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기 전에 악기 하나는… 큰맘 먹고 생일 때 '득템'
"취미가 뭐예요?"
질문은 쉬운데 답하기 어렵다. 노동 시간이 긴 대한민국 직장인들에게 특히 더 어려운 질문이다. 취미가 '숨쉬기 운동'이라는 우스갯소리가 괜히 나온 게 아니다. 취업준비생들이 이력서를 쓸 때 한참 머뭇거리는 곳도 토익 점수란이 아니라 취미란이다. 이력서 빈칸을 채우려고 취미를 만드는 사람들도 있어 취미마저 스펙이 돼 버리는 요즘이다.
취미는 삶의 여유다. 여유가 없으면 인생을 즐길 수 없다. 바쁘기로 둘째가라면 서러운 직업이 '기자' 아니었던가. 그래서 본지 기자들이 취재를 핑계 삼아 '취미 만들기'에 직접 도전해봤다. 네 줄 악기인 우쿨렐레, 정열의 춤인 살사, 손으로 하는 예술인 가죽 공예와 목공까지 다양한 분야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시작이 반이라고 했다. 기자들도 했는데 독자들이라고 못할 이유가 없다. 취미가 없어 삶이 지루하게 느껴졌던 이들이 있다면 이번 기회에 용기를 내 제대로 된 취미 하나 만들어보면 어떨까?
◆죽기 전에 악기 하나는…
나는 한때 평생 악기 연주는 못 할 것이라고 체념했었다. 초등학교 2학년 때였다. 피아노학원을 1년 넘게 다녀도 검은 건반 위로 손가락이 올라가는 악보만 보면 무서웠다. 선생님은 틀릴 때마다 손등을 플라스틱 자로 때렸다. 피아노는 재미도 없었고, 재능도 없었다. 악기와 인연은 그렇게 끝난 줄 알았다.
올해 초 생일을 기념하며 우쿨렐레를 샀다. 죽기 전에 악기 하나는 꼭 연주하고 싶었다. 주변 사람들은 "악기 사이즈가 너한테 딱"이라며 구매를 부추겼다. 나의 스승은 '유튜브 (youtube) 동영상'이었다. 따로 배울 시간이 없어 동영상 무료 강좌를 들으며 독학했고, 연주 실력이 무르익었다고 스스로 생각했다. 그것은 착각이었다. 고작 코드 6개 잡을 수 있는데 우쿨렐레를 메고 해외 출장길에 나섰다가 술자리도 아닌 공식적인 자리에서 연주를 권유받았다. 그때 연주한 곡은 십센치의 '사랑은 은하수 다방'에서였다. 내 손가락과 목소리는 떨렸고, 외국인들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 흔한 팝송 하나 준비하지 못했다. 나의 우쿨렐레 연주는 "이제 됐네"라는 관중의 헛기침 소리와 함께 멈췄다. 두 번째 '악기 트라우마'였다.
◆자세와 타법이 가장 중요
트라우마를 취미로 승화시킬 타이밍이 왔다. 이달 12일 오후 우쿨렐레를 등에 메고 대구 동성로의 한 커피숍을 찾았다. 우쿨렐레 동호회인 '네 줄의 행복'이 매주 토요일 이곳에서 모임을 하기 때문이다. 네이버 카페인 '우쿨렐레 속 행복'에서 출발한 모임이 오프라인 정기 모임으로 이어졌고, 이날도 회원 20여 명이 우쿨렐레 삼매경에 빠져 있었다.
기자의 스승은 우쿨렐레 경력 1년 4개월차인 신재웅(29) 씨였다. 간단한 질문이 오갔다.
"어디서 배우셨나요? (스승님)" "집에서요. (기자)"
"누구한테 배우셨나요? (스승님)" "유튜브 보고요. (기자)"
스승님은 기자의 답변을 듣고 '기본'부터 가르쳐야겠다는 결심을 세운 듯했다. 악기를 잡는 자세부터 다시 배웠다. 우쿨렐레는 팔 대신 손목을 써야 한다. 항상 악기에 끈을 달아 목에 메고 연주했던 기자에게 "줄을 한번 빼고 악기를 잡아보라"고 권했다. "팔을 써서 줄을 치면 악기가 같이 움직여요. '아기를 안듯이' 우쿨렐레를 꼭 안고 손목으로 쳐 보세요." 스승님의 시범을 보고 따라했는데, 엉거주춤한 자세가 연출됐다. "보세요. 계속 사운드 홀(현악기의 앞판에 뚫린 구멍)을 치고 있죠? 이 부분을 치면 소리가 예쁘게 안 나요." 나의 우쿨렐레 소리가 맑지 않았던 이유를 드디어 알게 된 순간이었다.
