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늦으면 항의·욕설 힘 빠져요…특수고용·비정규직 신분 불안도

입력 2014-08-02 07:18:00

배달의 기수 '배달맨'…이럴 땐 힘들어요

매일 아침 사무실로 녹즙을 배달하는 녹즙배달원 김모 씨. 이화섭 기자
매일 아침 사무실로 녹즙을 배달하는 녹즙배달원 김모 씨. 이화섭 기자
물건을 배달하는 택배 기사. 매일신문 DB
물건을 배달하는 택배 기사. 매일신문 DB
대구 북구 서변동의 한 아파트에서 우편물을 우편함에 넣고 있는 재택집배원 조정숙 씨. 이화섭 기자
대구 북구 서변동의 한 아파트에서 우편물을 우편함에 넣고 있는 재택집배원 조정숙 씨. 이화섭 기자

길 위에는 여러 모습의 배달원들이 거리를 누비고 있다. 헬멧을 눌러 쓴 채 오토바이를 타고 도로를 누비는 퀵서비스 배달원과 중국집 배달원, 가방을 둘러메고 빌딩을 오르내리는 녹즙 배달원, 택배회사 로고가 큼직하게 박힌 1.5t 컨테이너 차량까지 우리는 무수히 많은 '배달의 기수'들을 보고 만난다. 하지만 우리는 퀵서비스 배달원들이 이 더운 날 헬멧 속에서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 알려고 한 적 없다. 또 택배 컨테이너 차량 안에서 택배 기사들이 무슨 상념에 잠겨 있는지 헤아리려 한 적도 없다. 요구르트나 녹즙을 배달하는 아주머니의 미소 속에 숨은 피로를 발견하는 사람은 더욱 드물다. 그래서 택배 차량 속, 오토바이 헬멧 속, 미소 속에 숨어 있는 배달인들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시간'욕설'날씨와의 싸움

약령시 인근에서 한약재와 달인 한약 팩을 배달하는 박주현(59) 씨는 얼마 전 한약 배달을 나갔다가 황당한 일을 겪었다. 그날따라 일이 한꺼번에 몰린 탓에 예상 도착시간보다 조금 늦게 배달할 집에 도착하게 됐다. 그런데 한약을 받은 손님이 다짜고짜 짜증을 내며 욕설을 하더라는 것이다. 박 씨는 "'뭐하다가 늦었냐'느니, '혹시 한약에 독을 탄 건 아니냐'느니 하는 황당한 소리와 육두문자를 그 자리에 서서 고스란히 들어야 했다'며 "고객 중 워낙 환자인 분이 많다 보니 예민할 수 있다는 점도 이해는 하지만 이런 손님 만나면 정말 인간적으로 너무하다는 생각도 든다"고 말했다.

배달인들은 매일이 시간과의 싸움이다. 시간과의 싸움에서 패하면 그날 수입이 사라지거나 줄어드는 타격도 있지만 고객의 항의를 피할 수 없다. 항의와 욕설을 듣다 보면 마음의 상처가 된다. 박승환(69) 매일신문 종로지국장은 "오후 4시 전까지는 무조건 신문 배달을 완료하려 하는데 조금이라도 늦으면 지국 전화기에 불이 난다"며 "'자꾸 늦으면 신문 끊겠다'는 손님을 달래는 것도 일"이라고 말했다.

요즘처럼 더운 날은 정말 힘겹다. 특히 배달장소가 엘리베이터가 없는 건물이라면 각오를 단단히 해야 한다. 녹즙을 배달하는 김순남(50) 씨는 "녹즙 팩이 든 가방을 들고 엘리베이터가 없는 건물 꼭대기층까지 올라갔다 오면 시원한 날씨에도 땀이 주르륵 흐른다"고 말했다. 비나 눈이 오는 날은 최악이다. 몸이 젖는 것은 둘째 치고 오토바이를 몰고 가는 경우 사고가 날 가능성도 크기 때문이다. 최상열(49) 매일신문 만촌3동지국장은 "눈 오는 날 배달가다가 오토바이가 넘어지기라도 하면 정말이지 오토바이를 버리고 가고 싶을 정도"라고 말했다. 날씨를 견디다 보니 건강도 잘 못 챙긴다. 중국 음식을 배달하는 김용준(34) 씨는 "여름에는 헬멧 쓰는 것만 참고 견디면 되는데 비 오는 날이나 겨울날에는 감기를 달고 산다"며 "그래도 배달을 멈출 수는 없어 너무 추운 날은 마스크로 버틴다"고 말했다.

