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의 멘토] <5>박보생 김천시장-어머니 전재임 여사

입력 2014-08-04 07:05:05

"술 취한 아들 바래다 준 시장님께 빗자루 세례 날렸지"

박보생 김천시장과 인생의 멘토인 어머니 전재임 여사가 고생했던 옛 이야기를 하며 환하게 웃고 있다.
박보생 김천시장과 인생의 멘토인 어머니 전재임 여사가 고생했던 옛 이야기를 하며 환하게 웃고 있다.

박보생(63) 김천시장은 1969년 고등학교 졸업과 함께 5급-을(현 9급) 공무원 공채 1기로 공직생활을 시작해 3선 시장에 당선된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화려한 학력도 경력도 없지만 한결같은 노력과 부지런함으로 자치행정국장 등 요직을 거쳤다. 이후 명예퇴직을 한 뒤 2006년 민선 김천시장에 도전해 올해 3선까지 거침없는 당선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박 시장의 승승장구는 단순히 관운이 좋다는 말로는 풀어낼 수 없다. 특유의 부지런함과 친화력을 알아야 이해가 가능하다. 공직 선배와 학창 시절의 은사 등 많은 멘토들이 지금의 그를 만들었다. 그러나 인생의 최고 멘토로 여기는 이는 어머니 전재임(88) 여사다. "우리 어머니는 특별합니다. 23세에 혼자 돼 아들 하나만을 믿고 키워 오신 분입니다." 박 시장의 어머니를 만나며 그의 부지런함과 근검절약, 그리고 그 배경이 된 효에 대해 알 수 있었다.

◆직장 상사를 빗자루로 두들겼던 어머니

전재임 여사는 독자인 박 시장이 술 마시고 늦은 시간에 귀가하는 것을 무척 싫어했다. 박 시장은 말단 직원이었던 자신을 집까지 바래다주러 온 고정환 전 김천시장에게 빗자루를 휘두른 어머니를 잊지 못한다.

"1985년 겨울에 있었던 일입니다. 당시 고 전 시장님 댁에서 업무와 관련해 자리를 한 후 술자리가 길어졌습니다. 술이 약해 벽에 기대고 있었더니 고 전 시장님이 함께 차를 타고 집에까지 데려다 주셨습니다. 대문 밖에서 기다리다 화가 난 어머니는 술 마시고 늦게 다닌다고 빗자루를 휘두르셨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차에서 내리는 고 전 시장님에게도 빗자루 세례를 퍼부었다는 것입니다. '이 시간까지 술 처먹고 다니는 시장이 어디 있느냐'며 막무가내로 빗자루를 휘둘렀죠. 혼비백산한 고 전 시장님은 서둘러 자리를 피했고요."

지금은 웃으며 이야기할 수 있지만 곤란했던 당시를 회고하면 지금도 등줄기가 서늘해질 정도다. "내일 아침 시장님께 뭐라고 말해야 할지 고민하느라 술이 다 깼죠. 걱정하느라 잠을 설친 후 다음날 아침 찾아가니 '그런 어머니가 있는 것이 좋은 것이다. 자식 걱정 안 하는 어머니가 어디 있느냐'며 아무 일 없던 것처럼 넘어가 주셔서 한숨 돌렸죠."

전 여사는 "설마 시장님이 그 늦은 시간에 함께 왔을까. 거짓말하는 줄 알았다"고 웃음 지었다.

박 시장은 "어머니가 젊은 날에 혼자된 후 자식 하나 보고 생활하고 있으니 다른 데 가서 딴 짓을 할 수 없었다"고 했다. 어머니의 영향이었을까, 정치인으로는 드물게 술자리를 즐기지 않는 편이다.

◆효-출필곡 반필면(出必告反必面)

박보생 김천시장은 아버지의 얼굴을 기억하지 못한다. 박 시장은 6'25전쟁이 일어난 해에 태어났다. 부친은 전쟁이 일어나자 입대했고, 가족들에게 두 번 다시 연락 못 한 채 결국 고향 땅을 밟지 못했다. 할머니와 어머니가 힘든 농사일을 하며 4대 독자인 그를 키웠다. 어머니 전 여사는 행여 아버지의 빈자리가 보일세라 꼼꼼하게 챙겨준 분이다. 그래서 효자일 수밖에 없다.

