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명량의 빛과 그림자

입력 2014-08-22 07:38:12

한반도 전체를 거대한 죽음의 골짜기로 휘몰아 넣은 광란의 전쟁에서 23전 23승 불패신화를 만들어낸 무장 이순신. 그에 대한 이야기는 영화나 소설, 연극 등 다양한 형식을 통해 많은 사람들의 기억에 남아 있다. 역사학계에서는 이순신 전승의 주된 비결을 절대적으로 열악한 조건 속에서 절대적으로 이길 수밖에 없는 상황을 스스로 모색하고 연출한 데서 비롯된 것으로 보고 있다. 인간은 역사라는 환경의 지배를 받으면서 생존한다. 그러나 이순신은 자신이 대면한 모든 현실을 묵묵히 수용하면서도 유독 바다에서만은 자신의 신념에 따라 해전을 수행하였다. 특히 명량해전은 칠천량해전의 대패로 말미암아 남부 해안의 제해권을 상실하면서 조선 수군의 기반마저 붕괴된 가파른 전황(戰況)을 딛고 재기의 발판을 구축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그런데 역사학자인 필자는 명량해전의 백미를 칠천량에서의 참담한 패전으로 인한 공황 상태를 이겨내며 명량이라는 또 다른 불확실한 전쟁이 던지는 죽음의 그림자 속에서 한계를 뛰어넘는 힘이 무엇인가를 보여준 이순신의 자아에서 찾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순신이 명량해전을 눈앞에 두고 "반드시 죽고자 하면 살 것이요, 살고자 하면 죽을 것이다"라고 했던 말은 당시 조선 수군 내부를 시시각각 압박하는 불안정한 정서가 매우 심각하게 요동치고 있음을 방증한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역사는 돌아다니는 시선이다. 이 말은 어떠한 역사적 대상도 관점(개념) 없이 보면 아무것도 읽어낼 수 없다는 뜻이다. 개념 없는 경험은 대개 경험한 대상에 관한 인상이나, 희미한 기억 혹은 순간적으로 지나쳐 버리는 느낌으로 끝난다. 그래서 우리는 역사와의 만남을 통해 경험한 것을 관점에 입각하여 바라보는 자세가 필요하다.

한국사회는 경제성장과 복지를 표방하고 있지만 그 이면은 우울한 기운이 감돈다. 끝없는 반목과 경쟁에 지친 삶의 현장에서 여러 양태의 화풀이적 폭력이 되풀이되는 이때, 역사적 명량을 주제로 한 영화 '명량'이 대중들에게 이순신을 되돌아보게 함으로써 하나의 활력소가 되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시세(時勢)에 따라 스치고 지나가는 심리적, 감각경험이 아니라, 그 경험을 가슴에 새기며 삶을 지속적으로 반추해 내는 것이 되어야 한다.

명량해전을 코앞에 둔 이순신 앞에 놓인 긴장 국면은 결코 예사롭지 않다. 왜냐하면 잔존하는 수군병력을 해체하여 육군에 재편하려는 논의가 분분한 시점에 어머니를 잃고 목 놓아 울부짖으며 "어찌하오, 어찌하오, 하늘과 땅에 나 같은 운명이 어디 또 있으랴. 일찍 죽는 것보다 못하다"는 절규를 쏟아내며 만신창이가 된 몸으로 이순신은 생애 두 번째 백의종군을 맞이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때 이순신은 선조를 향하여 "신에게는 아직도 12척이 있습니다. 비록 전선은 적지만 신이 죽지 않는 한 적이 감히 우리를 무시하지는 못할 것입니다"라는 상소문을 올렸다.

흔히 자존감이 약한 사람은 판단을 당하거나 비평을 받을 때, 굴욕감을 느끼는 것을 극히 두려워한다. 반면 자존감이 있는 사람은 자신이 할 줄 아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을 안다. 따라서 이순신이 선조에게 바친 글은 어떠한 여건과 처지 속에서도 자신이 서 있는 자리에서 자신이 직면한 역사적 상황을 자각하고 자신이 해야 하는 역할을 찾아 난국을 정면 돌파하려는 이순신 자아의 자존감을 보여주는 명백한 역사적 근거가 된다고 하겠다.

따라서 그는 우리 모두의 이순신이며 역사적 자아인 것이다. 개인의 실리만 따지는 경박한 세태와 그로 인한 갈등이 빚어지는 오늘날, 아들로서, 아버지로서, 장수로서 이순신이 자신의 삶 속에서 보여준 치열한 정신과 태도가 시대를 뛰어넘어 우리에게 빛으로 다가온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송인주 대구교육대 사회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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