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면 관군이 되고 지면 반군이 된다." 메이지 유신 때부터 일본에서 유행했던 말로, 태평양전쟁 때 필리핀에서 미군 포로 학대 혐의로 전후 처형된 혼마 마사하루(本間雅晴)가 유죄 선고 후 이 말을 뱉어냈다고 한다. 이는 극동국제군사재판(일명 도쿄재판) 등 전범 처벌에 대한 일본 우익의 왜곡된 시각으로 면면히 이어지고 있다. 전범 재판은 '정의의 심판'이 아니라 '승자의 복수'란 것이다.
이런 시각에 '객관성'을 선물해준 인물이 도쿄재판 12명의 판사 중 유일하게 전범 피고인 전원에게 무죄 의견을 낸 인도의 라다비노드 팔(1868~1967)이다. 그의 논거(論據)는 2차대전 추축국(樞軸國)이 패배하기 이전에는 '국가의 주권행사로서 전쟁의 개시와 수행'이 범죄가 아니었으며 따라서 '침략' 개념은 법적으로 정의되지 않은 채 남아있다는 것-아베 일본총리도 비슷한 말을 했다-이었다. 다시 말해 국제법에 있지도 않은 범죄를 처벌할 수는 없다는 얘기다.
그러나 이런 논리는 허울에 불과했다. 그는 처음부터 무죄 의견을 낼 작정이었다. 재판 전 '공명정대한 재판운영을 다짐하는 공동선언문'에 서명하지 않았으며 466일의 공판일 중 109일을 결석, 판사 중 가장 불성실했다. 그가 도쿄재판에 어떤 마음으로 임했는지 가늠케 한다.
그의 무죄 의견은 뼛속까지 '친일'이었던 그의 전력으로 보아 이미 예견된 것이었다. 그는 일본의 대동아공영권에 호응해 일본과 손잡고 영국에 대해 무장투쟁을 벌인 인도 민족주의자 찬드라 보세를 지지하는 등 일본 제국주의를 대놓고 옹호했다. 보세처럼 일본을 백인의 아시아 지배를 종식시킬 희망으로 본 것이다. 결론적으로 팔에게는 일본의 기만적 '대의'만 보이고 일본이 아시아인들에게 강요한 고통은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문제는 그가 이처럼 외눈박이일 뿐만 아니라 국제법 전문가도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팔 판사를 연구한 나카자토 나리아키(中里成章) 도쿄대 명예교수를 인터뷰한 지난주 조선일보 기사에 따르면 팔 판사는 주로 세법 전문가로 활동했으며 도쿄재판에 판사로 참여하면서 국제법을 연구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결국 무자격자란 것인데 이런 인사가 전범재판 판사가 된 것은 인도 당국의 '행정 착오' 때문이었다고 한다. 일본 우익의 헛소리가 이런 실수로 객관의 탈을 쓰게 됐다니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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