매일 아침에 출근하며 어머니에게 인사를 한 후 일정을 시작하고, 퇴근 후에도 반드시 어머니 얼굴을 뵙고 하루를 마감한다. "평생 동안 아침에 인사드린 뒤 출근하고 저녁에 돌아오면 얼굴을 뵙고 인사드리는 것을 실천해 왔습니다. 다른 일정으로 늦게 되면 전화라도 드려야지 그렇지 않으면 어머니가 전화를 먼저 걸어옵니다."

중국의 고서 예기에 나오는 '출필곡 반필면'(出必告反必面)의 고사가 생각나는 대목이다. "빡빡한 일정으로 늦는다고 전화를 드려도 주무시는 법이 없습니다." 박 시장은 "집에 도착하면 어머니가 항상 불을 켜두고 기다리고 계신다"고 했다. 집에 도착해 어머니 방문을 열고 무사히 귀가했음을 알린 뒤에야 비로소 불을 끄고 주무신다고 했다. 요즘은 분가해 따로 살고 있는 자녀들도 저녁에 귀가를 하면 할머니께 전화를 한다. 평생 아버지가 했던 것을 따라하는 셈이다.

◆어머니에게 배운 부지런함과 근검절약

박 시장은 부지런하다. 농사철인 요즘 기상 시간은 새벽 4시 전후다. 2006년 민선 4기 시장이 되면서 대부분 농사를 남에게 맡기고도 남아있는 9천900여㎡(3천여 평)의 농사를 직접 짓는다.

"초등학교 다닐 때부터 지게를 지고 다녔습니다. 어릴 때 덩치가 큰 편도 아니어서 옆집에서 빌린 지게를 지면 땅에 지게 다리가 질질 끌렸습니다.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지게를 지고 보리농사일을 도왔습니다. 당시 소가 없어서 일일이 사람 손으로 모든 농사일을 해야 했죠."

농사에 필요한 도구를 어머니 전 여사는 머리에 이고, 박 시장은 지게에 지고 들로 일하러 다녔다. 학교 다닐 때도 새벽에 일어나 일하고 학교 갔다 와서도 일을 해야 했다.

"우리 논은 천수답이었습니다. 별다른 수리시설이 없었던 시절, 비가 오면 밤에도 논에 물을 대기 위해 나가야 했지요. 비가 많이 와서 물살이 거세면 물길을 만들기 위해 어머니가 도랑에 누워 몸으로 물을 막은 적도 있었습니다." 어머니가 몸으로 물을 막으면 어린 그는 논으로 물을 댔다.

농사일은 공직에 입문한 이후에도 변함없이 이어졌다. "기계도 없고 사람도 없는 상황에서 안 하고는 안됐습니다. 새벽에 일어나 출근 전에 매일 농사일을 했습니다. 남자가 해야 할 일은 새벽에 모두 마친 뒤에 출근했습니다."

어머니는 이렇듯 평생 부지런함을 물려줬다. 민선시장에 취임한 후에도 새벽 농사일을 마친 후 출근하면서 시내 곳곳을 둘러본다. 토'일요일도 예외는 아니다. 주말에도 한 번쯤 시청에 들러 현안을 챙긴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어머니와 함께 농사일을 하면서 몸에 붙은 부지런함 덕분이다.

농사일을 하러 갈 때면 20년 된 1995년식 낡은 코란도 차량을 탄다. 그를 가까이서 지켜본 이들은 가끔씩 낡고 오래된 양복들을 보고 놀라곤 한다. 이처럼 그의 주변에는 낡고 오래된 물건들이 많다. 인생의 멘토인 어머니께 배운 근검절약이 고스란히 몸에 배어 있기 때문이다.

멘토인 어머니가 물려준 절약하는 습관은 시정에도 그대로 반영된다. 재임 기간 중 김천시는 반드시 필요한 사업에만 투자를 해왔다. 치적을 남기기 위한 전시성 사업보다는 김천의 미래에 대한 투자에 전념해왔다. 이런 시정 운영은 김천시가 다른 지자체에 비해 부채가 극히 낮은 건전한 재정 운영이란 결과를 가져왔다.

멘토 전 여사는 아들에게 결코 무언가를 하라고 또는 해달라고 하지 않는다. 다만 평생 몸에 익은 근면과 검소함으로 매일 새벽 밭일을 하러 나간다. 어스름한 새벽, 함께 포도밭은 일구는 모자의 뒷모습은 멘토와 멘티 사이를 넘어 동반자로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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