忠은 백성을 향해야…이순신 리더십
정치권에 '이순신 신드롬'이 일고 있다.
세월호 참사, 총리 후보자의 거듭된 낙마를 비롯한 인사 참사, 군부대 사고 등 정치'사회적인 격랑 속에서 이를 헤쳐나갈 리더십에 대한 갈망이 영화 '명량'의 이순신 리더십과 오브랩되면서 열풍이 불고 있는 것이다.
영화 명량은 영화진흥위원회 기준으로 이달 13일 1천211만4천489명이 관람했다. 한국 영화 사상 초유로 1천500만 관객을 향한다. 올해 최고 흥행작이었던 애니메이션 '겨울왕국' 기록(1천29만5천483명)을 제쳤다. 그것도 개봉 11일 만이었다.
때는 1597년 정유재란 당시다. 칠천량 해전에서 전멸하다시피 하면서 사기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조선 수군이 12척의 배로 330척의 왜군에 맞서는 내용이다. 이순신 장군은 "저에게는 아직 열두 척의 배가 있습니다"라는 글로 육군에 합류하라는 왕을 설득한다.
◆이순신을 만나러 간 박근혜 대통령
이달 6일 박근혜 대통령이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의 한 영화관을 찾았다. 박 대통령의 동선이 알려지면서 '엠바고'(어느 시점까지 언론보도를 제한하는 것)가 걸렸다. 하지만 소식이 파다해지면서 여의도 치안에 비상이 걸렸을 정도다. 이날 박 대통령은 김동호 문화융성위원장, 배우 안성기 씨, 배우 박정자 씨 등과 함께 자리했다. 그날까지 명량은 700만 관객이 들었다.
그로부터 일주일 뒤인 13일 박 대통령은 전군 주요 지휘관을 소집한 자리에서 '이순신을 배우라'고 일침을 놓았다. 최근 28사단 윤모 일병 폭행 사망사건이 터지고 여기저기 숨어 있던 군 관련 사건이 국민에게 알려지면서다. 군내 적폐, 반인권적 병영문화를 따져 묻던 박 대통령은 "이순신 장군이 적과의 전투에서 선두에 서서 부하에게 용기와 희망을 주었듯, 여러분도 그런 지휘관이 돼달라. 수십 년에 걸쳐 오래 이어져 온 병영문화가 하루아침에 바뀔 수는 없겠지만, 잡초를 뽑아내듯이 끈질기게 악습과 싸워나가야만 그 뿌리를 제거할 수 있다"고 했다.
◆정치인 너도나도 "이순신"
박 대통령이 명량 관람의 테이프를 끊자 여의도 정치권도 앞다퉈 관람 열풍에 가세했다.
13일 박 대통령이 전군 주요 지휘관에게 이순신 장군 이야기를 한 그날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 명량을 보러 영화관을 찾았다. 박 대통령이 명량을 본 상영관과 같은 곳인데다 박 대통령이 앉았던 바로 옆자리에 앉았다.
명량을 본 김 대표는 "전쟁은 싸워서 이겨야 되지만 정치는 싸워서 이기는 게 아니다. 정치는 같이 윈윈(win-win)해야하는데 앞으로 그런 접점을 어떻게 찾아갈 것인가에 대해 고민하겠다"고 했다. 또 김 대표는 "우리 민족의 성웅이신 이순신 장군의 승전 장면이 우리 국민의 마음을 크게 감동시킨 좋은 영화였다. 사즉생의 정신으로 매사에 온몸을 던져서 목숨 걸고 싸우면 이길 수 있다는 교훈을 줬다"고 밝혔다.
야권도 이순신 마케팅에 적극적이다.
새정치민주연합 비상대책위원장직을 수락한 박영선 원내대표는 명량에 나오는 "호남이 없으면 나라가 없다"는 이순신 장군의 말을 차용해 "무당무사(당이 없으면 나도 없다)"라고 했다. 당 재건이라는 절체절명의 임무를 한마디로 표현한 것이다. 또 지난주 의원총회 자리에서 박 원내대표는 "촛불을 밝히고 혼자 앉아서 나랏일 생각에 이르니, 모르는 사이에 눈물이 흘렀다는 이순신 장군의 심정과 우리가 이겨내야 할 시련의 시간과 맞닿아 있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양당의 사령탑 외에도 여의도에선 정치인들이 삼삼오오 명량을 관람하고 있다. 조를 맞춰 영화관을 찾거나 가족과 함께 보는 국회의원도 다수다.
새정치연합 전병헌 전 원내대표는 "영화 명량을 봤다. 말로만 혁신하고 실천과 행동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두려움을 용기로 바꾸지 못한다. 20세기 체형과 생각에 머물러 있는 우리의 체질을 21세기형으로 바꾸는 혁명적 체질개혁이 필요하다"라는 관람평을 트위터에 올렸다.
◆명량의 어떤 점이 인기비결인가
세월호 특별법 처리에서 보여준 여야의 첨예한 대립은 '정치력 부재'를 도마 위에 오르게 했다. 양당 대표의 리더십도 아쉽다. 그래서 정치권에선 이런 '정치의 위기'를 이순신의 리더십에서 배우려는 것 아니겠느냐는 말이 나온다. 정치권에서 이야기하는 이순신의 어록은 이런 것들이다.
"전하, 신에게는 아직 12척의 배가 남아 있사옵니다."
"바다를 버리는 것은 조선을 버리는 것입니다."
"백성이 있어야 나라가 있고, 나라가 있어야 임금이 있는 법이지."
"충(忠)은 임금에 대한 것이 아니라 백성을 향해야 한다."
"살고자 하면 죽을 것이요, 죽고자 하면 반드시 살 것이다."
정가에서는 충무공의 '희생적 리더십'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정치는 대화와 타협, 양보와 협상의 종합예술인데 그런 면목을 보여주는 지도자가 없다고 우려한다. 정치인의 '이순신 배우기'가 배우기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실천으로 이어지길 바라는 국민의 마음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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