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세월호 3자 협의', 무능의 자인이자 무책임한 발상

입력 2014-08-25 11:27:12

여야와 세월호 유가족이 참여하는 3자 협의체를 구성해 세월호 특별법을 논의하자는 새정치민주연합 박영선 원내대표의 제안은 정치적 무능의 자인(自認)이다. 여당과 합의한 특별법안이 두 번이나 유족에게 거부당하자 여당을 끌어들여 자신은 뒤로 빠지겠다는 것이다. 유족을 설득하지 못한 무능의 책임을 여당에 떠넘기려는, 일종의 물타기다. 그럴 거면 처음부터 3자 협의 방식으로 하자고 해야 했었다.

더 심각한 것은 그런 제안은 의회주의에 대한 부정이다. 그렇게 한다면 국회가 존재할 이유가 없다. 입법의 주체는 국회다. 민간인은 로비나 청원 등의 방식으로 입법에 간접적으로 참여할 수 있을 뿐이다. 3자 협의로 법을 만든다면 이해당사자가 법을 만드는데 직접 참여하는 매우 나쁜 선례를 남기게 된다. 이는 앞으로 비슷한 사건이 터졌을 때 이해당사자는 선례를 들어 똑같은 요구를 할 것이고 여야는 거부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이런 사태는 대의 민주주의의 종식을 의미한다.

유가족들도 이제는 냉정을 찾아야 한다. 진상조사위에 수사권과 기소권을 부여하라는 것은 피해자 자력구제 금지라는 형사법 원칙의 부정이다. 이해 당사자가 수사와 기소에 어떤 형태로든 관여하는 것은 그 자체로 수사와 기소의 객관성을 무너뜨리는 것이다. 대통령의 결단 촉구도 이해하기 어렵다. 대통령이 유족의 요구대로 법을 만들라고 국회에 요구하는 것은 삼권분립의 위반이다. 대통령이 그렇게 한다면 자신들의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 국회를 제치고 대통령에게 바로 달려가는 사태가 줄을 이을 것이다.

유족들의 요구에는 못미치지만 세월호 특별법 2차 합의안은 유족의 요구와 형사법 체계를 합리적으로 절충한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진상조사위에 가족 추천 인사가 다수 들어가고 특별검사 추천위의 여당 몫 2명도 유족의 사전동의로 여당이 추천하는 것으로 정리된 만큼 유족들의 요구가 상당 부분 수용됐다고 평가할 수 있다. 국민은 세월호 유족의 고통에 공감하면서도 그들이 요구하는 '철저한 진상조사'가 초법적 방식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새정치연합과 유족은 이를 잘 인식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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