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력 약해도 느낌 강하면 기획전 "10년 고집"
갤러리전이 개관 10주년을 맞았다. 2004년 청도군 각북면에 전시장을 오픈한 갤러리전은 청도에 갤러리 문화를 정착시키는 데 선도적인 역할을 했다. 갤러리전의 뒤를 이어 후발 주자들이 속속 합류하면서 청도에 갤러리 문화가 꽃피었다. 현재 청도는 봉산문화거리와 함께 지역 미술 발전을 견인하는 한 축을 담당하고 있다. 청도에 문화의 향기를 전파한 갤러리전은 3년 전 청도 생활을 마감하고 수성구 이천동에 새 둥지를 마련했다. 10년 역사를 뒤로 하고 새로운 변신을 준비 중인 갤러리전의 전병화 대표를 만났다.
-10년 동안 갤러리를 운영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래서 소감이 남다를 것으로 생각된다.
▶시간이 어떻게 흘러갔는지 모를 정도로 행복했다. 사람을 많이 상대해야 하는 일이었지만 스트레스를 받은 적은 없다. 인생에 멘토가 될 만한 사람들과 좋은 작가들을 많이 만나 인생이 더욱 충만해지는 계기가 됐다. 사실 갤러리는 우연하게 시작했다. 대학에서 동양화를 전공했기 때문에 작업실로 사용하려고 이명희 판소리명창이 소리를 공부하던 공간을 구입했다. 그러다 잘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고민한 끝에 전공을 살려 갤러리 운영을 하게 됐다. 돈 때문이 아니라 좋아하는 일을 한 덕분에 10년 동안 즐겁게 갤러리를 운영할 수 있었다.
-지난 세월을 돌아보면 많은 일이 주마등처럼 지나갈 것으로 생각된다. 갤러리 운영의 성과와 아쉬운 점을 정리해 달라.
▶작가들에게 전시 기회를 제공하고 시민들에게 좋은 전시를 많이 소개해 준 것이 가장 보람된 일이다. 특히 2009년 시작한 신진작가프로젝트를 통해 젊은 작가들이 관람객들과 소통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해 준 것은 의미가 있다. 미술계 선배로 미술 발전에 도움을 준 것 같아 기쁘다. 반면 지역적 한계로 좋은 전시를 보다 많이 보여주지 못한 것은 아쉬운 대목이다. 또 2006, 2007년 미술시장은 유례 없는 활황을 맞이했다. 이때 미술 작품을 향유의 대상으로 보지 않고 돈으로 보는 인식이 생겼고 이것이 부메랑이 되어 돌아와 미술계를 힘들게 하고 있다. 미술시장의 방향성이 잘못 설정된 것 같아 안타깝다.
-그동안 많은 기획전을 통해 좋은 작가와 작품을 시민들에게 소개했다. 작가는 어떤 기준으로 선정했나.
▶흔히 작가를 평가할 때 어느 대학을 나왔는지, 개인전은 어느 화랑에서 했는지를 중시한다. 지금까지 106번의 기획전을 통해 200명이 넘는 작가를 초대했지만 한 번도 학력과 경력을 보지 않았다. 작품이 마음에 들면 학력과 경력에 상관없이 초대를 했다. 그러다 보니 미술을 전공하지 않은 작가들도 있었다. (전 대표는 작품이 마음에 와 닿으면 남이 뭐라고 해도 작가를 초대해 기획전을 열었다고 했다. 이는 전 대표가 이력보다 자신의 직관을 더 믿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전 대표는 남들과 다른 잣대로 작가들을 선정했지만 결과적으로 후회 없는 선택을 했다고 자부했다. "주관성이 지배하는 미술에서 획일적인 가치와 잣대로 작가와 작품을 평가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그녀의 말에서 갤러리 대표이기 전에 작가의 한 사람으로 미술을 대하는 진정성이 느껴졌다.)
-7년이면 갤러리가 안정기에 접어들었을 때이다. 그런데 돌연 대구로 갤러리를 이전했다. 이유가 무엇인가.
▶개인적으로는 청도가 너무 좋았다. 7년 동안 매일 헐티재를 넘나들었지만 갈 때마다 새롭게 느껴질 정도였다. 하지만 갤러리를 방문하는 많은 사람이 불편을 호소했다. 뭔가 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던 시기에 지인이 건물을 지은 뒤 1층에서 갤러리를 운영해 달라는 제안을 해서 이전하게 했다. 청도와 대구 모두 나름의 장점을 갖고 있어 어디가 더 좋다는 말은 하기 어렵다. 갤러리를 어떻게 운영하느냐가 더 중요한 요소다.
-안식년(2015년)을 가질 계획이라고 들었다. 안식년 동안 무엇을 할 생각인가.
▶향후 10년, 20년을 준비하기 위해 안식년을 갖기로 했다. 그래서 기획전도 올해까지만 잡아 놓았다. 안식년 동안 재충전을 하면서 갤러리 운영 방향을 새롭게 모색할 생각이다. 10년 전에 비해 미술 환경이 많이 변했다. 미술시장이 극도로 침체되어 있어 지금의 시스템으로는 한계가 있다.
작가들과 시민들이 좀 더 쉽게 소통할 수 있도록 갤러리 운영 방향을 재설정할 생각이다. 그중 하나가 빵을 사듯 쉽게 작품을 구매할 수 있는 아트베이커리다. 무빙갤러리도 구상하는 계획 중 하나다. 전시 콘셉트에 맞는 공간을 찾아 전시를 여는 것이 무빙갤러리의 핵심 내용이다. 한마디로 고정된 전시 공간(갤러리)을 벗어나 좀 더 시민들 곁으로 다가갈 수 있는 형태다. (전 대표는 지금 머리가 복잡하다. 기존에 해 오던 관행에서 벗어나 새 틀을 짜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전 대표는 아예 갤러리를 운영하지 않고 기획자로 변신하는 방안도 생각 중이라고 했다. 이는 다양한 가능성을 열어 놓고 향후 거취를 고심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현재 갤러리전의 새로운 운영 방안은 정해진 것이 없다. 하지만 한가지 분명한 점은 어떤 형태가 되던 안식년 이후 갤러리전의 모습은 많이 변해 있을 것이다.)
-갤러리 운영에 매달리다 보니 작가로의 삶은 소홀히 한 것 같다. 작품 활동 계획은 없나.
▶그동안 작가로서 온전한 삶은 살지 못했다. 안식년 이후 본격적으로 작품 활동도 할 생각이다. 이는 작가로 성공하기보다 내면에 쌓여 있는 것을 표현하고 싶은 작가적 열망 때문이다. 수많은 국내외 아트페어를 다니면서 전통을 현대적으로 계승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절실히 느꼈다. 그동안 시간 날 때마다 서양의 재료(아크릴 물감)를 사용해 동양적 정신을 담아내는 작업을 했다. 앞으로의 작업 형태도 이 같은 연장 선상에서 이루어질 것이다. (전 대표는 갤러리 운영 경험이 작품 활동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했다. 좋은 작가와 작품을 많이 접한 것이 보이지 않는 그림 공부로 이어져 내면에 축적되었기 때문이다. 전 대표의 명함에는 갤러리 대표와 화가라는 단어가 나란히 새겨져 있다. 한시라도 화가라는 정체성의 끈을 놓지 않으려는 전 대표의 의지를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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