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민이 아빠로 잘 알려진 김영오 씨가 40여 일의 단식 끝에 쓰러졌다. 그는 딸의 생명을 앗아간 세월호 참사의 실상을 밝혀달라며 싸우는 중이었다. 그러나 이 '김의 전쟁'을 보는 시각은 극명하게 다르다.
참사가 일어난 지 오늘로 135일째. 5개월로 접어든 긴 날 동안 하루도 관련 뉴스가 나오지 않은 날이 없었다. 당국은 수많은 사람을 구속했지만, 실체는 제대로 밝히지 못했고, 정치는 마비돼 나라 꼴은 엉망진창이 됐다. 특히 사건 수습과 치유의 마지막 단계인 참사 원인 규명을 위한 특별법 제정 문제를 정치권이 제대로 해결하지 못하고, 김영오 씨가 단식을 시작하면서 더 풀기 어려운 상황이 됐다.
참사에 눈물 흘리고 가슴 아파하던 많은 국민은 지루한 특별법 제정 공방 과정에 넌더리를 냈다. 이에 따른 모든 비난은 국민을 지키지 못한 정부와 이를 두고 정쟁을 벌이는 정치인에게 겨눠져야 하지만 오히려 피해자인 세월호 유가족과 단식 중인 김영오 씨의 몫이 됐다.
세월호 참사는 온갖 협잡과 비리로 얼룩져 무허가와 마찬가지인 배가 적재 규정을 무시하고 출항해 원인 불명으로 침몰한 사건이다. 최소한의 안전 시스템만 작동했더라면 아예 없었을 사건이 '국가적' 참사가 된 것이다. '국가적'이란 이번 사건의 전적인 책임이 국가에 있다는 뜻이다. 여기에는 수학여행을 간 학생이나 유람 삼아 제주도로 간 여행객에게 잘못을 물을 여지가 없다. 그러나 정부는 사건 발생에서 과정, 수습에 이르기까지 어느 것 하나 똑 부러지게 마무리한 것이 없다.
그런데 참사에 대한 사회적 후유증이 길어지고, 수습과 관련한 유가족의 지나친 요구로 '너무 한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이제는 노골적인 비난이 유가족과 극한투쟁을 벌이는 김영오 씨에게 집중돼 있다. 특히 김 씨에 대한 비난은 극심하다. 많은 국민은 하나뿐인 목숨을 걸고, 아이의 억울한 죽음의 원인을 밝혀달라고 호소하는 것을 뭔가 나쁜 의도가 있다며 수상하다고 생각한다. 여기에다 이혼과 양육비 문제 등 가족사와 강경 노조 조합원 경력, 취미 생활 등 사생활이 덧칠해지고, 유가족의 설득에 실패한 야당이 거리로 나서면서 김 씨의 단식은 완전히 정치 문제가 됐다.
개인의 가치관에 따라 어떤 사건을 보는 시각은 다르다. 김 씨의 단식으로 극명하게 갈린 여론만 하더라도 그렇다. 그러나 과거 김 씨의 어떤 행동이나 말에 잘못이 있다 하더라도 유민이의 생명을 저버린 국가의 잘못보다는 무게가 덜 하다. 또한, 그의 단식 뒤에 드러나지 않은 의도가 있다 해도 사람의 목숨이 달린 일은 가볍게 볼 일이 아니다. 극단적이기는 하지만, 단식투쟁은 절대 약자인 개인이 국가에 호소하는 막바지 수단일 뿐이다.
이번 일은 여당과 대통령이 좀 더 유연성을 가지고 대처해야 한다. 많은 국민은 세월호 특별법 제정에서 여당이 인내심을 갖고 양보했음을 안다. 그들의 표현 방법을 쓰면 여당은 최소한 야당과의 싸움에서는 이미 이겼다. 백 번 참아 유가족의 요구 사항을 들어준다 해도 이는 야당의 공세에 굴복하는 것이 아니라 억울하게 죽은 희생자 유족을 배려하는 것이다. 좀 더 양보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또한, 선례를 만들면 어떤가? 온갖 비리로 국회의원이 줄줄이 구속되고 이번 사건에서도 공무원의 부정부패가 얽히고설킨 것이 드러난 판에 대의정치(代議政治)나 법치주의(法治主義)를 내세우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다.
아이를 잃은 부모에게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행동을 요구하는 것 자체가 비상식적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 풀어야 한다. 지금은 김 씨와 여론에 찢긴 국민을 살려야 할 때다. 국민의 생명을 살린다는 데 버선발로 뛰어가지는 못할망정 정치적 이해득실이나 체면 따위를 계산해서는 안 된다.
마키아벨리는 비르투(Virtu'탁월성)와 포르투나(Fortuna'행운), 네세시타(Necessita'시대적 요구)를 군주와 국가의 세 가지 덕목으로 들었다. 세월호 참사는 대통령뿐 아니라 국가의 불운이었다. 그동안의 과정에 동조하든, 반대하든 빨리 현재의 구렁텅이에서 빠져나와야 한다는 네세시타도 있고, 이를 풀어야 하는 것은 대통령의 비르투다. 대통령이 나서지 못할 이유가 없다.
지난 5월, 세월호 참사에 따른 대국민 사과 때 흘린 대통령의 눈물을 기억한다. 그리고 많은 국민은 그 진정성을 믿었다. 이제는 눈물이 아니라 그때 눈물을 흘리며 약속한 진정성을 행동으로 보여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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