 평소에는 아내와 아이에게 관심과 애정을 가지고 잘 대해주는 좋은 모습도 있는 분입니다. 그럴 때의 남편은 '가장으로서의 남편 역할'에 충실한 모습이라 이해가 됩니다. 그러나 명절 때 본가에 가서 귀하가 실망하는 남편의 모습은 '어린 아들로서의 자녀 역할'에 충실한 것이라 여겨집니다. 이것은 결국 남편은 귀하를 사랑하지 않는 게 아니라 부모님이 계시는 환경에 모처럼 젖어들다 보면 그땐 자기도 모르게 '역할의 전환'이 순간적으로 이루어져 버린 결과이기도 합니다. 남편도 겉모양은 어른으로 자랐지만, 자기가 어린 시절 자라던 고향집으로 돌아가면 잠시, 아주 잠시 자기도 마치 어린아이가 되어버린 착각을 하여 순간 부모와 형제 앞에서 어린 시절의 역할을 잠시 하고 있는 것뿐이랍니다. 그런 남편의 역할을 어떻게 이해하느냐에 따라 귀하의 마음은 사뭇 달라질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추석 땐 남편에게 살짝 귀띔하세요. 명절 내내 원가족의 '어린 아들의 역할'만 하면 아내는 외로움과 서운함을 느껴 마음이 힘들다고 말이에요.

대구과학대 교수 대구복지상담교육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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