◆쉬지도 못하고 대우도 열악

배달 일이 가장 힘든 점 중 하나가 '쉴 틈이 없다'는 점이다. 최상열 지국장은 "신문은 배달이 멈춰지면 안 되기 때문에 상을 당해도 일을 하지 않을 수 없다"며 "이 때문에 인간적으로 힘들 때가 많다"고 말했다. 배달인들은 자기 몸이 아파도 제대로 쉬지 못하고 배달에 나서야 할 때가 많다.

이처럼 제대로 쉬지도 못하고 뼈 빠지게 일해도 처우는 대체로 열악하다. 특히 택배 기사와 같이 '특수고용직' 형태의 배달인들은 노동자로서의 권리 찾기가 쉽지 않은 경우가 많다. 특수고용직 형태의 경우 대부분 사업자등록을 낸 개인사업자 지위에서 기업과 계약을 맺어 일하게 된다. 그렇다 보니 노동자 지위가 아닌 사업자 지위로 인정돼 노동3권이나 4대 보험의 적용을 받지 못한다. 북대구우체국의 재택집배원으로 일하는 조정숙(46) 씨가 그 대표적인 경우다.

조 씨는 2003년부터 지금까지 북대구우체국의 재택집배원으로 일하고 있다. 재택집배원은 자신의 집에서 편지나 통상우편물을 거주지 주변 가정에 배달하는 비정규직 집배원이다. 2002년 집배원들의 우편물 배달 부하를 줄이기 위해 도입됐지만 통상우편물의 감소로 가장 먼저 고용이 불안해진 인력이기도 하다. 우편물 분류와 배달업무 등 정규직 집배원과 똑같은 일을 하고 있지만 개인사업자 등록을 통한 특수고용직이라는 불안한 신분과 시급 약 5천400원의 최저임금보다 조금 더 나오는 저임금으로 일하고 있다. 조 씨는 올해 초 '계약해지예고통보서'를 받았다. 다행히 우체국 측이 '계약해지 1개월 전 확정통보를 해 주겠다'는 약속을 지키지 않은 것 때문에 계약해지를 당하지는 않았지만 '앞으로 이 일을 못 할 수 있다'는 사실에 불안감에 시달리고 있다. 조 씨는 "대부분 고객은 집배원 중에도 비정규직이 있다는 사실을 모른다"며 "대부분의 배달인력이 나와 같은 고용불안을 겪고 있고 이 부분이 잘 알려지지 않은 탓에 힘겨워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말했다.

◆미소 한 번, 물 한잔에 시름 잊어

하루하루 힘든 배달일이지만 배달물품을 받는 손님이 따스하게 대해주면 고단함은 눈 녹듯이 사라진다. 매일신문 만촌3동지국 배달원 강형묵(32) 씨는 "신문을 받으시는 분들이 '고맙다'고 말해주면 다시 힘을 내서 열심히 배달하러 다닌다"고 말했다. 배달을 위해 무거운 물건을 이고지고 올라간 수고를 알아주는 손님을 만나면 더욱 기분이 좋다. 중국집 배달원 김용준 씨는 "그릇을 깨끗이 비우고 아파트 1층 입구에 내놓아 주시는 손님을 만나면 배달하는 사람의 수고를 알고 덜어주시는 것 같아 감사함을 느낀다"고 말했다.

매일같이 배달을 다니다 보면 배달받는 손님과 친해지는 경우도 있다. 녹즙을 배달하는 정기자 씨는 "배달을 다니는 사무실 중 '힘들지 않느냐' '그래도 일찍 일어나 일할 수 있는 건 행복이다'라며 힘을 주시는 손님이 계시는 데 마치 친정아버지가 힘든 나를 위로해주는 듯한 고마움을 느꼈다"며 "또 '녹즙 마시고 건강해졌다'는 말을 들을 때마다 내가 하는 일에 대한 자부심을 느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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