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에 올 자식·손주 생각하면 기분 좋지~"

입력 2014-08-30 08:00:00

5일장에서 만난 사람들

선산5일장에서 만난 문옥순(사진 왼쪽), 권정숙 할머니가 장바구니를 들고 장을 보고 있다. 이화섭 기자
선산5일장에서 만난 문옥순(사진 왼쪽), 권정숙 할머니가 장바구니를 들고 장을 보고 있다. 이화섭 기자
다음 장날을 위해 물건을 정리하는 신광식 씨. 이화섭 기자
다음 장날을 위해 물건을 정리하는 신광식 씨. 이화섭 기자

5일장에 오는 사람들이 많이 줄었다지만 그래도 장날은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날이다. 추석 전에 장이 한두 번 더 돌아오긴 하겠지만 미리미리 준비하는 사람들도 있기에 이미 대목은 시작된 셈이다. 그래서 추석을 준비하기 위해 장에 온 사람과 추석에 하나라도 더 팔아 추석을 풍족하게 보내려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5일장 돌며 장사하는 신광식 씨

26일 상주 함창5일장에서 만난 신광식(57) 씨는 경북 중'북부지역의 5일장을 돌며 옷을 팔고 있었다. 신 씨는 부인과 함께 함창5일장을 포함해 가은 아자개5일장, 문경5일장 등을 돌아다니며 장사를 하고 있다. 추석을 앞두고 추석빔을 마련하려고 신 씨의 좌판에 들를 사람이 많을 것 같은데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IMF 이후에 명절 대목이라는 게 없어지다시피 했어요. 지금은 과일가게나 어물전 같은 곳이나 조금 팔릴까 옷은 어림도 없어요. 겨울엔 그래도 내복이라도 팔리니 좀 낫지만 추석은 옷장사를 하는 사람들에게는 크게 와 닿는 대목이 아닙니다. 아무리 경기가 어려웠어도 10년 전엔 선물용 양말세트 정도는 찾는 분들이 꽤 많았는데 이제는 그런 걸 찾는 손님도 거의 없다시피 합니다."

이렇게 된 원인 중에는 대형마트도 한몫을 했다. 근처 상주 시내나 문경 시내에 대형마트가 생기면서 함창5일장으로 오는 손님들이 확 줄어들었다. 신 씨는 "예전에는 함창5일장이 지금의 두 배 크기는 됐다"며 "돈 있는 사람들은 시장 물건보다 브랜드 있는 걸 사 입으니 시장에서 물건 사는 사람이 별로 없다"고 말했다.

그래도 신 씨가 5일장에서 계속 장사를 하는 건 단골들이 있기 때문이다. 한 손님은 신 씨와 20년 넘게 아는 사이라고 했다. 이 단골손님은 "신 씨와 알면 알수록 파는 사람과 사는 사람 사이의 정이 깊어진다"며 "혹시라도 장날에 안 오는 일이 생기면 장이 텅 빈 것 같아 걱정할 때도 많다"고 말했다. 손님이 얼마 없었던 이날 단골손님들은 신 씨 부부의 말벗이 되기도 했다. 시원한 드링크 한 병을 함께 마시며 동네 이야기도 들려주고 자주 오던 손님 근황도 주고받는다. 신 씨는 "이렇게 정을 나누고 산 게 20년이 넘었다"고 말했다.

오후 5시가 되자 신 씨 부부는 팔려고 걸어놓은 옷들을 걷기 시작했다. 내일은 상주7일장에 자리를 잡을 계획이다. 신 씨는 "7일장이 규모 면에서는 5일장보다 크니 아무래도 더 많이 팔지 않겠나 싶다"고 말했다. 신 씨가 자리한 곳의 옷과 옷걸이들이 모두 신 씨의 컨테이너 차량 안으로 들어가자 꽉 찬 듯하던 함창5일장이 그제야 텅 빈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단골손님의 말이 증명되는 순간이었다.

◆"자식들과 추석 잘 보내야지요"

27일 오전 11시쯤 선산5일장에 나온 사람들의 장바구니와 손수레에는 물건들이 한두 개씩 채워져 있었다. 이미 물건이 가득한 어르신들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다. 다른 5일장이 그렇듯이 이곳에서도 장에 나온 사람들 대부분이 연세 지긋한 할아버지, 할머니들이었다. 이분들에게는 팔 아프게 들고 다니는 장바구니보다는 작은 손수레나 바퀴가 달려 끌고 다닐 수 있는 장바구니가 제격이다.

선산5일장 입구에서 만난 이상순(78), 권정숙(72), 문옥순(67) 할머니의 장바구니도 이미 가득 차 있었다. "추석 준비를 위해 구미 시내에서 버스를 타고 왔다"는 세 할머니는 기자에게 흔쾌히 장바구니를 공개해 주었다. 하나는 마늘로 꽉 차 있었고, 문옥순 할머니가 들고 온 바퀴 달린 대형 장바구니에도 검은 비닐봉지에 든 여러 가지가 가득가득 들어가 있었다.

"오늘 산 게, 보자…, 마늘 두 접, 조기, 북어 등등 해서 이것저것 사 넣었네. 우리가 쓴 돈이 한 15만원은 넘나? 여기가 구미에서는 제일 큰 장이니까 아무래도 물건이 싸고 좋은 게 많겠다 싶어서 온 거라우. 여기저기 돌아다니다 보니 못 들고 가서 못 사는 게 더 많구만그려."

세 할머니는 "추석 때 떨어져 있는 자식들과 손주가 올 거라는 생각에 장을 보는 내내 기분이 좋았다"고 했다. 이상순 할머니는 집안이 차례를 지내지 않는데다 자식들이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살기 때문에 자식들과 손주들이 추석 당일 할머니 댁에 모여서 명절 음식 해 먹고 하루 신나게 놀다가 간다고 한다. 이 할머니는 "동그랑땡도 해 주고 꼬치도 해주고 부침개도 해 주려고 다 준비를 해 놨다"며 이미 손주들이 오면 무슨 음식을 해 줄지도 머릿속에 다 그려놓고 있었다.

이야기를 하는 도중 문옥순 할머니는 "조금 있다 오겠다"며 어디론가 사라졌다. 문 할머니가 간 곳은 근처에 채소를 파는 노점이었다. 남은 두 할머니는 갈 시간이 되자 문 할머니에게 "빨리 오라"며 소리쳤다. 문 할머니가 부리나케 장바구니를 끌고 오자 세 할머니는 기자에게 "조심해서 가소"라는 인사를 건네며 버스정류장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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