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일장에서 만난 사람들
5일장에 오는 사람들이 많이 줄었다지만 그래도 장날은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날이다. 추석 전에 장이 한두 번 더 돌아오긴 하겠지만 미리미리 준비하는 사람들도 있기에 이미 대목은 시작된 셈이다. 그래서 추석을 준비하기 위해 장에 온 사람과 추석에 하나라도 더 팔아 추석을 풍족하게 보내려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5일장 돌며 장사하는 신광식 씨
26일 상주 함창5일장에서 만난 신광식(57) 씨는 경북 중'북부지역의 5일장을 돌며 옷을 팔고 있었다. 신 씨는 부인과 함께 함창5일장을 포함해 가은 아자개5일장, 문경5일장 등을 돌아다니며 장사를 하고 있다. 추석을 앞두고 추석빔을 마련하려고 신 씨의 좌판에 들를 사람이 많을 것 같은데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IMF 이후에 명절 대목이라는 게 없어지다시피 했어요. 지금은 과일가게나 어물전 같은 곳이나 조금 팔릴까 옷은 어림도 없어요. 겨울엔 그래도 내복이라도 팔리니 좀 낫지만 추석은 옷장사를 하는 사람들에게는 크게 와 닿는 대목이 아닙니다. 아무리 경기가 어려웠어도 10년 전엔 선물용 양말세트 정도는 찾는 분들이 꽤 많았는데 이제는 그런 걸 찾는 손님도 거의 없다시피 합니다."
이렇게 된 원인 중에는 대형마트도 한몫을 했다. 근처 상주 시내나 문경 시내에 대형마트가 생기면서 함창5일장으로 오는 손님들이 확 줄어들었다. 신 씨는 "예전에는 함창5일장이 지금의 두 배 크기는 됐다"며 "돈 있는 사람들은 시장 물건보다 브랜드 있는 걸 사 입으니 시장에서 물건 사는 사람이 별로 없다"고 말했다.
그래도 신 씨가 5일장에서 계속 장사를 하는 건 단골들이 있기 때문이다. 한 손님은 신 씨와 20년 넘게 아는 사이라고 했다. 이 단골손님은 "신 씨와 알면 알수록 파는 사람과 사는 사람 사이의 정이 깊어진다"며 "혹시라도 장날에 안 오는 일이 생기면 장이 텅 빈 것 같아 걱정할 때도 많다"고 말했다. 손님이 얼마 없었던 이날 단골손님들은 신 씨 부부의 말벗이 되기도 했다. 시원한 드링크 한 병을 함께 마시며 동네 이야기도 들려주고 자주 오던 손님 근황도 주고받는다. 신 씨는 "이렇게 정을 나누고 산 게 20년이 넘었다"고 말했다.
오후 5시가 되자 신 씨 부부는 팔려고 걸어놓은 옷들을 걷기 시작했다. 내일은 상주7일장에 자리를 잡을 계획이다. 신 씨는 "7일장이 규모 면에서는 5일장보다 크니 아무래도 더 많이 팔지 않겠나 싶다"고 말했다. 신 씨가 자리한 곳의 옷과 옷걸이들이 모두 신 씨의 컨테이너 차량 안으로 들어가자 꽉 찬 듯하던 함창5일장이 그제야 텅 빈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단골손님의 말이 증명되는 순간이었다.
◆"자식들과 추석 잘 보내야지요"
27일 오전 11시쯤 선산5일장에 나온 사람들의 장바구니와 손수레에는 물건들이 한두 개씩 채워져 있었다. 이미 물건이 가득한 어르신들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다. 다른 5일장이 그렇듯이 이곳에서도 장에 나온 사람들 대부분이 연세 지긋한 할아버지, 할머니들이었다. 이분들에게는 팔 아프게 들고 다니는 장바구니보다는 작은 손수레나 바퀴가 달려 끌고 다닐 수 있는 장바구니가 제격이다.
선산5일장 입구에서 만난 이상순(78), 권정숙(72), 문옥순(67) 할머니의 장바구니도 이미 가득 차 있었다. "추석 준비를 위해 구미 시내에서 버스를 타고 왔다"는 세 할머니는 기자에게 흔쾌히 장바구니를 공개해 주었다. 하나는 마늘로 꽉 차 있었고, 문옥순 할머니가 들고 온 바퀴 달린 대형 장바구니에도 검은 비닐봉지에 든 여러 가지가 가득가득 들어가 있었다.
"오늘 산 게, 보자…, 마늘 두 접, 조기, 북어 등등 해서 이것저것 사 넣었네. 우리가 쓴 돈이 한 15만원은 넘나? 여기가 구미에서는 제일 큰 장이니까 아무래도 물건이 싸고 좋은 게 많겠다 싶어서 온 거라우. 여기저기 돌아다니다 보니 못 들고 가서 못 사는 게 더 많구만그려."
세 할머니는 "추석 때 떨어져 있는 자식들과 손주가 올 거라는 생각에 장을 보는 내내 기분이 좋았다"고 했다. 이상순 할머니는 집안이 차례를 지내지 않는데다 자식들이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살기 때문에 자식들과 손주들이 추석 당일 할머니 댁에 모여서 명절 음식 해 먹고 하루 신나게 놀다가 간다고 한다. 이 할머니는 "동그랑땡도 해 주고 꼬치도 해주고 부침개도 해 주려고 다 준비를 해 놨다"며 이미 손주들이 오면 무슨 음식을 해 줄지도 머릿속에 다 그려놓고 있었다.
이야기를 하는 도중 문옥순 할머니는 "조금 있다 오겠다"며 어디론가 사라졌다. 문 할머니가 간 곳은 근처에 채소를 파는 노점이었다. 남은 두 할머니는 갈 시간이 되자 문 할머니에게 "빨리 오라"며 소리쳤다. 문 할머니가 부리나케 장바구니를 끌고 오자 세 할머니는 기자에게 "조심해서 가소"라는 인사를 건네며 버스정류장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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