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마을'이 화두다. 경제는 물론 문화, 관광, 행정에 이르기까지 '마을'이 그 중심에 있다. 우리네 일상의 삶이 있는 곳, 하지만 그 가치나 존재감이 쉽게 잊히는 마을, 그곳이 새로운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다. 한 때 살던 마을로부터 멀리 떠나 중앙으로 가는 것이 출세요 삶의 성취라 여겼던 우리들의 관심이 다시 마을로 귀환하고 있다.
'신은 마을을 만들었고 인간은 도시를 만들었다', '도시는 얼굴을 갖고 마을은 영혼을 갖는다'는 격언이 있다. 영혼 없는 근대 도시의 비정함을 은유한 말이다. 하지만 중세 말기, 봉건 영주의 권력으로부터 벗어나 자유도시를 구현하고자 한 서구 도시민들의 이야기는 지금 우리에게 각별하다. 봉건의 금제에서 풀려난 이 자유도시에서 그들은 자신들의 이데올로기(자유)에 따라 새로운 도시를 구상했다. 우선 그들은 성 밖 사람들을 불러들여 성벽의 경계를 허물었다. 그리고 자유로운 길을 내고 그 위에 역사문화와 일상이 공존하는 도시를 만들었다. 시민들의 열정과 자유로운 정신이 도시의 재료가 되었으며, 사람들의 공간적 이해를 근거로 도시를 만들었다.
이 도시를 우리는 '영혼이 있는 도시'라고 부른다. 사람들의 삶의 역사와 영혼으로 만들어진 도시이기 때문이다. 인류 최초의 도시가 메소포타미아에서 만들어진 이후 수천 년 동안, 인류의 절반 이상은 도시에서 태어나 도시에서 살다가 도시에서 죽었다. 도시는 여전히 그 깊은 곳에서 인류의 영혼을 빚어내는 거푸집으로 존재하고 있었던 것이다.
도시에도 영혼이 있다. 도시 또한 사람들의 정신과 감정, 삶의 더께가 쌓이는 생활의 거처이다. 곁에서 보면, 서울과 런던, 대구 시민들의 일상은 닮아 있다. 하지만 그 도시의 정신과 역사, 문화적인 표정과 시민들의 내면은 다르다. 특정한 도시의 공간과 그 공간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내면에는 그들만의 어떤 고갱이를 간직하고 있다. 그것이 서울을 서울로, 런던을 런던으로, 대구를 대구로 만든다. 이를 우리는 그 도시의 영혼이라 부른다.
다시 말해 도시는 신이 아닌 인간들이 만드는 영혼의 세계이다. 도시의 거리와 골목, 광장과 시장, 지하철, 아파트와 기차역, 사람들의 모든 발걸음 속에는 그 도시의 영혼이 깃들어 있다. 어떤 도시를 여행할 때, 우리는 흔히 그 도시의 화가와 음악가, 혹은 작가를 떠올린다. 즉 어떤 도시를 방문하는 일은 도시의 영혼, 즉 그 도시 사람들의 역사와 문화, 삶의 방식을 만나는 일이 된다.
최근 전국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도시 재생' 혹은 '마을 프로젝트'는 그 도시의 영혼을 만나는 일이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특별한 기획이 필요하다. 도시의 역사와 삶의 시'공간을 재구성하는 일이다. 도시의 영혼을 캐는 도시 프로젝트가 그것이다.
오래된 도시는 무수한 사람들의 흔적으로 가득하다. 그 흔적들은 때로 문학적 레퍼토리나 예술적 영감으로 이어진다. 대구의 골목을 거닐다 문득 만나는 건물 하나, 시장 한 구석에서 우리는 도시의 레퍼토리와 시간의 무늬를 만날 수 있다. 도시를 구성하는 여러 겹의 이야기와 그 속에 스며든 삶의 켜들이 그 도시의 얼굴이 되고 흔적이 되며 무늬로 남아 있다.
대구는 당연하면서도 놀랍게도 도시의 역사적 진행 과정을 고스란히 간직한 곳이다. 대구의 내부를 깊이 천착한 건축학자나 문화사학자들의 즐거운 비명은 이를 증언한다. 한국의 근대를 생각해 보면, 도시의 흔적과 생활사의 변화를 고스란히 지킬 수 있었다는 것은 일종의 기적이자 행운이다. 그리고 그 생활의 흔적을 특별하게 바라본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 또한 운이라면 운이다. 이제 '도시 재생'이나 '마을 사업'은 그냥 지원 사업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 도시의 영혼과 역사 문화, 사람을 만나는 즐거운 마을로의 귀환인 것이다.
박승희/영남대 교수·국어국문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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