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부 '3분 목례'보다 실무자 '3시간 읍소'가 효과

입력 2014-08-20 07:26:59

막 오른 '예산 전쟁' 효과적인 기재부 공략법은?

한동수(왼쪽 두 번째) 청송군수가 이달 13일 지역 상수도사업 예산 확보를 위해 기재부 예산실 황순관(왼쪽 세 번째) 고용환경예산과장을 만나 인사하고 있다.
한동수(왼쪽 두 번째) 청송군수가 이달 13일 지역 상수도사업 예산 확보를 위해 기재부 예산실 황순관(왼쪽 세 번째) 고용환경예산과장을 만나 인사하고 있다.

대구경북 공무원들이 앞다퉈 세종청사를 찾는 바람에 기획재정부의 문턱이 닳고 있다. 광역'기초 단체장은 물론 시'도 예산실 직원까지 대거 몰려와 정부 예산 관계자들을 만나려고 혈안이다. 예산심사가 본격적으로 이뤄지고 있는 8월, 휴가철 분위기는 사라진 채 한 푼이라도 더 따내기 위한 '예산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예산을 위해선 지위고하 없다.

권영진 대구시장이 취임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세종시에서 1박을 하며 기재부 전 부서를 둘러본 데 이어 김관용 경상북도지사도 최근 기재부를 찾았다. 김 지사는 권 시장과 달리 조용히 최경환 경제부총리를 만나고 돌아간 것으로 알려졌다. 김'최 두 사람의 인연이 오래돼 "(최 부총리 취임 축하 겸) 안부차 인사하러 들렀다"는 게 관계자들의 전언이지만, 김 지사가 은밀히 '지역 예산 확보에 힘을 실어 달라'고 부탁했다는 후문이다.

지역 기초단체장도 하루가 멀다 하고 기재부를 찾고 있다. 경북의 경우 예산심사가 시작된 지난 6월 말부터 지금까지 기초단체장이 기재부를 방문한 횟수는 모두 12회, 부단체장까지 합치면 29회나 된다.

특히 이달 12일부터 이틀간은 영주 장욱현 시장, 청송 한동수 군수, 성주 김항곤 군수, 영천 김종수 부시장, 군위 심상박 부군수 등 기초단체장급 인사들이 한꺼번에 몰려들어 경북도 세종사무소가 의전을 하는 데 애를 먹기도 했다.

김운호 경북도 세종시사무소장은 "사무실 직원은 두 명뿐인데 의전 대상이 넘쳐날 경우 일부 인사들 안내는 포기해야 할 상황이다. 의전 업무에 과부하가 걸릴 때는 사무실에 전화받을 사람도 없어 가끔 출근하지 않는 것 아니냐는 오해도 산다"고 말했다.

시'도 예산실은 예산 시즌 동안 상주 인력을 급파해 기재부 분위기를 실시간으로 제공받기도 한다. 경북은 김일곤 예산담당실 국비 담당 사무관을 기재부 예산심사가 진행되는 9월 말까지 세종시에 상주시키고 있다. 아직 숙소도 마련되지 않아 세종시와 지역을 출퇴근하면서도 기재부 출근은 빼먹지 않는다. 대구는 정풍영 예산담당관이 수시로 기재부 직원들을 찾아다니는 한편 박남태 예산 담당 사무관이 출퇴근하다시피 하면서 지역 예산 동향 파악에 열심이다.

◆시달리는 기재부

한 푼이라도 더 따내기 위해 기재부 문턱을 수시로 드나드는 사람들과는 반대로 본격적인 예산 시즌 동안 어김없이 넘쳐나는 면담 요청자들 때문에 기재부 직원들은 울상이다. 예산심사만 해도 바쁜 와중에 짬을 내 면담 요청에 응해야 하기 때문이다. 특히 국회 상임위 예산심사가 있는 날이면 며칠 전부터 식사도 거른 채 밤샘작업을 하면서도 찾아오는 이들을 뿌리치지 못한다. 한 기재부 과장은 "동향이나 평소 친분 있는 인사들의 면담 요구를 저버릴라치면 훗일이 걱정된다. 면담 요청자들을 추리고 추려내도 넘쳐나 식사를 거른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고 토로했다.

최근 가장 많은 면담 요청 대상자는 송언석 예산담당관이다. 예산실 총괄자인 예산실장이 공석으로 돼 있는 상태여서 그의 인기는 현재 최고조다. 특히 차기 예산실장 자리 1순위 인물로 꼽히면서 그의 사무실은 항상 문전성시를 이룬다. 송 담당관의 여비서에 따르면 면담 일정은 평균 2분이고 길어야 3분이다. 이마저도 짧은 식사시간 직후 30분 만에 이뤄져 면담 요청자들은 이전 면담시간이 길어지면 오랜 기다림에도 불구하고 발길을 돌려야 한다.

◆예산실 공략 팁

예산 시즌 동안, 기재부 직원들에 대한 접근은 어려워지지만 이들에 대한 공략이 없지만은 않다. 베테랑 간부들이 전하는 공략 팁도 존재한다.

우선 예산심사가 있을 때는 간부급 인사보다 낮은 직위의 인사들을 만나야 한다는 것이다. 고위 인사는 누구나 만나고 싶어하기 때문에 시간을 내기 어렵지만 사무관 이하 직원들은 상황에 따라 시간 내기가 더 편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달 13일 예산실의 한 과장을 만난 한동수 군수의 경우 한 시간 이상 토론하면서 지역 사정을 충분히 전달한 반면 송 담당관을 찾았던 장욱현 시장의 경우 면담을 시작한 지 불과 3분 만에 자리에서 일어나야만 했다.

예산실 인사들을 접촉하기 위해선 국회 심사일도 비켜가야 한다. 예를 들어 국토교통 예산심사가 있는 날에는 이를 담당하는 경제예산과 담당자들을 피하고, 복지나 고용환경 예산 담당자들을 만날 때는 사회예산과 인사들을 피해야 한다는 것이다. 국회 심사일에는 부쩍 예민해져 있는데다 관련 부서 인사들의 시간을 빼기가 여간 어렵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국토교통 예산심사가 있는 날에는 사회예산과 직원들을, 반대로 고용환경 심사가 있는 날에는 경제예산과 직원들은 찾는 것이 현명하다는 조언이다.

예산 시즌이 끝나고 나서도 기재부 발길을 끊어서는 안 된다는 조언도 잊지 말아야 한다. 기재부 공무원들도 사람이기에 자주 보는 사람의 말을 더 많이 들어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기재부 한 부서에서는 십수 년 전부터 '김 아저씨' 이야기가 돌고 있다. 완도군청 소속 한 하급 공무원이었는데 거의 매일 찾아와 1만원도 안 돼 보이는 김을 돌리며 직원들에게 인사했다. 한 6개월쯤 지나자 해당 과에서는 '김 아저씨'란 별명을 붙여줬다. 그해 태풍 피해가 전년도에 비해 현저히 줄어들자 양식장 피해 어망 보조금 수십억원이 남게 됐다. 이를 국고로 환수시키는 방안을 고려하다 환수 시기를 놓쳤다. 환수가 불가능해지자 한 직원이 '김 아저씨한테 드리는 게 어떠냐'고 제안했고, 일부가 동의했다. 그해 완도군은 어망 피해량이 줄어들었음에도 불구하고 피해 어망 지원금은 오히려 전년 대비 20억원가량 늘어난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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