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걷거나 버스를 타고 가다 보면 대구은행 본점 서쪽 외벽에 '꿈꾸세요. 꿈을 꿀 수 있다면 실행하는 것 역시 가능합니다'라는 노란 별 그림의 시그널이 총총히 떠 있다. 승용차를 타고 가면 잘 보이지 않지만 걷거나 버스를 타고 가는 사람들에겐 그 글귀가 눈에 별처럼 반짝이며 들어온다. 누군가의 깊이 있는 발상이 회색빛 삭막한 도시를 밝게 비추고 있는 것이다. 주기적으로 바뀌는 이 시그널은 주로 희망을 심어주는 시 몇 줄이지만, 그 글을 대하노라면 삼복더위에 마시는 청량음료처럼 정신이 맑아 온다고 주위의 주민들은 이야기한다.
금융기관에서 고객을 위한 문화 서비스가 참으로 다양하다. 우리은행에서는 '우리는 모두 무엇인가가 되어'라는 시 111선을 담은 시집을 출간하여 은행을 찾는 고객들에게 선사하고 있다. "삶이 힘이 들거나 어려움에 처했을 때 무심코 펴든 시 한 구절에서 따뜻한 위안을 받을 수만 있다면" 이라고 책 머리말에 쓰여 있다. 그렇다. 필자 역시도 생활이 가장 어두울 때 시를 읽고 쓰기 시작했다.
우리는 산책을 하거나 여행길에서 스쳐 지나며 읽었던 시 몇 줄이나 경문들이 잊히지 않고 문득문득 되살아날 때가 있다. 어느 사찰에 붙여져 있던 '자식에게 늘 부모의 자랑거리가 되라 하지 말고 부모가 먼저 자식의 자랑이 되어야 한다.' 자식을 가진 부모로서 정신이 번쩍 들었다. 또한 청도 운문사 솔바람 길을 솔바람 따라 슬슬 걸어가다 보면 '전쟁터에서 싸워 백만 인을 이기는 것보다 자기 자신을 이기는 사람이 가장 뛰어난 승리자다'란 글귀를 만날 수가 있다. 이 법구경이 너무나 공감이 되어 그 글귀 앞에 소나무 한 그루로 푸르게, 오래 생각 없이 서 있었다.
며칠 전 기행을 떠났던 천년고찰 장안사 올라가는 길, 숨 턱턱 막혀 꼭 한 번은 쉬었다 가야만 하는 산 곳곳에 시화가 설치되어 있어 함께 감상하며 거닐던 지인들의 가슴이 오랫동안 촉촉했음을 말 안 해도 서로의 눈빛으로 교감할 수가 있었다.
모처럼/ 지는 꽃 손에 받아/ 사방을 둘러본다// 지척엔 아무리 봐도/놓아줄 손이 없어//그 문전(門前)/닿기도 전에 /이 꽃잎 다 시들겠다/ -김상옥의 시
참으로 정제된 시에 시인의 은은한 마음까지 엿볼 수가 있다. 지는 꽃잎에 대한 안타까움과 그 꽃잎을 전해줄 '문전'을 마음속에 지니고 있는 그야말로 고요한 향이 내면에 가득한 사람이란 걸 단번에 알아차릴 수가 있다.
사람마다 한 권의 경전이 있는데 그것은 종이나 활자로 된 게 아니라 펼쳐보아도 한 글자 없지만 항상 환한 빛을 발하고 있네. -무더운 여름 밤, 오늘따라 선가(禪家)에 전해져 오는 이 글이 내게 다시 한 번 깊이 읽어라 들추네.
박숙이(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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