우쿨렐레를 배울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스트로크 (stroke), 즉 타법이라고 스승님은 강조하셨다. 기타는 피크를 쓸 때도 있지만 우쿨렐레는 손톱이 피크 역할을 한다. 이날 대표 타법을 배웠다. '칼립소'는 즐겁고 경쾌한 곡에 잘 어울리는 4분의 4박자 타법으로 박자를 잘 못 타면 손가락이 꼬이기 십상이다.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나의 손놀림이 엉키고 있었다. 스승님은 "리듬을 연습할 때는 '다운다운 업업 다운업~' 이렇게 소리를 내면서 연습하면 빨리 는다"며 기자를 위로했다. 칼립소가 빠른 곡에 어울리는 타법이라면 '슬로 고고'는 느린 곡에 어울린다. 자전거 탄 풍경의 '너에게 난'을 슬로 고고 타법으로 연습했다.
네 줄 악기인 우쿨렐레는 여섯 줄인 기타에 비해 코드가 간단하다. 우쿨렐레가 '배우기 쉬운 악기'로 알려진 것도 쉬운 코드 구성 때문이다. 코드 한두 개만 알아도 곡 하나를 연주할 수 있다. "기본 코드를 잘 알고 있어 진도가 잘 나가네요." 칭찬은 기자를 춤추게 한다. 유튜브를 보고 수개월 간 연습한 보람이 있었다. 스승님의 칭찬에 힘입어 열심히 연습하다 보니 왼손 검지손가락 살갗이 벗겨졌다.
◆네 줄 악기의 매력에 빠진 사람들
우쿨렐레를 시작한 계기도 가지각색이다. 실명을 공개하지 않은 직장인 희야(29) 씨는 동네 문화센터에서 일주일에 한 번 우쿨렐레 수업을 들었다. 수강생의 대부분이 초등학생과 주부인 교실에서 유일한 직장인 남성이었지만 굴하지 않았다. 그가 우쿨렐레를 택한 첫 번째 이유는'손가락이 덜 아파서'였다. 희야 씨는 "기타는 조금만 쳐도 손가락이 아프다. 먼저 우쿨렐레의 예쁜 소리에 반했고, 기타에 비해 손가락이 덜 아파서 좋다"고 말했다.
악기가 가벼워 들고 다니기 편한 것도 장점이다. 올해 4월 모임에 합류한 포토그래퍼 정예원(29) 씨는 해외 여행지에서 우쿨렐레를 연주하는 것이 소박한 목표다. 정 씨는 "예전에 여행지에서 우쿨렐레를 치는 사람을 봤는데 나도 꼭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집에 클래식 기타가 있는데 여태 딱 한 번 집 밖 구경을 시켜줬다. 우쿨렐레는 가벼워서 멀리 갈 때도 부담이 없다"고 설명했다.
이 모임에서 연주 실력이 가장 뛰어나 '에이스'로 인정받는 오창기(22'공익근무요원) 씨가 우쿨렐레에 입문한 계기도 재밌다. 원래 기타를 쳤던 그는 '짧은 손가락'에 한계를 느끼고 우쿨렐레로 눈길을 돌렸다. 그의 선택은 탁월했다. 한 음 한 음 우쿨렐레 현으로 소리를 만들어내는 연주곡도 실력급이었다. 이날 모임이 끝나고 이어진 회식 자리에서도 이루마의 '키스 더 레인'을 멋지게 연주했다.
우쿨렐레가 재밌는 것은 함께 배우고, 연주하기 때문이다. 이 모임의 회장인 김보선(30) 씨는 중학교 영어 강사로, 미국인 영어 강사 더글라스 어스틴 씨를 초대해 모임을 국제적(?)으로 만들었다. 또 방과 후 수업 시간을 활용해 학교 학생들에게 우쿨렐레를 가르치고 있다. 지난 5월 스승의 날에는 우쿨렐레반 학생 5명이 교실을 찾아다니며 교사들에게 '스승의 은혜'를 연주해 감동을 주기도 했다.
모임이 끝날 무렵 김 씨는 제비뽑기를 돌렸다. 3명씩 팀을 짜 15분간 연습한 뒤 각각 작은 공연을 하는 것으로 모임을 마무리하기 위해서였다. 회원들의 배려로 기자도 연주에 나섰다. 영화 '클래식'에 삽입됐던 '너에게 난'을 슬로 고고 타법으로 스승님과 함께 연주했다. '사랑은 은하수 다방'을 연주하려고 했지만 빠른 박자에 손이 꼬일까 봐 걱정한 스승님은 "안전하게 느린 곡으로 가자"고 제안했다. 떨지 않았고, 부끄럽지 않았다. 이렇게 악기 트라우마를 극복했다.
글 사진 황수영 기자 swimmin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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