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와 혁신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어느 때보다 높다. 7'30 재'보선에서 압승한 새누리당은 '보수 혁신'을 내세우고 있고, 참패한 새정치민주연합은 국민공감혁신위원회라는 비상대책기구를 출범시켰다. 국민이 공감하는 변화와 혁신만이 새정치연합이 '살아남을 수 있는 길'이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는 생각이다. 이보다 앞서 6'4 지방선거에서는 변화와 혁신을 갈망하는 시민들의 열망이 '낯선' 권영진 후보를 대구시장으로 당선시켰다. 우리에게 큰 감동과 묵상을 던져주신 프란치스코 교황의 말씀도 따지고 보면 변화하고 스스로를 혁신하라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낮은 곳' '가난한 자' 쪽으로, 또 스스로 더욱더 낮추고 겸손해지라는 방향성을 제시한 측면에서 남다르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변화와 혁신이라는 말은 무성한데, 우리 사회는 좀처럼 바뀌지 않고 있다. 마치 '변화와 혁신'이라는 구호와 보여주기식 '쇼'(show)가 그 실체인 양 오해하는 듯하다. 변화와 혁신을 포퓰리즘에 이용한다는 느낌마저 든다.
그럼, 변화와 혁신의 진정한 실체는 뭘까. 과학은 변화와 혁신의 궁극적 목표는 '처절한 생존'이라는 것을 생생히 보여주고 있다. 얼마 전 국제학술지 사이언스의 온라인판에, 2억 년 전에 존재했던 몸무게 163㎏의 육식공룡인 테타누라가 800g의 새로 작아지는 과정을 밝힌 글이 주요논문으로 실렸다. '공룡'이 급변하는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해 '작은 새'로 진화했다는 내용이다. 이를 증명하기 위해 120여 종, 1천549개의 공룡 및 조류의 골격과 특징을 모아 분석했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5천만 년 동안 무려 12번의 골격이 바뀌는 고통을 겪었다. 환골탈태(換骨奪胎)라는 고사성어가 단지 시적 표현이 아니라, 엄연한 과학이자 생존의 방식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그렇다. 변화와 혁신은 얼핏 환상적이고 낭만적으로 느껴지지만, 그 실체는 '죽음과도 같은 고통'이다. 그렇다고 해서 '살아남기 위해 몸부림치는 것'이 우리가 외치고 바라는 변화와 혁신은 아니다. 단순한 생존을 위한, 좀 더 자기가 (물질적 측면에서) 잘 살기 위한 이런 의미의 변화와 혁신은 이미 우리 사회에 과잉상태다.
이 대목에서 이순신을 다룬 영화 '명량'이 감동을 준다. 이순신은 자신이 살아남기 위해서가 아니라, 나라와 백성을 구하기 위해 철저히 스스로를 던졌다. 그것도 원균처럼 용감하기는 했지만 무모하게 자신과 군사들의 목숨을 던진 것이 아니라, '죽을 자리'를 '제대로' 찾았다.(원균 장군도 이순신에 버금가는 임진왜란의 공신이라는 점은 기억하자) 영화가 해피엔딩으로 막을 내려 다행이지, 이순신이 탄 지휘선이 소용돌이 속에 고립됐을 때, 백성들이 힘을 모아 구해주지 않았으면 그 자리가 이순신과 그 동료의 수장 무덤이 됐을 것이다.
이순신은 여기까지, 즉 최선을 다하고 자신이 죽을 자리까지만 생각했다. 그다음은 '하늘의 몫'이다. 그래서 '민심=천심'인 것이다. 정치권의 변화와 혁신이 구호로만 그치고 있는 이유는, 바로 "내가 다음 대권을 잡아야 하는데…" "다음 총선에서 내가 또 금배지를 달아야 하는데…" 하면서, 죽을 자리가 아니라 '살아남을 궁리'를 하기 때문이 아닐까. 살아남으려 거북선을 불태우고, 혼자 나룻배를 타고 도망가다 아군이 쏜 화살에 맞아 죽은 조선 수군 장수의 모습이 어쩌면 지금 한국 정치인들의 실상에 가깝다는 생각이다. 말로는 이순신을 배우자고 하면서, 행동은 반대인 셈이다.
권영진 대구시장께도 한 말씀 드리고 싶다. '내가 대구시장직을 성공적으로 수행하고, 이를 더 큰 정치적 꿈을 이루는 발판으로 삼아야겠다'고 생각하고 행동하는 순간, 실패할 수밖에 없다. 지금 대구가 처한 상황은 300척이 넘는 왜군을 마주한 이순신의 12척 수군보다 더 나을 게 없다. "살려고 하는 자 반드시 죽고, 죽기를 각오하고 싸우는 자 살아남는다"는 이순신 장군의 말씀은 그냥 나온 말이 아니다. 포퓰리즘은 달콤한 독약이다. 변화와 혁신이 고통이고 어려움이라는 사실은 대구시민도 예외가 아니다. 어려움과 고통이 없고 힘들지 않아 행복한 것이 아니라, 이순신 장군과 그의 수군처럼 비록 어렵고 힘들더라도 '마음이 통하는 지도자'와 함께 위기를 극복해 갈 수 있어 행복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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